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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13일

칼리리 2016. 12.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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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왕에게 죽어버린 유령 B양의 경우.


 

 "일찍이……. 세계의 뒤에서 인류를 지키는 싸움을 고독하게 지속했던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엄숙하게 운을 띄운다.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강하고 고결하며, 으음, 아, 아름다웠던 그 소녀는 어느날 다시없을 세계의 위기가 곧 닥칠거라는 예언을 받게된다."

 "……."

 "아, 아름답고 강한 그녀였지만, 역시나 세계의 위기에 맞서기엔 힘이 부족했고, 그녀는 조력자를 구하러 세계의 앞면……, 즉, 보통의 세계로 온다. 그리고…….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싸울만한 잠재력을 가진 소년의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나와 함께 세계를 구해줘.'"
 "그러나 그 소년은 이미 마왕 퇴치라는 선약이 있었고, 퇴짜를 맞은 그 소녀는 소년에게 매달리다가 결국 마왕 퇴치에 힘을 보태게 된다."

 "잠깐! 그러면 이야기가 안 살잖아! 소녀와 소년이 힘든 싸움과 고난, 역경을 딛고 결국 세계의 적을 해치우고 이어진다는 얘기를 문고본 6권 분량으로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소녀가 화를 내며 말한다.

 6권이라니, 너무 길잖아.

 

 "실제로 이야기가 그렇잖아. 노랑이한테 밀렸는데도 고집부리다가 결국 마왕 퇴치까지 같이 하고, 하는 도중에 그 세계의 적이 마왕이었다는 웃지못할 사실도 알게 되고 말이지."

 "그리고 마왕한테도 죽어버리고 말이지. 이야, 거기서 죽지 않았다면 윤이 선택한 건 나였을텐데. 아쉽다, 아쉬워."

 

 소녀가 에헤헤- 웃으며 가볍게 말한다.

 죽은 지 5년이나 돼서 자신의 죽음에 무뎌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아가씨는 자기가 죽은 직후, 유령이 됐다는 걸 알자마자 이런 태도를 보였었다.

 지혜롭고 고결한지는 몰라도, 멘탈이 강한건 정말로 확실하다.

 아름다운 것도, 뭐어, 맞으려나. 아름답다기 보단 예쁘고 귀여운 쪽이지만. 


 "그런고로, 마왕에게 죽고 유령이 되어버린 B양입니다."

 "응? 뭐야? 그 B양이라는 건."

 "신변보호의 일종이야."

 "뭐에게서?"
 

 순진한 얼굴로 그렇게 물어온다. 아, 그렇지.

 이녀석 유령이지.

 게다가 남에게 보이고 안보이고를 조절할 수 있다.

 귀찮기 짝이 없는 특성이다.


 "뭐, 좋잖아. B양. 미스테리어스하고 범죄적인 분위기를 풍기니까."

 "상관없지만. B양이라는 건 A양도 있는 거야?"

 "방금 노랑이네 집에 다녀왔던 참이야."
 "헤에, 그렇구나."


 B양은 둥실둥실 떠다니며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 한가로운 모습에 자연히 웃음이 지어진다.



 집으로 돌아온 뒤, 게임을 더 한답시고 기를 쓰고 감기는 눈을 붙잡던 신리를 억지로 재운 뒤에 나는 소환의식을 시행했다.

 의식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오라고 부르면 된다.

 반응은 역시 재빨라서, 5초도 지나지 않아 유령은 벽을 뚫고 나왔고, 뭐가 기분이 그리 좋은지 아까부터 시종일관 들뜬 상태다.

 

 "그래서, 그래서? 무슨 일이야? 직접 불러주는 건 꽤 오랜만이잖아?"

 "응, 뭐……. 5년이나 지났으니 한 번쯤 다들 어떻게 사나 돌아보는 중인데. 일단은 너도 히로인 대상이니까 불러봤어."

 "흐응, '일단은'?"

 "그야 너, 지금은 별 감정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B양의 경우는 조금 경우가 달라서, 유령이 되었다는걸 알고 깔끔하게 윤을 포기했다.

 그 단칼에 끝맺음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로, B양은 좋을대로 살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내 집에 얼굴을 비추지만, 다른 날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A양의 말을 들어보면 그쪽도 간간히 가는 것 같은데.


 "그렇네. 생각해보니 이런 몸이 된 뒤로 윤을 보러 간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아무리 깔끔하게 접었다해도 설마 한 번도 안봤을 줄이야.

 B양이 고개를 응, 응, 하며 끄덕인다.


 "그치만, 윤의 여자친구인 걔는 어차피 날 보지도 못할테니, 축하한다고 인사도 못해주잖아? 이제와서 윤을 볼 필요는 없고."

 "그건 그렇지만."

 

 유령이 된 상태여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걸 알면 윤이 좋아하지 않을까.

 죽었을 당시에도 굉장히 슬퍼하기도 했었고……. 

 뭐, 결혼하고 나서는 그런 기색은 전혀 안보이긴 했구나. 윤, 이 나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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