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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8월 5일

칼리리 2016. 8. 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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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퍼진 소문, 모르지?」


「………?」


클래스 메이트 중 한 명이 다가와선 뜬금없이 이런 말을 던졌다. 나는 왜 이런 질문을 갑자기 하느냐는 의미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녀석은 그 소문을 모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우리 학교에 학생회가 없는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적 없냐?」


예의 소문을 이야기하진 않고 딴 소리를 해댔다. 소문의 배경지식인것 같지만, 이걸로 대충 무슨 소문인지는 파악했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회가 없다. 그런데 학생 회장은 있다. 다만, 그 학생회장의 정체가 불분명해서 그에 관한 소문이 몇가지가 떠도는데──


「우리 학교 학생회장이 글쎄, 듣고 놀라지 마라…!」


거참 뜸 들이네.


「여자라고?」


「여…!! 아, 뭐 그래. 알고 있었냐?」


녀석은 김이 샜는지 갑자기 어조가 낮아지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재채기 직전에 누가 건드려서 재채기를 못한 표정인데.


「하지만 말이야, 그게 다가 아니란 말이지. 그 '여자' 학생회장이 그냥 '여자'가 아니고…!!」


「절세 미소녀라고?」


「…… 알면 알고 있다고 말 좀 해줘. 나만 바보됐잖아…」


투덜거리며 다른 무리들 속으로 사라지는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아마 저녀석은 다른 무리들속에 소문을 모르는 애가 있으면 얘기를 하거나 하겠지. 다만, 이 학교에 그 소문을 모르는 애가 있을까?


이야기의 발단은 별것 아닌 소문에서 시작된다.


──성 염색체 XY인 녀석들만 잔뜩 모인곳에, 단 하나의 이물질로 절세의 미인인 학생회장이 있다는 소문에서부터.


 


 



*


「…어쩌면 절대 다수인 우리가 이물질인지도 모르지…」


「………?」


「아니아니, 그냥 혼잣말」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고개가 올라와 대다수의 그 이물질들이 보면 넋을 잃을 얼굴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선 다시 책으로 돌아가는 시선. 집중력이 대단한 건 칭찬해주고 싶지만, 보는 책이 라이트노벨이어서야 원.


나도 쓸데없는 생각은 잘라내버리고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제대로 된 문제집이다.

그러다가 10초를 유지하지 못하고,


「…도대체 왜, 편한 등받이가 달린 의자와 넓은 책상을 버려두고,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왜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서 공부를 하냔 말이지?」


「정확히 잘 집어내셨습니다. 어서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알려줘」


아름다운 학생회장께서는 1시간전에 '이렇게 하자' 라고 했을때는 있었음이 분명한 이유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어차피 머리속은 소설속의 등장인물들과 갈등상황으로 가득채워져 정상적인 사고의 40%정도밖에 발휘되지 않을것이다. 교제한지-물론 다른 의미없이 순수하게-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저 평소때와 다른 약간 무방비한 표정을 보면.


「이따가 알려줄게. 지금 막 240페이지를 지난 참이거든」


「…끝이 몇페이진질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러자 회장은 끝을 뒤적거리더니,


「981페이지네. 앞으로 네시간은 더 읽을 수 있겠는걸」


순간 라이트노벨 맞는거냐! 라고 소리칠뻔 했지만, 오만방자하고 광오한 소년이 종말을 어쩌니 개념을 어쩌니 하는 라이트노벨 같지 않은 무상식한 페이지수를 자랑하는 것을 기억속에서 찾아낸 나는 가까스로 말을 멈췄다.


「………」


「………」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고, 책을 읽을때 누군가가 말을 걸거나 방해를 하면 얼마나 짜증나고 귀찮은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회장이 책을 읽을땐 되도록이면 말을 안 걸도록 하고 있지만, 공부도 안되고 내가 읽을 책도 없는 이 상황에선 그런 제약을 지키기가 괴롭다. 평범한 회장의 방은 나름대로 장식도 있고 소녀다운 취향이 보이는 물건들이 극히 일부 있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책장이 없다. 책장은 방을 나가야 있는 서재에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방에서 못 나간다.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라는 말은 고상함을 추구하는 회장의 폴리시에 위반되니 속으로만. 내, 혼잣말치고는 다 들으라는듯이 크게 말한 소리는 회장의 고개를 2cm정도 들어서 나를 1초간 쳐다보게 만드는 효과밖에 없었다. 아아, 정말.


일단 책을 덮고 늘어지는 몸을 던지기 위해 침대에 잠깐 시선을 보냈으나, 아무래도 여자아이의, 그것도 당사자가 있는 눈 앞에서 침대에 몸을 던지기는 아무리 나라도 약간 주저하게 된다. 그렇다고 널찍한 책상-내가 누울 자리는 충분했지만-에 눕는 비상식한 일을 저지를정도로 궁지에 몰린것도 아니다. 이도저도 안되서 나는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불성실하구나」


「…시끄러워」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와야 할 시점에 겨울이 먼저 찾아온듯한 9월. 계절의 주인인 가을은 온데간데 없고 겨울과 여름이 반복되는 날씨에 요즘 한동안은 추위가 계속되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9월부터 방에 불을 떼는건 좀…」


「……」


무정한 회장은 대꾸조차 안하고, 나의 정당한 의견피력은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최근들어 혼잣말이 많아지는듯한 생각이 드는데, 착각인가?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저녁시간이 7시 30분이고 아르바이트를 빙자한 봉사활동이 끝나는 시점이 10시니까, 앞으로 충분히 더 괴로워해야 한다는것이다, 무료함에. 오늘 공부는 이미 끝난것 같고, 이따 저녁시간에 서재에 가서 책이라도 하나 공수해 와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시간을 이렇게뒹굴거리면서 보내게 될 것이다. 무료함에 압사할지도.


「심심해?」


「많이」


어쩐일인지 회장이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페이지 수를 언뜻 보니 272페이지. 많이 어중간한 수치라서 웬만해서는 끊기가 힘들텐데, 챕터라던가 그런게 하나 끝난건가?


