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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 2016년 10월 9일

칼리리 2016. 10. 10. 00:44

 



 -


 뜬다.

 감겨있는 눈을 뜨듯, 눈을 뜬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눈을 뜬다.

 본다.

 여러 장의 셀이 겹쳐있듯, 등 뒤로 겹쳐있는 모습을 본다.

 읽는다.

 꺼내어 읽는다. 언제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연'이 없는 사람을 보는 것은 일주일이 한도. 통상적이라면 일주일 간 일어나는 일은 별 볼일 없는 시시콜콜한 일들이 많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앞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20대의 여성에게는 다소 가혹한 일주일이 될 것 같다.

 이후의 보이는 미래가 3일까지 밖에 없다.

 층층이 쌓인 모습이 어쩐지 적다 싶었더니.

 3일 뒤, 이 여성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골목 한구석에 위치한 수상쩍은 가게에 흥미본위로 찾아온 게 분명한 여성이 이런 식으로 가버리는 걸 보는 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일이니, 미리 걱정시켜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미래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별 다른 일은 없을 겁니다. 평소와 같이 평범하고, 즐거운 나날들이 계속될테니 안심하고 즐겨주세요. 남자친구와도 사이가 더욱 좋아질 겁니다. 그에게 잘 대해주세요."

 "흐응, 그런가요? 뭔가 커다란 사건 같은 건 없나요?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그런 어중간한 말만 들어서는 미래를 점친다는 말은 전혀 못믿겠는데."

 "못 믿으셔도 할 수 없죠. 실제로 보이는 게 그런 거니까요. 인생의 절대 다수는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는 날들입니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리고 그게 꼭 좋은 일이라는 보장은 없죠."


 도발적인 어조로 여성은 보란듯이 말하지만, 나도 하루이틀 장사하는 게 아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여성은 재미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벌떡 일어서서 문으로 발을 옮긴다.

 나는 그 등 뒤에다,


 "다른 곳에 내용을 발설하는 건 삼가주세요!"


 라고 매번 하는 대사를 소리쳤다.

 벌컥 열린 문 너머로 여성이 빠른 걸음 걸이로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겨우 오천 원.

 수지맞는 장사는 아니다.

 눈 앞에서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사람이 얼마 뒤에 죽어버린다는 상황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제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여성을 향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명복을 빌어줬다.


 그리고 눈을 뜨니,

 눈 앞에 웬 여성, 아니 소녀가 있었다.

 많이 쳐줘야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는 중국풍의 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방한용의 모자, 우샨카라고 하던가, 그걸 쓰고 있었다. 모자 사이로 빠져나와 기다랗게 하나로 묶은 머리채가 인상적이다.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귀여운 얼굴이려나. 하지만 성격은 별로일 것 같다. 상대방에게 심술궃은 말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게다가 어쩐지, 붉은 색소가 섞인 눈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이런 소녀가 나타난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지만, 소녀를 대충 훑어본 뒤에 나는 한층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녀의 등 뒤로 쌓여있는 미래의 모습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내가 볼 수 있는 미래 기간의 한도는, '연'이 없는 자라면 일주일.

 그리고, '연'이 있는 자라면 10년이다.

 통상적으로 미래를 점치는 점술사라면 보통이 한 달에서 두 달.. 뛰어나면 1년 정도. 그리고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5년까지 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허용 한도가 극과 극을 달리는 반푼이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연'이 있는 자라면 꽤 멀리까지 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등 뒤에 미래의 모습이 밀도 높게 쌓여있다.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쌓여있다.

 지금도 소녀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내 책상 앞에서, 적어도 5미터는 떨어져 있을 가게의 문까지 쌓여있다.


 여하간 그런 소녀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오늘을 계기로 뭔가의 '연'이 만들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허투루 대해서는 안되겠지.

 해서, 다시 소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소녀는 나를 보고 뭘 생각했는지 무뚝뚝한 표정에 한줄기 자신감이 엿보인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 왔는지, 알겠지?"


 소녀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당연하지만,

 모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일로 오셨죠? 목적 예측을 위해서는 미래를 보는 것에 대한 동의가 필요한데요."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모른다. 애초에 처음 보는 사람이고.


 "이걸 봐도 몰라?"


 소녀는 주머니 속에서 렌즈, 아니 외안경인가. 은으로 된 테두리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고 주머니에서 난폭하게 꺼낸 것 치고는 렌즈에는 잔기스 하나 없이 깔끔하다.

 확실히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긴 한데,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이라도 지었는지, 소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모노클의 안, 못 들어봤어!? 너도 점술가 나부랭이라면 업계 소식쯤은 알 거 아냐?"


