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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괴물이 소리없는 비명을 지른다. 검은색의 촉수를 사방으로 뻗으며 닥치는대로 주변을 뭉개는 부정형의 거대한 생물체. 민가 두 세개 정도의 크기가 꿈틀대는 모습은 생리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이 나무만 몇 그루 있을뿐인 평야지대여서 다행이라고, 트라하는 생각했다. "저거냐?" 트라하가 말하며 옆을 보니, 시스는 백색을 기조로 한 다소 노출도가 높은 복장으로 어느새 바꿔입고 있었다. 처음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이다. 시스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일그러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부정不正이야. 편의상 요수라고 부르는데…… 저기, 이런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빨리 해치워야지! 너만 도와주면 내가 해치울 수 있어. 계약만 하면……." "잠깐만 기다려 ..
- 0. "잘 생각해봐. 네가 어디에 있는지." 1. "미안. 착각했어. 너가 주인공인줄 알았어. 흑발이어서, 그 왜, 흑발은 주인공의 상징이잖아? 주변에 잠깐 돌아보니, 흑발은 전혀 없더라고. 그리고 그 어딘가 퇴폐적인 분위기가 딱이었어. 보자마자 생각했지. 이번은 럭키. 금방 찾았네. 얼른 죽이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아,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건 바로 알았어. 정말 너무하지, 끝이 바로 보일 정도니까. 조금만 걸어도 세계의 끝이 보이는 세계라니. 신은 얼마나……"잠깐."" 눈을 뜨자마자, 두서없이 지껄여지는 말의 홍수에 휩싸였다. 익숙한 이불에, 익숙한 천장. 내 방이다. 정면에는 모르는 얼굴의 여자애가 고개를 내밀어 누워있는 내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다. 무슨 상황이지? "넌 누구야?" 몸을 일으키..
- 1. 비가 내린다. 나는 화급히 나무 위에 말려둔 웃옷을 걷고, 천막 아래로 숨어들었다. 저녁즈음부터 구름이 몰려든 것이 심상치 않았는데,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거센 빗줄기가 천막을 치는 소리가 시끄럽다. 고요한 초원의 밤을 즐기려던 내 계획은 완전히 실패였다. "……." 문득 빗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사람일까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는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대륙 굴지의 대도시가 있다. 이런 곳에서 야영할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저기." 이번엔 제대로 소리가 났다. 천막 입구를 들춰보니, 비에 젖은 여자가 서 있었다. "……." "……." 여자는 첫 마디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리는 비를 우두커니 서서 맞는 여자를 잠시 지켜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