「나는 말이지 요즘에 어떤 생각을 하고있어」


「어떤?」


회장은 유려한 동작으로 손바닥을 뺨에 대며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조약을 늘리자는 생각」


「…어,어떤 조약을?」


「예컨대, '아르바이트 시간에 심심해 하지 않는다' 라던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예컨대, '아르바이트 시간에 공부에 전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만 본다'」


더 불가능하다.


「으음,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린다'?」


「~~~!!!」


소리로 이루어지지 않는 괴성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나는 결사반대를 표명했다.


「…애초에 조약 수정기간이 아니잖아요. 덧붙여 추가 하는건 더 말이 안 돼.내가 뭘 잘못한것도 아니고, 조약을 어긴것도 아니고」


존대를 하는건지 반말을 하는건지. 거의 반반을 섞어 말해서 남이 들으면 상당히 이상하지만,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너무 심심해 보여서, 조약에 넣어두면 심심해 하지 않을거 아니야?」


아니야? 라고 당연하게 물어오는 회장.


「물론 그렇게 되면 이런식으로 완벽하게 '저 지금 심심해서 죽을것 같아요'라고 드러내지는 않을테지만, 역시 그래도 심심해요. 아주 많이. 이 방에 딱히 다른 뭔가가 있는것도 아니고」


미소녀와 같이 한 방에 있다는 자극도 처음 이 방에 들어온지 10분만에 없어져버렸고. 나는 내성이 빠른편이다. 항생제 같은걸 조금 많이 먹었다간 분명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없어질거야.


「자극을 원해?」


「태평한 얼굴로 의미심장한 소리를 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아마 다 알고 있겠지만-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는 회장을 보면서 나는 현재 내 상황을 머리속 캔버스에 그려보았다.



*


지난 7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나는 모종의 사건으로 회장과 어떠한 조약을 맺었다. 이건 명백히 불평등 조약으로, 모종의 사건으로 이미 시작부터 불리한 위치에 서 있던 나는 이런 굴욕적인 조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공식 명칭 '나의 안녕을 위한 너의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러저러한 조약들' 이다. 물론 명칭은 회장이 작성한것으로, 회장을 '나'로 나를 '너'로 지칭한 점에서 회장의 닫힌 세계관이 엿보인다. 보는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다고 해서 그걸 2인칭 대명사로 전부 처리해야하나? 공문서인데! …아니, 사문서지만.


어쨌든 그 조약의 내용 중 주요한 3개의 조항을 얘기해보자면,


1. 너는 나의, 너의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을 정도의 부탁-혹은 명령-을 최선을 다해서 따를 권리를 갖는다.


2. 너는 아르바이트, 즉 나의 안녕을 위한 여러가지 것들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내 집에서 시행한다.


3. 위의 조약들과 갖가지 세부조항들은 정해진 기한을 두고 수정을 거치며, 위의 조약을 어길시 받는 리스크의 부과는 나의 자율에 맡긴다. 또한 어길시, 조약을 추가한다.


등등등.


아무리봐도 노예문서인 이것을 잠자코 생각해보면, 1번 조항이 상당히 애매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명령을 들어라! 도 아니고, 따를 권리를 가진다라니 참. 회장의 심사는 우매한 나로서는 이해 할 수가 없다. 사실 회장에게 저 조항들과 세부 조항을 가지고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나의 인권 신장을 노리고 싶지만, 세상에서 하나뿐인 A4용지 노예문서는 회장의 집 안, 정확히는 방 안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있다. 어딘지는 나도 잘 모르고, 수정 기간에만 회장이 미리 꺼내둔다. 참고로 수정기간은 8일을 주기로. …참 애매한 숫자다.


오늘로 말할것 같으면, 바로 어제 수정을 거쳐 조약이 새롭게 적용되는 날이지만 어제는 딱히 큰 수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주요한 조약들에 대해 내가 반론을 제기하며 수정과 더불어 인권 신장을 노렸지만 '…각하'라는 회장의 일축으로 허망하게 끝내버렸다. 회장의근거는 '아직 때가 안 됐어'


탁- 하고 회장이 책을 덮는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7시 29분. 잘 쪼개진 나무젓가락 같은 시간관념을 가진 회장은 밥 먹을때만 정확하다. …무슨 소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지루한 방에서 탈출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시간때에 내 시야가 미치는 곳에 있을것' 이라는 세부 조항이 2번 조약에 붙은 3번째에 세부조항일 것이다. 아마 악질적인것으로 따지자면 상위 랭크를 먹여줄만한 것으로, 내가 조약이 시행되고 나서 일주일이 지난 후 고의적으로 아르바이트를 빼먹은데서 생긴 조항이다.


회장의 방을 나가 바로 옆에 붙은 계단을 내려가서 복도를 지나면 부엌과 연결 된 널찍한 거실이 나온다. 바닥에 누워있다가 원목으로 된 고급 탁자에 앉으니 허리에서 좋다고 환호성을 지를것 같은 느낌인 가운데, 회장은 분주하게 요리를 준비중이다. 내가 가봤자 방해만 되고 아르바이트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자 유일하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저녁시간. 회장의 요리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무척 뛰어나다. 맛도 있고. 게다가 매일 같이종류도 다르고!


「오늘 메뉴는 뭐에요?」


「이탈리안식 가정요리」


오오오. 가볍게 대꾸하며 손은 재빠르게 도마 위와 냄비를 왔다갔다 하는 회장. 이탈리안식 가정요리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소요시간이 어느정도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서재에 갈 타이밍을 못 잡고 탁자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오늘로 며칠째지?」


「뭐가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음. 여름방학 전에 시작했으니 대충 2개월 정도?」


「……」


도마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던 칼소리가 멈추고 회장이 갑자기 뒤돌아서는 내쪽을 봤다. 나는 약간 당황해서 같이 눈을 맞추지는 못하고 어깨위로 미려하게 흘러내린 윤기있는 머리카락을 노려봤다.


