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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 24일

칼리리 2016. 7. 25. 00:15




 

 -



 그렇게 생각하면 고교 시절의 나는 운이 없었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의지가 부족했기에, 누군가 나서서 끌어주지 않았기에, 잿빛과도 같은 고교생활을 보냈다.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그 말이 맞다.

 ……


 "어이, 가자고 이제."

 "아아, 그래. 내일도 수업이 있지……."


 하야마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식, 평소엔 잘 마시는데 오늘은 왜 이러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야 괜찮냐? 집에 갈 수 있겠냐?"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그보다 히키가야."

 "?"

 

 하야마는 갑자기 내 어깨를 툭툭 쳐주더니,


 "네 걱정은 조만간 해결될 거야.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말하고는 술집을 나갔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신기에 눈이라도 떠서 예언을 내리는 건가.

 그보다…….


 "이 자식, 술 값을 안내고 갔잖아……."

 

 바로 쫓아가려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제지한 점원 씨의 눈빛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야마 자식, 이렇게 덤터기를 씌우다니.

 나는 하야마의 몫까지 계산을 하고 술집을 나왔다.

 이미 하야마는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고, 연락을 해볼까 싶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본인도 괜찮다고 했으니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괜시리 더 우울한 기분에 젖어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 날은 그대로 자버렸다.




 꿈이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자각몽? 명석몽?

 나는 지금 소부 고등학교의 특별실 건물에 서있었다.

 고교생활에 대한 암울한 기억이 꿈으로 표출되는 건가? 

 뭐, 어쨌든 꿈이어도 고교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다시 보내니 감회가 새로운 부분도 있다.

 사실 이렇다 할 추억이 있어서 그런 것보단,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을 다시 방문한 반가움에 가까울 것이다.

 건물은 조용했다.

 꿈이니까 당연한가.

 적당히 걸어보았다. 리놀륨 바닥을 걷는 느낌은 의외로 현실감이 넘친다.

 얼마만큼 걸었을까.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

 나는 꿈인걸 알면서도 숨을 죽이면서 그 근처의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

 뭐하는 짓인지……, 라고 생각을 하면서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지만,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인기척의 주인공을 보고 나는 정말로 숨을 삼켰다.

 

 모습을 드러낸 그는,

 히키가야 하치만이었다.


 "힛키! 쫌! 왜 항상 먼저 가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여자애가 보인다. 밝은 색으로 살짝 염색 된 머리. 짧은 스커트. 단추가 풀려있는 블라우스. 목걸이…… 청춘을 전력으로 구가하고 있을 것 같은 귀여운 생김새의 여자애였다.

 ……힛키는 '나'를 부르는 호칭인가?

 

 "별로 같이 가기로 한 건 아니잖아?"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되돌려준다.

 

 "그래두…… 같은 반인데 같이 가면 좋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의 옆에 서서 나란히 걸어간다.

 가벼운 어조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떠드는 그녀.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다는 듯, 적당히 대꾸해주면서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나'.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런 상황을 너무 바라다 못해 내 뇌가 꿈으로 대리 만족이라도 하라고 보여주는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그 둘을 쫓아갔다.

 

 이야기를 적당히 들어보니 여자아이의 이름은 유이가하마인 것 같았다.

 '나'와 유이가하마는 꽤 친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유이가하마가 '나'에게 친근하게 굴고 있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고교시절의 나답게, 썩은 눈을 하고선 여자애와의 얘기에 서툴렀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닌 듯, 비교적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나한테 저런 대화스킬이 있었나. 조금 놀랍다.

 아니, 나는 이 시점에서 아주 많이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일렀다.


 '나'와 그녀는 특별실에 있는 어느 교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맨 몸으로 닫힌 교실문을 뚫고 들어가기는 저항감이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문이 닫히기 전에 몸을 교실로 넣는 것에 성공했다.

 교실 한 쪽에 책상이나 의자가 쌓여있다. 

 그리고 교실 가운데에 놓인 몇 개의 책상 끝에 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

 반듯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 그녀는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저 유이가하마라는 여자애도 나같은 사람은 평생 말도 못 붙일 것 같은 귀여운 여자애였지만, 여기에 앉아있던 그녀는 그걸 뛰어넘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벽 위의 꽃. 

