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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 11일

칼리리 2016. 7. 11. 23:50








 "'대부호 타쿠난 씨, 나르기엔 프로젝트에 다시 새로운 캐릭터 보험 등록. 이번엔 세루!' ...리스, 이거 읽었어?"

 "네, 읽었어요. 대단하던데요, 이제 세루가 죽으면 우리는 타쿠난에게 2천만 달러를 지불해야 해요. 리리엔이 3천만 달러였으니, 둘을 동시에 죽이면, 게임을 500만 개는 더 팔아야 하는군요."


 리스가 담담하게 그런 소리를 했다. 


 "리스, 아아, 리스! 태평하게 그런 소리를 지껄일 때가 아니야! 우리는 이제 2D 캐릭터의 목숨을 어떻게 하면 지켜야할 지에 대해 온 스태프의 지혜를 모아 고민해야 한다고. 내 생전 이런 바보같은 일에 휘말릴 줄이야. 도대체 이 나라 법원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통과시킨거야? 보험회사는 또 어떻고!"

 "제가 2분정도 생각해 본 결과, 이건 몇 가지 불행한 일이 겹쳐서 일어난 매우 불행한 일이에요. 들어보시겠어요?"

 "말해봐."

 "우선 타쿠난인지 난 오타쿠인지 하는 그 불결한 돼지자식이 세계 대부호 순위에서 2위부터 25위까지의 자산을 더한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슈퍼 억만장자라는 점. 그리고 그 돼지가 우리가 만든 유저참여형 종합 미디어 프로젝트인 나르기엔에 흠뻑 빠진 골수 유저라는 점, 마지막으로 그 더러운 놈이 자신이 빨아제끼는 캐릭터를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나갔다는 점이죠.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걸 보면 정말 불행하네요."


 안 그래도 아팠던 머리가 리스의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들으니 더욱 아파졌기에, 나는 소파에 쓰러졌다.

 그러자 리스가 살며시 다가와 내 머리 근처에 앉았다.


 "저기, 마스터. 그 돼지는 왜 나르기엔의 판권을 사버리지 않는 걸까요? 그자가 법을 수정하려고 국회나 각종 위원회에 뿌린 돈을 합쳐도 우리 회사의 시가총액은 가뿐히 넘을텐데."

 "...내가 정답을 알려줘도 될까, 리스? 그건 바로 그 빌어먹을 돼지새끼가 '나는 나르기엔 안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유저 중 한 명일 뿐이다. 나르기엔은 불특정 다수의 유저의 손에서 움직일 때만 가치가 있는 이야기다' 따위의 신념을 가진 아주 바람직한 유저이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자기가 빠는 캐릭터가 죽는 꼴을 못보는 졸렬한 놈이기도 하지! 차라리 그 새끼가 우리 회사를 단번에 사버리고는, 이야기에 자신을 등장시켜서 세루와 리리엔의 3P를 만들라고 명령한다면 이렇게 머리아프게 고민할 필요도 없을텐데."

 "...우엑. 상상하니까 토할 것 같은데요."


 말을 꺼낸 나도 토할 것 같았다. 


 "어쨌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해. 리스, 우리 회사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네가 의견을 내봐."

 "총 재적인원 2명인 회사에서 두 번째로 똑똑하다고 말하다니, 지금 저를 비웃으신 건가요?"

 "그럴리가. 뭐하면, 내가 첫 번째의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어. 그러니 좋은 의견이 있으면 기탄없이 얘기해  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거네요. 나르기엔을 포기한다. 판권을 팔아버리죠. 돼지 새끼말고도 돈 많은 사람은 많고, 나르기엔을 사 줄 사람도 많잖아요?"


 리스의 말에 나는...

 아니,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지.


 "각하. 내가 나르기엔을 얼마나 아끼는지 너도 알잖아?"

 "돼지가 판권을 산다면 넙죽 넘길 정도로 아낀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건 비유, 예시, for example, for instance, exampli gratia, OK?"

 "...두 번째는, 혹시 세루나 리리엔이 죽었을 경우 돼지에게 줘야하는 5천만 달러로 킬러를 고용하죠. 그런 다음 그 돼지새끼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죽어버리도록 의뢰하는 거에요. 제 가슴은 이 방법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군요. 에헴."


 리스가 빈약한 가슴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2초정도 그 제안에 대해 고민했다.


 "훌륭한 제안이지만, 가슴은 좀 더 키우는 게 좋겠군. 아쉽지만 각하야. 불법적인 일은, 당연하지만, 저지를 수 없을뿐더러, 그 돼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죽이기 힘든 돼지야. 그 양반이 사는 집에 핵미사일이 떨어져도 살아남는다는 것에 오늘 저녁 식사를 걸 수 있어."