「고마워. 같이 어울려줘서」


가볍게 미소짓는 그 얼굴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끔 보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내가 갖은 불평을 다 하면서도 회장한테 진심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회장 곁에서 떨어지기 싫으니까 이 짓을 계속하는것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새삼스럽게 감사인사는」


뭐, 얼굴이 붉어진것 같진 않지만 약간 부끄럽긴 하다. 회장을 이런식으로 인식하게 되면 나중에 상당히 곤란한 일이 많을것이다. 아마, 지금부터라도 곤란하겠지.


회장은 다시 도마위에서 멋진 손놀림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뒷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묘사하기엔 나의 예비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피자밖에 모르는 나에게 뭘 바라겠냐마는,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듣고 기억에도 전혀 남지 않는건 단순히 내가 관심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바보라서인가.


답이 뭐였던간에 회장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이런것을 매일 먹다보면 입맛이 고급스러워져서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밥을 먹고 회장이 적당히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나는 회장의 서재에 갔다.


서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방 하나가 전부 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책장마다 책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데 추정하길, 90%이상은 라이트노벨이다. 나머지 10%중의 90%는 만화책이니 총 몇 권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아도 일반 도서는 1%도 안 된다는것이다.


나는 위치상으로 보아  회장이 좋아할법한 라이트노벨-그러니까 문 가까이에 있어서 뽑아오기 좋은것들-중에 제목이 괜찮아 보이는걸로 1권을 뽑아들고 회장의 방으로 향했다. 조약 2-3의 영향력에서 유일하게 해방되는 시간이 7시 30분부터 8시 30분사이의 저녁시간. 현재 시각은 8시 25분으로 슬슬 시간이 됐다. 언제나 생각하는거지만 그 놀라운 경지의 요리들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데 한시간밖에 안 걸린다는건 어느 의미로 기적이 아닐까. 물론 요리준비는 미리 해두는것 같지만…도와준적도 없기 때문에 자세한건 잘 모르겠다.


방에 들어가니 회장은 책을 덮어둔째 멍하니 있었다.


「무슨 생각해요?」


「내일 예정」


나는 침대에 기대서 바닥에 앉아있는 회장에게서 약간 떨어진 옆에 앉아 똑같이 침대에 기대고 책을 펴들었다. 흠흠, 대충 보아하니 연애 소설인것 같지만 회장은 이런것도 좋아하던가?


「내일, 아마 학교에 가게 될 것 같아」


어?


「우리 학교요?」


「응」


회장이 흘끗 시선을 옷장으로 향한다. 옷장 앞에 걸려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검은색 일색으로 도배된 장례식 의상같은 투피스로, 단추의 모양이라던가 옷깃의 모양만 보면 우리 학교 교복과 상당히 유사하다. 우리 학교 교복도 장례식 의상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검은색을 좋아하지만, 저 교복은 언제봐도 완벽한 장례식 의상이다. 검은 베일만 더하면.


참고로, 저건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여자 교복. 즉, 학생 회장만을 위한 교복이다.


「…얼마만이죠?」


「글쎄…아마 2개월이 조금 넘은것 같은데. 2개월보단 많고 3개월보단 적을거야」


그렇다면, 나와 조우했던 시기가 바로 학교 방문의 시기였던 것이다. 참,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명색이 학생회장이니까 이것저것 할 일이 많겠죠? 그것 때문에 학교에 가는건가요?」


「그런것도 있고, 다른것도 있고」


회장의 얼굴에서 조금 걱정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뭐, 걱정이 될만도 하다. 우선, 학생회장이 여자라는 사실은 소문으로 전교생이 알고 있지만 그 실체는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 소문의 진상을 밝히려는 의욕적인 녀석들이 몇이나 있는지는 몰라도 위험하긴 위험하다. 어찌됐건 절대비밀주의를 고수해야 하니까. 아마 교장부터 나와서는 교사들이 대대적으로 회장을 모셔갈것이다. 은밀하게.


두번째로, 요 2개월간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장은 학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으로 차출되기 전에 다녔던 근처의 유명 여학교에서 어떤 일을 당한것 같다는 추측이 머리속에서 맴돌고 있지만, 아직 직접적으로 말을 해보진 않았다. 회장의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릴 것 같은 느낌이 무서워서.


세번째로는…


「…그래서 내일 아르바이트는 아쉽게도 휴일」


온 몸으로 아쉽다는 기운을 내뿜은 회장. 축 늘어진 어깨를 보니 입에서 '그럼 제가 학교에서 보조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튀어나올것 같았지만, 이성의 힘으로 막았다. 그렇게 되면 나도 나쁠건 없고 회장도 좋겠지만, 위험하다. 일단 나도 학교에는 같이 다니는 친구정돈 있고 말이지.


「……저도 물론 아쉬워요, 무척」


「그래? 그럼…」


「그렇지만!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건 역시 위험할것 같으니 모레에 더 열심히 하겠다는 걸로」


내가 아쉽다고 했을때 순간 밝은 빛을 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매일 같이 시간을 잡아먹는 아르바이트를 빙자한 봉사 활동을 공식적으로 뺄 수 있는 기회다. 회장을 못보는건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쉽지만 뭐, 매일 같이 보니까 하루정도야.


명백하게 실망한 표정을 짓는 회장을 달래며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내일 학교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불러주세요. 회장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편할것 같고… 일단은 저도 회장이 걱정되니까」


「…응」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지만,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말을 하는 정도일까.


비교적 찜찜한 분위기에서 흥미도 없는 연애소설을 읽다가 때려친 나는 바닥에 엎어져서 졸다가 11시가 넘어서야 깼다. 초과근무를 1시간이나 더 하게 만든건 회장의 의도적인 짓이었지만 일단 회장의 재미를 위한 아르바이트에서 혼자 자고 있었으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회장은 뭐가 그리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일 학교에서 보자'라는 긴장감 제로의 인사를 하면서 배웅해줬다. 잠자는 사진이라도 찍은건가. …아주 안 좋다.


