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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19일

칼리리 2018. 3. 11. 23:39



 -



 0.


 

 시계를 보니, 어제였다.




 1.



 "'루프'가 루프하는 이야기라니. 조금 웃긴데."
 "웃지마. 심각한 이야기니까."

 

 세상이 이상한 건지, 내 정신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세계의 모든 시계가 멋대로 감기는 건지.

 자고 일어났더니 시계가 하루, 혹은 이틀 전의 날짜를 표시하고 있던 괴상한 일이 다섯 번쯤 반복되자, 나는 빠르게 지쳐버렸다.

 혼자서는 짐이 무겁다고 판단한 나는, 상담을 위해 린치를 찾았다.

 린치라는 조금 과격한 이름을 닉네임으로 가진 그녀는, 이전에 있었던 일로 실제로 보게 된 인터넷 상의 친구다. 일이 해결된 이후로도 이렇게 종종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래서? 갑자기 루프능력에 눈을 뜬 거야?"

 

 린치가 숨죽여 웃다가, 조그맣게 그렇게 물어본다.

 

 "그럴리가 없잖아. 덕분에 윤의 일을 두 번이나 도와줘야 했는데."

 "그거 고생했겠네. 호수의 일은 윤한테 들었어. " 

 "들었으면 그걸 반복했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겠지."

 "물론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그러니까 더욱 재밌는 걸."


 가벼운 웃음을 띄며 린치가 말한다. 

 그 웃음을 보니 린치에게 상담을 한 건 옳았다고 생각했다.


 "윤에게는? 말했어?"

 "아니, 네가 처음이야."

 "고마워. 나를 신뢰하는구나?"

 "그 이유도 있지만, 너라면 얘기를 가볍게 들어줄 것 같았어. 윤에게 상담하면 일이 너무 커져."

 "그렇구나."


 린치가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대화로만 봐도, 린치를 택한 건 정답이었다. 이 정도의 무게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가 딱 좋다. 

 아직까지는 내가 조금 귀찮을 뿐, 실제로 피해를 본 건 없다.


 "현상이 일어나면, 하루나 이틀 전으로 시간이 돌아간다. 맞지?"

 "맞아. 당연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는 상태야." 

 "다른 사람들, 이라는 건 주변 사람들 얘기지?"

 "그래."

 "그리고 현상이 일어나는 건 불규칙적이다.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 짚이는 건?"

 "어딘가의 마음씨 좋은 남자애가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리셋 능력을 썼다."

 "심각하다더니, 농담을 할 기운은 있나보네?"

 "아직까지는."


 짚이는 점은 전혀 없다. 윤의 일로 호수에서 고생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근래에 특이한 일은 없었다. 윤의 일은 이번 일과는 전혀 별개의 일이고, 그것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조금 생각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렇게 됐으면, 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모를 리가 없다.

 

 "흐음, 조금 재밌어 보이는걸.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원인 파악을 위해 도움을. 가능하면 해결책도."

 "지금으로선 무리야."

 "그렇겠지. 앞으로 도와달란 얘기였어."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린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이 대화도 이미 한 번 반복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래?"

 "응, 그럴 수도 있겠네. 본인 말고는 기억을 못하는 상황이니까."


 린치는 고개를 조금 갸웃하더니, 이내 내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내 눈 앞에 네가 지금 있는 게 증거야. 만약 반복하기 전에 내가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나와 이렇게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테고, 제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네 입장에선 굳이 멀리 돌아가는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었겠지. 내가 도움이 안됐다면, 나한테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을테고."

 "도움을 구한다는 건 핑계고 그냥 같이 있고 싶었다고 말하면?"

 

 넌지시 그렇게 말해본다. 린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으며,


 "그렇다면…… 조금 기쁜걸. 전력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지는데."

 "꼭 그렇게 해줘. 아무 전조도 없이 이틀 전으로 날아가는 건 정말로 사양이야."

 "좋은 쪽으로 이용하면 되잖아? 복권 번호를 기억한다든지, 주식을 한다든지."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고, 그다지 과거를 바꾸고 싶지 않아."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현상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은 채로 무턱대고 그런 일을 하는 건 꺼려졌다.


 "현명한 판단이야. 뭐, 잠깐 생각해봤는데 현상에 대해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가능성은 세 가지. 뭔지 맞춰볼래?"

 "하나는 내가 루프능력에 눈을 떴지만,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맞아. 무언가 트리거가 되는 행동을 하면 자동적으로 능력이 발동되는 거지. 가능성은 낮겠지만. 두 번째는?"

 "내 착각이다."

 "가능성으로는 아주 없는 얘긴 아닌데, 본인이 생각하기엔 어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내 정신은 멀쩡하다.


 "그럼 마지막은?"

 "제 3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루프를 하고 있다."

 "그래. 그리고 넌 거기에 우연히 말려들고 있는 거지. 가능성으로는 이게 제일 높으려나."

 

 루프가 두어번쯤 반복된 시점에 나는 이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쨌든 내가 자의로 현상을 일으키는 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일으킨 게 분명하다. 다만 그게 맞다 하더라도, 그게 누군지, 목적이 뭔지, 어떻게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지, 현 시점에선 모든 게 불명이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면, 루프라는 건 대체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반복하잖아."


 린치가 유명한 몇몇 소설이나 게임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 현상도 그런 거 아냐? 루프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계속 시간을 반복하는 거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불규칙적인데. 2주정도 사이에 다섯 번은 반복했지만, 똑같은 날을 두 번 한 적도 있고, 며칠은 잠잠하다가 또 반복한 적도 있고."

 "죽을 위기가 꼭 한 번에 오리라는 법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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