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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21일

칼리리 2018. 1. 22. 01:00


철지난 비일상.





 0.



 동생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예상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고 나니 당황스러움보다는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이 더 컸다.


 "마스터의 형제분이시군요? 안녕하세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모르는 얼굴의 아가씨가 나를 맞이해줬다. 옆에는 윤-내 동생이다-이 난처한 얼굴을 하고있다.

 아가씨와 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다가, 나는 윤을 잡아끌고 아가씨의 눈을 피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장하다, 내 동생. 드디어 해냈구나. 난 네가 언젠가 해낼 거라고 믿고 있었어."

 "잠깐만!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여자애는 딱히 내가……."

 "아, 그래. 네가 데려온 건 아니겠지. 우유부단에 착해빠진 네가 집에 여자애를 데려올 배짱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으니까 걱정 말고."

 

 내 말에 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건 그거대로 좀…… 이라며 말을 흐렸다. 귀여운 녀석. 방금 같은 표정으로 몇 명의 여자를 희생자로 만든거냐. 주로 옆 집 애들이 당했겠지만.

 

 "저 아가씨의 외양을 본 걸로는, 뭐, 어딘가의 이세계에서 무언가의 목적을 위해서 날아왔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거겠지?"

 "……."

 "어때, 맞지?"

 "……잠깐 형이 무섭다고 생각했어."


 폼으로 십수년을 서브컬쳐를 섭렵하며 보낸 게 아니다. 

 본래라면 제정신이냐며 웃어 넘길 상황이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기웃거리며 우리들의 눈치를 보는 저 아가씨의 외모는 보자마자 현실이 어쩌고 하는 것들을 떠올릴 수 없을만큼 초현실적이었다. 

 단정한 얼굴에 황금빛 머리카락, 이국적인 디자인의 옷,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지팡이.

 언젠가 동생이 일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에 마음을 다잡아뒀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보자마자 고백했을 정도의 미소녀였다.


 "좋아.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지팡이를 꼭 껴안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가씨를 곁눈질하며 나는 윤에게 말했다.


 "잘 들어, 윤. 너는 평소대로 행동하면 돼."

 "평소대로라니. 전혀 평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아니아니, 너라면 할 수 있어. 평소대로 여자애들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평소대로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고, 평소대로 여차할 때 진심을 내면 돼. 그걸로 충분해."

 "욕하는 거야? 그거 욕하는 거지?"

 

 발끈하는 윤을 무시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 아가씨 혼자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일이 시작된 이상, 제 2, 제 3의 아가씨가 나올 거라고. 등 뒤에서 부엌칼로 찔려 죽는 엔딩을 맞이하기 싫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알겠어?"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그냥 평소대로 행동하면 된다니까. 그리고 저 아가씨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해야겠지. 우선 목적을 들어봐야겠다."

 "아, 잠깐……."


 거실로 나가 아가씨에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윤의 형입니다. 적당히 오빠라고 불러주세요."

 "멍청이!"


 퍽하고,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이게 7살 위의 형한테 할 짓이냐, 동생이여.

 아가씨는 은근슬쩍 몇 걸음 물러나있다. 괜한 소리를 했나.


 "됐어, 내가 소개할게. 이쪽은 내 형. 나보다 7살 위야. 이름은 이수경. 그리고 이쪽은 방금 이세계?에서 온 미카스…… 어, 뭐라고 했더라?"

 "그냥 미카스면 됩니다. 마스터."

 "으, 응. 미카스 씨야."


 미카스라고 불린 아가씨가 꾸벅 인사를 한다.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돌려준다.


 "부모님이 해외에 계셔서, 일단은 제가 이 집의 가장입니다만, 사정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미카스 씨?"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스터의 가족분이니, 말은 놔주세요. 그 편이 저도 편해서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알았다고 얘기했다.

 서서 이야기하기도 뭐해서, 우리는 소파로 이동해 앉았다.


 "아까 마스터께 말씀드렸지만,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죠. 복잡한 사정을 제하고 간단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이 세계로 도망쳐 온 마왕님을 원래 세계로 다시 데려가기 위해 마스터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인-마스터-가 없으면 제대로 활동이 불가능해서, 마스터에게 부탁을 드린거에요."


 마왕! 그렇게 나왔나. 


 "개인적인 사정이란 건?"
 "그렇게 해야하는 계약에 묶여있어서……. 자세한건 좀."


 미카스는 말을 흐렸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윤이 해야하는 일은?"
 "제 근처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돌아갈 뿐이니, 위험한 일은 없을 거고요. 평상시는 집에서 지내시다가 제가 요청할 때, 잠깐 저와 동행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 마왕이라는 사람이 도망쳐 온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평상시에도 직무를 내팽겨치고 놀러다니길 좋아하던 분이시라, 이번에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미카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고생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미인은 찌푸린 표정도 아름답구나. 서시의 고사는 정말이었다.

 

 "저기, 마왕이라고 그랬는데, 마왕이 있으면 용사도 있는 거야?"

 

 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그렇게 물어왔다. 중요한 질문이다. 미카스는 마왕이 이쪽에 온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이유라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용사에게 패해 이쪽으로 도망쳐와서 알바라도 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한참 달라진다.

 그러나 미카스는 윤의 질문에 웃으면서 손사레를 쳤다.


 "아쉽지만 없습니다. 저희 세계에서도 그런 류의 모험소설이 있어서 잘 알고 있는데요, '마왕'이라는 건 일종의 호칭일뿐, 그런 이야기에 나오는 흉악한 악의 화신이 아니에요. 저나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윤이 선택된 이유는 뭐야?"

 "세계간 이동을 했을 때, 가장 파장이 잘 맞는 인간을 선택했는데 그게 마스터였습니다."

 

 미카스는 간단하게 그렇게만 얘기했다.

 

 "너는 어때?"

 "어, 나?"

 

 그래, 너.

 

 "나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데. 뭔가 곤란해보이는 것 같고, 미카스 씨."

 "그래, 뭐 본인이 그렇다니까 나는 더 할 말은 없네. 윤을 잘 부탁해, 미카스."

 

 그 말에 미카스가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 이걸 물어보는 걸 잊었네. 이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줘도 돼?

 "네, 크게 상관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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