 


*


우리 학교는 남학교다. 주위에서 알아주는 진학교지만 성별이 단일하다는 이유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기피하는 장소로, 말 그대로 공부밖에 뜻이 없는 놈들이나 운이 없어서 떨어진 놈들 밖에 없는 지독한 곳이다. 나는 전자의 입장으로 왔지만, 오자마자 후자의 기분을 공유하며 나의 빌어먹을 선택을 저주했다. 단일한 성별이란 점 하나만으로 학교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건, 공학인 중학교를 다녔던 나에겐 다시 없을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뭐, 그런 이유로. 그런 폐쇄되어있고 불온환 환경에 있으면 자연히 환상과 망상을 결집한 소문이 돌기 마련이다.


「들었는가?! 어제 위원회에서 예의 그 회장의 정체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소식!」


참고로 위원회라는건 학교 전체에서 학년을 불문하고 퍼진 '미소녀 학생회장'의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즉 쓸데없는 일에 기력을 소비하려고 만들어진 위원회다. 소문에 감정이입을 너무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거라고 착각한 녀석들 중 의욕이 넘쳐흐르는 놈들이 세운것으로 매주 회장이 실재한다는 근거를 정리해 놓은 주간지 같은걸 발행하는데, 그냥 정신나간 놈들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내가 보면 헛짓거리를 하는 걸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근거라고 내놓는것도 죄다 이상한것이고. 존재를 증명한다는 글의 결론은 언제나 '미소녀 예찬'으로 끝나버리고.


「존재를 증명한건가!」


「사진이라도 찍은겐가!」


「오오오오!」


웅성웅성. 나서기 좋아하는 한 녀석-아마도 위원회 소속일-이 아침 조례가 끝나고 교탁 앞으로 나와 소리를 질러대니 여기저기서 반응을 보인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창 밖을 보고 있었는데,


「NO! 그런 간접적인걸로 만족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위원회는 모든 남학생들의 원념을 담아 이 레어하고도 레어한 정보를 만천하에 알리기로 결정했으니… 바로!」


거참 뜸 들인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바로 오늘! 그! 학생회장이 우리 학교를 방문한다는 정보인것이다아아아아아아!!」


그대로 고꾸라질뻔 했다. 뭐야, 갑자기 저런 정확한 정보는 어디서?


정보의 발원지인 앞에 나와있는 녀석에게 어디서 들은거냐고 물어보려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반은 이미 광분의 도가니. 이녀석들은 정보의 진위를 확인조차 안하는건가. 뭐, 사실이지만…이랄까,이거 회장한테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앞에서 대중의 흥분을 주도하던 녀석이 박수를 치고 흥분한 원숭이들을 진정시킨다.


「아아, 제군들의 호응은 잘 알았다. 그러나! 그 정보에 단순히 흥분하고 있으면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법! 침대까지 눕혀둔 미소녀를 도망치게 하는 법!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는것이다!」


그러면서 꺼내놓은건 바로 디지털 카메라. 우와, 본격적으로 위험해졌다.


「오늘, 우리 1000명의 특파원은 각자의 촬영기기, 휴대폰이든 디지털 카메라든 망원렌즈가 부착된 초고급의 카메라든 뭐던간에 학생회장의 얼굴을 찍는다! 절대로 찍는다!」


또다시 울려퍼지는 환성. 옆 반에도 비슷한 환성이 들리는것으로 보아 각 반의 위원회 임원들이 선동을 하나보다. 나는 회장에게 '조심하세요. 일정이 들킨것 같은데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과연 이걸로 될지 어떨지. 애초에 천명이 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선동하는데 성공하면, 그리고 그 천명의 학생들이 각자 촬영기기를 학교 곳곳에서 발동시킨다면, 물이라도 샐 틈이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위원회의 한계로 언제 여신이 우리 학교에 강림하시는지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러니, 제군들은 지금부터 오늘이 끝나는 약 16시간동안 학교를 철저히 감시해주길 바란다! 물론 우리 위원회도 방송부의 협력을 빌어 학교 도처에 카메라를 설치할 예정이다! 그리고, 혹시나 여신의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얻을 수 있을것이니 노력하도록! 이상!」


연설을 마치고 재빠르게 튀어나간다. 반 내의 분위기도 어쩐지 소란스럽고 분주한게… 어이, 진짜로 카메라 같은걸 설치 할 작정이냐, 너희들. 그리고 갑자기 칭호가 여신으로 바뀌었다. 실제 얼굴도 보지도 않고 소문만으로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건, 위원회의 선동능력이 대단하거나, '미소녀'라는 사실에 굶주린 천 여명의 학생들이 어찌 할 수 없을정도로 한심한것이리라.


나는 소란스러운 교실을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옥상으로의 계단으로 가서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간 후에 회장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무슨일이야?"


「문자 못 받았어요? 지금 학교에서 회장에 관한 소문으로 난리도 아니에요」


순간 회장이라는 단어가 위험하다는걸 깨닫고 급히 주위를 둘러봐 확인했다. 인기척은 없었으나 조심하는게 좋겠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도청기도 설치했을지도 모른다. '여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어보라!'라는 식으로 말이지.


"어떻게?"


「오늘 온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학교에 위원회인지 뭐시긴지 하는놈들이 퍼뜨린건데… 오늘 정말 괜찮겠어요?」


"으응… 그렇지만 오늘 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들키면 위험한가요?」


"응. 많이."


「어떤식으로요?」


"………원래 학교로 돌아가야 해."


회장의 말투가 갑자기 차가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전의 학교에서 뭔가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침착한 어조를 유지하는데 신경쓰면서,


「…그러면 다른 날에 오도록 일정을 어떻게든 바꿔봐요. 오늘 안에 사진이라던가 찍히지 않으면 위원회 녀석들의 신빙성도 격감할테니」


"아니, 아마 안 될 것 같아. 아르바이트를 빼주기 싫어서 지금까지 계속 미뤄오다가 결국 오늘 잡힌거였거든. 이를 어쩌지……?"