 이런 학생이 있었던가?
 어렴풋하게 소문으로 들었던 것 같지만, 확실하게 기억이 나진 않았다.

 확실히…… 국제교양과의……


 "유키농~! 야헬롱!"

 "안녕, 유이가하마. 그리고 덤으로 그쪽의 썩은 눈도 안녕."

 "만나자마자 매도냐…… 유키노시타."

 그래. 유키노시타 유키노.

 주류에서 멀어진 인간관계를 향유한 고교생활의 나에게도 소문은 들려왔다.

 어쨌든, 귀는 막을 수가 없으니까.

 그 중 소부고교의 절세미소녀인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이야기는 몇 번이고 들었었다.

 하나같이 과장된 이야기여서 설마 그런 애가 존재하겠냐 싶었지만, 지금 이렇게 보고 있으니, 오히려 소문쪽이 비방과 날조로 축소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정도로 유키노시타 유키노라는 소녀는 예뻤다.

 아니, 예쁘다고 말하는 것조차 무언가 천하게 표현한 것 같은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 존재에 감탄과 경악을 하고 있던 와중에, 그들은 제각기 자리를 잡고 각자의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이라 해봐야, '나'는 책을, 유키노시타는 홍차를 타면서 그걸 나눠주고 다시 책을, 유이가하마는 핸드폰을 보면서 간혹 유키노시타와 잡담을 한다, 가 전부였다.

 도대체 이건 무슨 활동일까.

 '나'는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이런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지내는 상황을 구축한 것일까.

 

 각자 조용히 활자와 화면에 집중하던 고요한 공간은 얼마 가지 않아 금방 깨졌다.

 교실의 문이 드르륵, 힘차게 열리며 또 새로운 소녀가 튀어 들어왔다.


 "선배님~~ 들어주세요! 또 학생회 활동이~~"

 "잇시키. 들어올 땐 노크를 하렴."

 "아, 유키노시타 선배. 유이 선배.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급한 일이어서요~ 그보다 선배님! 들어주세요!"


 갑자기 들이닥친 소녀는 어쩐지 소동물 같은 이미지였다. 이래저래 이쪽도 굉장히 귀여운 생김새다. 그런 소녀가 스스럼 없이 '나'에게 들러 붙는다.

 아마도 잇시키라 불린 이 소녀는 학생회장인가 보다.

 나 때도 그랬나? 싶어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유감스럽게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잇시키는 '나'에게 응석부리듯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학생회의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요는 학생회 활동을 도와 달라는 소리 같은데…….


 "잇시키. 봉사부는 학생회가 도움이 필요할 때 편하게 써먹을 수 있는 하위조직이 아니야. 그건 알고 있니?"

 

 유키노시타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잇시키에게 말한다.

 잇시키가 '히익-'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매달린다.

 

 "유, 유키농, 그래도 잇시키도 곤란한 것 같구…… 의뢰가 있는 것도 아니구…… 도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치, 힛키?"


 유이가하마가 그렇게 중재하며 '내'게 물어본다.

 '나'는 아직 매달려 있는 잇시키를 보면서, 얼굴을 긁더니


 "뭐, 뭐어, 괜찮지 않을까?"

 "물러……. 하아, 어쩔 수 없지."

 "감사해요, 유키노시타 선배, 유이 선배! 아, 그리고 덤으로 선배님도요!"


 그렇게 학생회를 도와주는 것이 결정되자, 그들은 모여서 향후의 대책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다.

 가끔씩 잡담도 섞으면서. 장난도 치고, 대부분 '나'에 대한 장난이었지만,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닌 친근함의 표시라는 것을 제 3자인 나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무려 '나'한테 호감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꿈이라는 것도 잊고, 이 현실감 넘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청춘'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청춘도 없고, 러브도 없고, 코메디도 없던 나의 고교생활과 다르게,

 저쪽에 있는 '나'는 그야말로 청춘 러브코메디를 즐기고 있었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것의 정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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