 "그렇군요. 그래봐야 돼지우리겠지만, 지금 잠시 검색해보니 마스터 말이 맞네요. 전 저녁으로 통돼지구이가 좋을 것 같아요. 이 근처에 잘하는 곳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며 리스가 입맛을 다신다.


 "잠깐, 내기는 내가 이겼잖아? 그럼 방금 그 말은 네가 그걸 산다는 소리겠지?"

 "아무도 그런 내기에 응한 적은 없어요, 마스터.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와 하신 건가요? 불쌍해라."

 "그렇게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기전에, 세 번째 제안을 하는 게 어떨까? 두 번째로 현명한 리스 양. 아니면, 이걸로 끝인가?"

 "그럴리가요. 세 번째는 이거에요. 마스터가 유튜브에 무릎꿇고 고개를 바닥에 쳐박는 영상을 올리는거죠. 전 세계의 나르기엔 유저 여러분 저를, 아니, 세루와 리리엔을 살려주세요, 하고."


 5초 생각해봤다.


 "좋은 방법이야. 하지만 무리야. 대표인 내가 무릎꿇고 빌어도 그 악랄한 유저들이 세루와 리리엔을 살려줄 것 같진 않아. 그 난타쿠인지 타쿠난인지가 보험을 든 순간부터 우리를 엿먹이려고 세루와 리리엔을 사지로 몰아넣는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거든. 지금은 여러 행운이 겹쳐서 간신히 죽지 않는 수준이지만... 이 흐름을 막으려면 나따위가 사죄해서 될 게 아닌 것 같아. 수석 디렉터가 옷을 벗고 봉춤을 추는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을까?"

 "아쉽지만, 벗어도 별로 보여줄 게 없는 빈약한 가슴이라. 회사에서 두 번째로 똑똑하고 현명하고 지구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제가 생각하기엔 이 정도 제안이 한계인 것 같네요. 마스터의 고견을 들려주세요."


 고견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게 있을리 없잖아. 그리고 이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두 번째로 아름다운 게 너라고 치고, 첫 번째는 누구지?"

 "비밀이에요. 그보다 이건 정말로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어떻게 할거에요, 마스터? 세루랑 리리엔은 인기투표 순위도 미묘한 애들이라 유저들이 작심하고 죽이려고 들면 조만간 정말로 죽일 수 있을텐데."

 "......리스가 알몸으로 체조를 하는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수밖에."

 "마스터, 전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요."

 "나도 진지, 아니, 음. 그래, 이건 어떨까? 발상을 바꿔보는거야. 말하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지. 두 가지정도 생각난게 있는데 들어줘. 우리가 게임마스터로서 나르기엔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적지만,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

 "새로운 캐릭터의 생성이죠."

 "그래! 그거야. 지금이야 그 돼지놈 때문에 유저의 관심이 세루와 리리엔에 쏠려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여럿 만들어서 관심사를 돌려버리면, 인기투표 순위 5위와 7위인 어중간한 캐릭터따위 금방 잊혀질 게 분명해. 리스 너를 지구에서 6번째로 예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캐릭터를 4명 정도 만들어버리자고!"


 내가 그렇게 열변을 토했지만, 리스의 반응은 어쩐지 시큰둥하다.


 "우선 그건 알겠어요. 두 번째 방법은 뭐죠?"

 "두 번째는 이거야. 반대로 현재 파티의 멤버에서 세루와 리리엔을 뺀 나머지 인원들을 전부 없애는 거야. 그렇게 되면 유저들은 어쩔 수 없이 세루와 리리엔을 살릴 수밖에 없겠지. 나르기엔이 끝장나는 걸 보기 싫다면."

 "그게 두 번째 방법인가요? 어디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지 모르겠는데. 게다가 나머지 인원들을 전부 없애다니, 어떻게요?"

 "그건 이제 수석 디렉터인 리스가 생각할 일이지."

 "이건 반론할 가치도 없는 얘기군요. ...아까 말씀하신 첫 번째 방법은 우선 중대한 문제가 있어요. 새로 만든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인 나머지 돼지가 또 다시 보험에 들면 우린 완전 망하는 거에요."


 그건...

 그렇군.


 "두 번째는 수단도 없고, 수석 디렉터로서도 별로 권하는 방법은 아니에요. 인기 좋은 캐릭터들을 내칠 수는 없으니."

 "그건 그래. 아아, 정말! 그 망할 새끼는 왜 하필 우리 게임에 관심을 가져서 이 모양인거야? 판권 인수가 싫다면 기부라도 해서 게임 운영에 보탬이라도 될 것이지, 왜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을... 차라리 그냥 세루랑 리리엔을 죽여서 편해... 죽여서. 죽여? 아! 그래! 그거야!"