「결국 하루는 빼줘야 하면서!!」


왜 미뤘는지 이해를 시켜줘요, 회장.


나는 머리가 아파옴을 느끼면서 다른 수단을 강구해봤다. 나참, 이런일에 필사적인 나도 신기하지만 역시 제일 신기한건 실제로 움직이는 학생들이다. 계단 옆에 나있는 창으로 보니 한 남학생이 옥상에서 카메라…가 아닌가, 천체 망원경을 설치하고 있었다. 아니, 그걸로 찍을 속셈인거냐 너는?


"내가 생각하기엔 어쩔 수 없을 것 같아… 교사들에게 잘 부탁해 볼게. 걱정해줘서 고마워."


끊으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에 나는 급하게,


「아니, 잠깐만요! 혹시 모르니까 오는 시간이라도 알려줘요」


"으응…… 5시에 교장과 회의가 있으니까 적어도 4시까지는 도착해야해, 아마도"


4시라면 마지막 수업이 한창일 무렵이다. 상황을 봐서 그 수업은 몸이 아프다고 빼먹던지 해야겠다. 어휴, 이게 무슨 고생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뭔가 하진 않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벌써부터 심하다.


「알겠어요. 그럼 그때 뵐 수 있으면」


"알았어. 나도 조심해볼게.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따 보자."


전화를 끊고, 나는 일단 교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


 세계를 만든다' 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인형' 제작 공정에 따르면, 실제로 걸리는 시간의 대다수는 바로 이 '세계관'을 짜는데 걸린다. 수요자가 '인형'과 접촉하고나서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그리고 부서지지 않을만한 강도를 가진 세계관을 짜는데는 '인형' 몸체를 만들때 생기는 육체적인 피로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피로가 발생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인형제작에는 최상급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관을 짜는데는 아직도 훈련이 덜 되어서 '세계관' 제작만 보자면 장인레벨에 가까스로 도달한다는 느낌이다. 


현재 나는 수요자에게 '인형'을 건네기 위해 전철을 타고 가는 중이다.


옆좌석에는 죽은듯이 앞만 보고 앉아있는 소녀──의 '인형'. 날카로운 나이프에라도 베인듯이 눈썹 위로 앞머리가 단정히 잘려있고, 푸른빛이 감도는 흑발도 어깨에서 가지런히 잘려있다. 단정한 이목구비에 사파이어색 눈동자. 흰색 원피스에 무릎 위에 놓여진 밀짚모자까지, 완벽한 병약한 아가씨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인형'. 내 '인형'은 극미(極美)의 경지로 명성이 높다.


아직까지는 수요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수요자의 반경 2km안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로 인형처럼 움직이지만, 곧 있으면 그 반경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인간처럼 움직이기 시작 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2km 반경 안까지 '인형'을 데려다주고, 구조식을 짜 넣은대로 움직이는지, 수요자와 확실히 접촉했는지, 그리고 세계관의 발생이 확실하게 되는지── 등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인형' 제작에 애프터서비스 따위는 없지만, 예상외로 구조식이 잘 들어맞지 않아서 폭주하는 경우가 있으면 제작자인 내가 '인형'과 수요자를 모두 처리해야 하고 뒷정리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아주 귀찮아진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런 작업들이 필요한 것이다.


전철은 퇴근 시간이지만 붐비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상당수 있는 가운데 시선이 모두 내 옆자리로 쏠리는것을 인식 할 수 있었다. '인외마경(人外魔境)' '극미(極美)' 라는 내 '인형'에 붙는 칭호는 이런데서 잘 확인 할 수 있다. 인기 많은 딸을 가진 아버지의 심정이랄까.


내 집에서 10정거장 정도 떨어진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수요자의 2km 반경 안에 든다.


퇴근한 사람들과 유흥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에서 5분만 걸어가니 나오는 한적한 주택가. 근처에는 공립 고등학교가 있고 2층 양옥으로 된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소위 말하는 '중산층' 동네다. 남 부러울 것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이 바로 수요자가 된다. 이번 수요자도 그런 류의 학생이었다.


주택가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문득 위화감이 드는 어느 한 순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만 내딛으면 '뭔가'가 바뀔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지점. 그곳이 바로 2km 반경, 통칭 '아폴로니우스의 원'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본래의 의미하고는 전혀 관계없지만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초창기의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는 걸 계기로 그 전통-이랄까 내가 보기엔 악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선 앞에 서서 내 뒤를 말 없이 따라오는 '인형'의 두 어깨를 붙잡고 사파이어색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원 반경에 가까워서 그런것일까, 천천히 눈동자에 파문같은 작은 흔들림이 퍼져가는게 느껴진다.


한 5초동안 눈을 그렇게 맞추고 있다가,


「……」


가녀린 몸을 한번 껴안아주고 선 안으로 밀어주었다.


말그대로 인형 같던 분위기가 선 안으로 들어가니 인간의 상(狀)을 띄기 시작했다. 들어가자마자 뒤돌아보며 가볍게 고개숙이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이 사라질무렵, 나는 목에 건 묵주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십자가를 집어들고 언제나 하는 '의례'를 했다.


「또 하나, 잠들어 버리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하여──」


3초간 묵주를 입에 대고 묵념. 오늘밤, 한 명의 영혼이 영원히 잠든다. '일상'이라는 안식의 땅에서절망과 고통을 느끼었기에, '비일상'이라는 영혼의 도피처를 찾아 영원한 수면을 취한 그에게, 모든 '일상'을 포기한만큼의 안식으로, 부디 상처받은 영혼을 받기를.


'의례'도 마치고, 원래대로라면 아까 수요자를 찾아간 '인형'을 쫓아 이것저것 확인을 해야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일주일을 걸려 완성한 그녀는, 근래에 보기 드문 완성도를 지녔으니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자기 암시에 가까운 자기 만족의 말을 내뱉으면서, 선에서 멀어지는데 골목 저편에서 흐릿하게 누군가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아직 사람의 얼굴은 커녕 전체적인 윤곽밖에 보이진 않지만, 멀리서도 느껴지는 특유의 '기척'으로 그녀임을 알아보았다.


「여전히 보낼때마다 그런 변태짓을 하는구만」


그녀가 걸어올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더니, 길게 기른 속눈썹의 개수도 셀 수 있을만큼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가 이런 매도였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나야말로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알면서 모르는척 하는 건 신상에 이롭지 못하다고, '극채(極彩)'」


무람없이 말을 걸어오고 팔짱까지 껴대는 그녀의 예명(藝名)은 키리아. 나와 동기 비슷한 것으로 옛날부터 악연을 잇고 있다. 그녀가 만드는 '인형' 못지않게 단정한 얼굴 생김새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인간들 중에선 그녀를 노리는 사람이 꽤나 있는것 같기도 하다. 가벼운 니트 차림에 무릎에서 싹둑 잘린듯한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그녀의 현재 머리스타일은 심연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웨이브지게 허리까지 늘어뜨린 모양이었다. 아마 저번에는 금발에 트윈테일이었던가. 최상급에 달하는 '인형' 제조기술을 이상한데 쓰는 인종이다, 그녀는.


「어처구니 없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 역시 신상에 이롭진 못하지. 덧붙여, 허락없이 팔짱을 끼는것도.」


「여러가지로 요구사항이 많은 녀석이네── 그래서, 오늘은 한 건 해치운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래서, 대가는 뭐야?」


「바이올린 연주법. 수요자가 촉망받던 바이올리니스트였거든. 아직 학생신분이지만」


「헤에, 또 이상한걸 얻어왔구만. 그럼 다음에 들려줘」


「바이올린을 사면. 연주법만 얻어와서 어떤걸 사야하고 어떤게 좋은지는 전혀 몰라서 공부가 필요해」


본래, 이 분야에 종사하는 장인은 대다수가 혼자 제작실에 쳐박혀서 필요최소한의 외출만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전부 자른다. 최근에 들어서는 젊은 장인들이 생겨서 그러한 풍습도 옅어졌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와 키리아는 아무리 동기비슷한 것이라지만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키리아와 내가 이루는 관계는 99%정도 나의 뒷바라지지만, 나도 키리아와 어울리는걸 싫어하진 않고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우리는 천천히 역까지 걸어가며,


「그나저나 너의 그 알 수 없는 행동들은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어」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걸 모르는 척 하지 말란말이야」


「그건 그냥 내 나름대로의 기준에 근거해서 한 사람의 미래를 없애버리는 것에 대한 사죄랄까, 그 사람에 대한 애도랄까 뭐 그런거지」


내 말에 키리아는 정말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 내가 말하는건 네가 그렇게 하는게 이해가 안 간다는 거지」


「내가 왜?」


「……아니야. 그보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건 그런 어줍잖은 기도가 아니고 그 전에 하는거 있잖아. 그 왜, 원 안으로 '인형'을 집어넣기 전에 하는 너만의 그…」


키리아는 어째선지 상당히 말하기가 힘든것 같았다. 무슨 느낌인가 하면, 단어의 뜻을 설명함으로서 상대방보고 그 단어를 맞추게하는, 스피드 퀴즈 같은 느낌이다.


「포옹?」


「그래! 그거. 포,포…」


여전히 키리아는 '포옹'이라는 단어를 말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얼굴도 붉어져선.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는 주제에 이상한 단어에 반응하고 있다.


「포옹. 이것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고,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느낌으로 그냥… 뭐, 이런 느낌일까.」


「아니, 그거 절대로 이상해. 적어도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너 이외에 본 적은 없어.」


「남의 폴리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진 말자고」


「뭐,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석연찮달까…」


시야 안에, 반짝이는 네온 사인 사이로 역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아직도 '납득도 안가고 이해도 안되는 상황이랄까…' 따위로 중얼중얼거리는 키리아에게,


「그러고보니 오늘은 무슨 일이야? 여기 있는지는 용케 알았네」


「그거야, 네가 집에서 나올때부터 뒤에서 미행했으니까 그렇지…… 그보다, 오늘은 조금 심각한 문제야.」


터무니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무슨 문제?」


「오늘 잘 곳이 없어졌어. 재워줘」


……정말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조금. 여러가지를 시험해보다 집을 날려먹어서… 집을 다시 구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달까… 하는 문제로…」


우물쭈물하는 키리아를 보면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사항은 많지 않았다──


 


 


·



'마리오네타'라는 것이 있다. 가장 간단한 말로 바꾸면 '인형사(人形使)'.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한 비일상으로의 안내' 라는 광고 문구를 제작해서 걸어놓으면, 이 마리오네타가 하는일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1만명이 채 안되는 장인(匠人)들이 마리오네타의 명맥을 이어가면서, 매일 몇 명씩 비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만연된, '급성 수면장애'로 명명된 병의 희생자는 모두 마리오네타의 고객, 즉, 수요자들이다. 과거에는 어땠는지는 몰라도, 현재의 마리오네타의 일은 표면적으로 봤을때 갑작스럽게 병에 걸려 평생 잠만 자는 이들을 생산해내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인 것이다.


전 세계 60억이 넘는 인간들 가운데, 비일상, 또는 판타지라 불리우는 이상 세계를 동경하지 않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다수는 어린 시절을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현실에 묻히기 시작하면서, 어린날의 망상으로 치부해버리지만, 그들 중에 극히 소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본능으로 원하게되고, 무의식적으로 추구한다. 그런 마음으로부터의 열망과 갈망이 극한까지 이루어졌을때, 그 바람이 수요자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마리오네타에게 전달되고, 우리는 그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인형'을 제작한다.