 "? 왜 그러시나요 마스터, 갑자기 돼지를 죽일 방법이 생각난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야. 이거야말로 정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야. 좋아, 인터넷에 그 돼지가 보험회사와 맺은 계약 내용이 있겠지?"

 "네. 유저들에게 알리기 위해 계약 전문을 개인 웹사이트에 공개해놨어요."

 "좋아, 그거 가져와 봐. 검토한 후에 처리해버리자!"


 내가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자 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는,


 "대체 뭔데요, 마스터? 방법이 생각난 건가요?"


 그렇게 말했다.

 음, 무지한 리스를 위해 조금 설명해주는 게 좋겠지.

 나는 리스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 후에 조용하게 그 방법을 설명했다.




 일주일 뒤.

 나와 리스는 일주일 간 지속된 보험회사 관계자의 조사를 방금 막 끝마쳤다.


 "결과는 어떻게 됐죠?"

 "괜찮을 것 같아. 뭐라해도, 설마 세루와 리리엔이 납치를 당할 줄은 몰랐겠지."


 그렇다. 게임 마스터인 우리가 나르기엔에 관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캐릭터의 생성, 그리고 파티에 적대하는 몬스터의 생성이다.

 일주일 전 나와 리스는 나르기엔에 새롭게 '납치형' 몬스터를 생성해서 던전을 꾸몄다. 당연하지만, 유저들은 세루와 리리엔을 보냈고, 몬스터는 그 둘을 납치해 사라졌다.


 "공식상으로는 오늘로 사망이죠?"

 "뭐, 그렇지. 설정 상 일주일 동안 구해내지 못하면 사망하는 걸로 됐으니까"

 "보험금 문제는 어떻게 된거에요? 사망이라면 돼지가 설정한 보험에 걸릴텐데."

 "아까까지 조사원이 조사하고 간 게 그거야. 계약 내용엔 세루랑 리리엔이 각종 원인에 의해 실질적인 사망에 이르렀을 때 보험금이 지급된다고 되어있는데, 납치로 인한 '설정 상 사망'은 그 계약 내용에 포함되어있지 않거든. 당연하지만, 시체가 없으니까 확인도 안되고. 설정 상으로는 사망이지만 나르기엔 어딘가에서 그 몬스터와 잘 살고 있을 가능성도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데이터는 없지만."

 "인터넷에서는 의도적 살인이라고 비난하는 의견도 있던데요."

 "어쩔 수 없지. 실제로 의도한거니까. 그래도 결정은 유저가 한 거고, 일주일 동안 구해내지 못한 것도 유저니까 돼지도 할 말은 없을걸? 보험회사 관계자는 납치한 후 일주일 안에 구해내면 캐릭터가 살아난다는 설정이 사실은 거짓말이 아닌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던데, 너도 알다시피 그런 건 아니잖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 거야. 뭐, 결과만 보자면 내 천재적 발상으로 계약서 상의 헛점을 찌른 거랄까, 하하하."


 웃는 와중에 리스의 시선이 아프다.

 리스는 차가운 표정으로 노트북을 보여줬다.

 화면 안에는 세루와 리리엔이 알몸으로 뒤얽혀서 촉수같은 것에 휘말려 있는 그림이...


 "몬스터의 디자인이 쓸데없이 징그러운 바람에 인터넷에서는 난리라고요. 세루와 리리엔이 몬스터한테 엄청난 꼴을 당하는 그림이 수 만장이나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 보세요. 우-와"

 "뭐라고? 나중에 검토해볼테니 잘 모아둬."

 "성희롱인가요? 성희롱이죠?"

 "그럴리가."

 "...그나저나, 이번에는 잘 넘어가긴 했는데, 돼지가 다른 캐릭터도 그런 식으로 보호를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이런 식으로 해결이 된다는 걸 알았을테니, 유저들도 순전히 흥미만으로 사지로 몰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다행히 그 돼지는 여러모로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니니까, 또 그런 짓을 하면 호응을 얻긴 힘들걸?"

 "그러니까,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다는 소리죠?"


 그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이렇게 하는 건 한 번이면 족해. 게임 마스터가 게임에 관여를 안 할 수록 좋은 게임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하니까. 이야기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 회사도 아니고, 물론 그 돼지 새끼도 아니고, 유저니까 말이야. 설령 돼지가 이번에도..."

 "'대부호 타쿠난 씨. 이번엔 나르기엔 프로젝트에 참여할 유저 모집중...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하되 큰 방침은 타쿠난이 지정한 틀에 따를 것. 참여인원 10만 명. 시급 200달러' 방금 뜬 기사인데요?"


 ....


 "그럴 거면 그냥 회사를 사라고 이 돼지 새끼가!"

 "진정하세요, 마스터!"


 아무래도, 진지하게 킬러를 고용하는 걸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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