'인형'의 기능은 단순하다. 정상적으로 발동하는 구조식을 짜넣고, 제대로 인과의 법칙을 따른 세계관이 내장되어 있다면, '인형'은 본능에 따라 수요자에게 접촉한다. 그 직후, 수요자는 세상에서 질병으로 취급되는 영원한 수면에 빠지고, '인형' 내에 내장된 세계의 영향을 받는다. 그 시점에서 '인형'은 수요자의 뇌가 현실 세계와의 괴리를 느끼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분해되어, 수요자의 뇌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현실 세계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수면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을 택한 이유는, 세계의 수정력(修正力)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라는 목적과 '마리오네타'라는 존재의 은폐를 위해서이다. 뭐, 결국 잠들어버린 수요자는 마리오네타가 만들어낸 세게속에서 죽을때까지 자신이 동경하던 비일상의 생활을 하면서 지낼 수가 있는것이다.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세계라고는 해도 지금까지의 세계에 '비일상'이라는 껍질 하나만 덧씌워진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불쌍한건 현실 세계에서 남겨진 수요자와 관계된 사람들뿐일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현재 세계에서 급속도로 유행하고 있는 '급성 수면장애'라는 질병의 진실이다. 이러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 질병의 원인은 불명으로 벌써 몇 만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며 TV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는걸 보면 일의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마리오네타가 '인형'을 만드는건 본능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를 돌리자면, 마리오네타는 수요자가 직접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간절히 바란 소원을 들어주고, 대가로 수요자가 가진 유·무형의 무언가를 받는다. 그것은 수요자가 가진 무형의 능력일수도 있고, 만약 수요자가 대 부호라면 그의 돈을 가질수도 있다. 내가 이번 수요자에게 가져온 것은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수요자의 능력이다. 마리오네타중에선 돈만 가져가는 속물적인 인간도 있어서, 갑작스럽게 부호가 된 사람도 있지만 내 주 고객층은 학생들이라서 그런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끔은 정말로 평범한 학생들이 수요자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받아올 능력도, 가져올 유형의 어떤것도 없을땐 나는 그의 기억을 가져오곤 한다.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한 편의 책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아침.


월요일이고, 등교를 해야 하는 날이다.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 아침은 드물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7시 정각에 눈이 떠졌다. 저혈압이라 기분은 최악이었지만, 평상시보단 나은듯하다.


눈을 뜨자마자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단아하게 양 손을 무릎에 얹어놓고 앉아있는 '인형'이 보인다.


'밤하늘을 잘라서 붙인듯한 짙은 흑색의 길다란 머리카락에, 눈의 결정을 모아 빚은 새하얀 피부, 인체로서의 절대성을 추구한 황금비의 이목구비, 중세 시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고딕 드레스까지, 지금까지 나는 이 이상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다. 이슬이 걸려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긴 속눈썹과 함께, 아마도 물빛으로 빛날 눈동자는 굳게 닫겨있는게 나를 미치게한다. 오오, 신이시여, 부디 제가 살아있을동안 이 소녀의 눈이 떠지는것을 볼 수 있게 하소서………'


…라는 보는이의 소름이 돋을듯한 찬사가 어느 유명 시인으로부터 내려진 내 최고(最高)이자 최초(最初)이자, 최후(最後)의 작품. 극한의 미(美)를 추구하는것으로 유명한 내 '인형'들 중에서 그 미가 극한에 이르다못해 '최악(最惡)의 미(美)'라는 칭호를 받은 나의 문제작이다.


마리오네타는 수요자의 의뢰가 없으면 '인형'을 만들지 못하고, 만든 '인형'은 반드시 수요자에게 전해줘야 하지만, 이 '인형'은 사정이 있어서 수요자에게 건네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수요자에게 건네졌다고 할 수 있다. 수요자는 나 자신이니까.


과거의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키리아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이 '인형'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옛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보다 더하다고 한다. 나는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주위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직 이름을 주지 않은 이 '인형'은, 세계관이 내장되어 있으며, 구조식이 짜여져있다. 단 하나 마치지 않은 작업은, '세계의 핵'을 만드는 일인데, 화룡점정(畵龍點睛)과도 같이 이 작업은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다. 이 작업만 마치면, 이 '인형'은 눈을 뜨고 움직인다. 수요자인 내가 수면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형'과 같이 있으려면 구조식만 살짝 바꾸면 된다. 그러면 이 아름다운 '인형'은 눈을 뜨고 내가 죽을때까지 같이 있어줄것이지만, 왜인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하지 않을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옷을 갈아입고, 눈을 굳게 닫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뺨을 잠시 어루만지다가 거실로 나왔다.


간단하게 씻고, 아침으로 먹을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가져와 컵에 붓고있으니, 내 방 옆방에서 키리아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왔다. 어제 입던 니트와 스커트를 그대로 입고 잔 것 같다. 여름이 끝나다고는 하지만 초가을이라 더웠을텐데…


키리아는 아침엔 약해서, 아침에는 항상 둥둥 떠다니는 느낌으로 정신이 날아간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지금도 그런 상태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컵도 안꺼내고 바로 마시더니 휘청휘청하는 걸음걸이로 소파에 그대로 엎어지고선 TV를 켠다.


나는 토스트기에서 식빵을 꺼내 잼을 바르면서 키리아가  켠 TV를 쳐다보았다.


아침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아침, XX역 근처 구 주택지구에서 또 한 명의 '급성 수면장애'의 발병자가 나왔습니다. 발병자는 OO군으로, 음악계에서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미래가 기대되는 신인이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급성 수면장애'는…』


「저녀석?」


엎어져있던 키리아가 고개도 안들고 웅얼거리면서 말했다.


「응」


「유명한 녀석은 역시 '저쪽'으로 가도 TV에는 나오는구나. 내 수요자들이랑 딴판인데」


키리아의 주 수요자층은 나와 비슷하게 학생들이지만, 전부 양갓집 규수라던가 아가씨들이 다니는 명문 여학교의 학생들만 있어서 세간에서 말하는 '급성 수면장애'에 걸렸다고는 해도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는다. 주 수요자층이 이렇다는건 바꿔 말하면, 키리아가 그 주변에서 살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키리아는 학교·학원이 세계 규모로 밀집 되어있는 지역에서 살고있다. 그녀 자신도 예전에는 규중처녀로 전 기숙사제 여학교에 다녔다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 난 학교에 가야하는데」


「………」


엎어진채로 반응이 없다. 뭐, 오늘은 학교도 오전 수업만 있으니 키리아 혼자 집에 둬도 문제는 없을것이다.


토스트를 먹어치우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 가방을 챙겨서 거실로 나올때까지 키리아는 소파에 엎어진채로 있고 뉴스의 아나운서는 열심히 혼자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풀어헤쳐져 산발이 된 키리아의 머리를 가방으로 쿡 찌르고는,


「학교 갔다온다. 다른건 다 괜찮지만 내 방에 있는 '그건' 건드리지마」


「………」


머리카락이 조금 흔들린걸 보면 고개를 끄덕인것 같다.


나는 조금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집을 나섰다.


 


내가 다니는 공립 고등학교는 내 집에서 걸어서 10분정도에 위치한 어느정도는 유명한 진학교다. 일상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보이는 학생들이 모이고, 각자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듯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실체는 어떨까 싶다. 지난 수요자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학교 학생도 몇 명이나 있었으니까.


집에서 나와 골목길을 두 개정도 지나면 나오는 대로를 따라 점점 오르막길의 경사도가 높아지는 길을 걷다보면 학교가 보인다.


나도 일단은 수험생이지만, 보충 수업이라던가 자율 학습등은 건강상의 문제로 죄다 빠지고 있다. 선생들의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세지만, 성적은 제대로 잘 나오고 있으니 따로 불려서 말을 듣는다던가 하는 상황은 없었다.


좋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가 성인이 되어서 취업을 잘 하려는 목적이라면, 나는 이미 학교를 다닐 필요조차 없다. 평생을 갈고 닦아야 할 기술을 이미 습득했고, 직업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을 이미 하고 있다.


교실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애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내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 하고 끝나니 학생회실에 들려서 회장을 만나고 가도 괜찮을것 같았다. 키리아가 걱정이지만, 분별이 없는 아이도 아니고, 내 방의 '인형'만 건드리지만 않으면 지금 있는 집은 반파되어도 귀찮을뿐이지 나에게 치명적으로 피해가 간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오전 수업이 끝났다.


 


최근에는 수업을 하는 선생도 거의 없고, 죄다 자습이기 때문에 세계관을 짜는데 용이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몇백 개씩이나 되는 '인형'을 만들어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세계관이 비슷해지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건 거짓말이다.


나는 '인형'의 오작동이 일어나지 않게 세계관을 형성할때 상당히 자세하고 치밀하게 세우기 때문에, 키리아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골격만 세우고 큰 덩어리만 붙인 후, 세부 작업을 안하고 내팽겨치는, 그런 느낌의 작업인 것이다. 키리아 자신도 자신은 상상력이 부족하니 어쩌니 말한걸 보면 그게 약점인것 같지만, '인형' 제작 기술만 보면 키리아는 나의 능력을 상회한다.


어쨌든, 세계관을 짜는 작업이 가장 고되기 때문에, 일의 효율을 위해서인지 부업으로 소설가를 하는 사람이 마리오네타중에선 꽤 있는걸로 알고 있다. 만든 세계관을 다채롭게 활용해서 전기물같은걸 써서 내면 수요층이 꽤 되는것 같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는 하고 싶지만, 어째선지 소설을 쓰는 능력은 없는것 같다. 수요자중에서도 작가 지망생 또는 작가가 걸린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부업으로 소설가라는건 아직까진 그림속의 떡이다.


자습을 하기 때문에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아이들과, 식당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섞여 혼란스러운 복도를 지나 끝으로 향했다. 진학교라 그런지 다른 부실들은 딱히 없지만, 학생회실만큼은 교실 두개분을 붙여놓은 크기로 복도끝에 위치한다.


둔탁해보이는 철제문에서 약 1초정도 망설이다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걸 깨닫고 주저없이 문을 열었다. 우선 보이는건 길다란 목재 탁자. 양 옆으로 열 명정도가 앉을 수 있게 되어 있고, 의자는 역시 같은 재질의 목재 의자. 문의 정 반대편의 오른쪽 구석에는 조금 시대에 뒤떨어진 PC가 놓여있고, 그 옆에의 책상에는 잡다한 파일들이 쌓여져 있다. 문에서 왼쪽 벽은 보통 교실에 달린 창문의 위아래로 두배 크기인 창문이 벽을 거의 꽉채우며 붙어있었다. 그 밑에는 세로로 세워놓아야 할 로커가 가로로 놓여있고, 안에도 역시 파일들이 가득 차있다. 시선을 돌려 오른쪽 벽으로 가면이곳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굉장한 장서. 창문과 마찬가지로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장은 다양한 종류의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책이 그렇게 신기해?」


그리고, 목재 탁자의 가장 끝, 말하자면 문과의 정반대편에 앉아있는 인물이 바로 학생 회장이다. 시원시원해 보이는 미인으로, 길게 자라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흑발이 포인트. 키리아와는 달리 자연산이다. 책을 읽을때나 사무를 처리할때만 끼는 네모진 얇은 안경 너머에서 이지적으로 보이는 흑안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적어도 한 학교에 학생회실에 있을건 아니죠」


나는 회장에게 다가가 옆에 앉으며 대꾸했다.


「그것도 회장의 개인물품으로서 학생회실에 있는건 좀」


「다른 애들은 아무 말도 안하던데」


「…뭐, 부외자인 제가 이러쿵 저러쿵 할 자격은 없지만요」


…아마 회장이 무서워서 말을 못하는거에요, 라는 말은 삼켰다.


「나 그렇게 안 무서워」


쿡쿡 웃으며 말하는 회장. 어림짐작이겠지만, 또 잘 맞는게 무섭다.


회장은 보고있던 파일을 덮고 깍지를 껴서 턱을 괴고서는 나를 보며 물었다.


「오늘은 어쩐일이실까,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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