 동업자인가.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웃기는 별명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본인들은 어떻게 느낄진 몰라도 제 3자가 보면 '중2병 아냐, 중2병?'이라고 말할 정도의 네이밍 센스다.

 그런데 모노클의 안이라.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복면 미소녀 점술가?"

 "……읏, 그, 그래! 그 모노클의 안이야!"


 언제쯤인가, 업계 소식지에서 대대적인 천재가 나타났다면서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었다. 모노클을 주 도구로 쓰면서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는 점술가에 대한 기사였는데, '자세한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본 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정체는 절세라는 이름이 붙을만큼 아름다운 미소녀로…' 운운하는 기사였다.

 실제로 보아하니 절세의 미모까진 아니니, 과장이 조금 섞였으려나.


 "그래서 그 천재 미소녀 점술가께서 이쪽엔 무슨 일이야?"

 "너도 업계인이라면 구역분할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소녀, 안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구역분할.

 뭐, 쉽게 설명하자면 먹고 살기 힘든 이 바닥에 종사하는 자들이 서로 경쟁하다 공멸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 일정 거리 안에서는 같이 장사를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니까 무슨 반경 몇 m에는 같은 피자 체인점이 못들어온다는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나는데, 속내를 보자면 조금 더 복잡한 내용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다.


 "물론이지. 사전 답사로 확인한 건 물론, 협회의 인가도 받았으니 아무 문제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래서 구역을 넘어서까지 호객행위를 하시나?"


 양껏 빈정거리는 어조로 안이 말한다.

 내 가게가 자리한 골목은 대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골목을 수차례나 걸어야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입소문이라는 것도 일단은 일정 수준의 손님이 있어야 생기는 법. 때문에 나는 점원을 시켜서 손님을 끌어모으라고 시켜놨었는데……

 아무래도 구역을 넘어간 모양이다.


 "아, 아. 우리 점원이 아직 구역 구분을 잘 몰라서 벌어진 일 같은데. 미안, 사과할게. 점원한테는 내가 다시 말해놓도록 하지."

 "아니, 그런 식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야. 호객행위도 행위지만, 애시당초 이 도시에서는 나한테 독점권이 부여되어 있었다고. 다른 사람이 가게를 차릴 수가 없게 되어있을텐데. …어떻게 협회를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당장 나가줘야겠어."


 안이 서늘한 눈초리로 그렇게 말했다.

 당장 나가라고 해도 곤란할 뿐인데.

 나갈 이유도 없고.

 설령 이유가 있다한들 나가란다고 예, 알겠습니다, 하고 나가줄만큼 성격이 좋지도 못하다.


 "나는 정식으로 발행된 협회의 인가서를 가지고 있다고. 남이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사양이야. 아무리 그 유명한 복면 미소녀 점술가라고 해도 말이야."

 "……큭, 그,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상태로 목소리를 높이는 안.

 복면 미소녀 점술가라는 말은 자신도 부끄러운걸까.


 "그렇다면, 실력으로 겨루는 수밖에! 실력이 나보다 부족하다면 가게를 접고 나가줘야겠어!"


 뭐, 타당한 제안이다.

 협회가 규약으로 제한을 걸어두긴 해도, 일이 일인지라 동업자들 간의 충돌이 비교적 자주 일어나는 편인데, 그 때마다 치고박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대부분은 서로의 능력을 비교해서 능력이 부족한 쪽이 양보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안의 제안은 아주 억지이기 때문에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전혀 없지만, 앞날을 위해서 한 번쯤 깨지는 게 안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연이 있는 관계니, 자주 볼테고.


 "좋아. 간단하게 멀리 보는 것 정도로 괜찮으려나?"

 "흥, 그 정도면 충분해."


 안이 모노클을 눈에 가져간다.

 원래 점술가가 다른 사람의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명시적인 승낙이 필요하지만, 이 경우 서로가 동업자기 때문에 방금같은 암묵적 승인으로도 보는 게 가능하다. 나는 조금 특수한 체질이라 쓸데없이 사람 뒤에 층층이 쌓인 미래가 보이거나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승낙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보게 된다.

 모노클 너머로 붉은 눈동자가 깜박이다가, 이윽고 감긴다. 어째서인지 모노클을 끼지 않은 쪽의 눈으로 나를 본다.

 으음, 이 서늘한 감촉은 확실히, '보여지는' 감각이다.

 나도 안의 뒤로 죽 늘어서 있는 그녀의 미래를, 보고, 읽는다.

 가볍게 일주일 뒤, 한 달 뒤, 1년 뒤, 3년 뒤, 5년 뒤, 그리고 10년 뒤.

 …………

 …………

 조금 놀랐다.

 연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쌓인 양이 많길래 무슨 연유인가 했더니, 과연.

 속은 놀랐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안을 다시 보니,


 "……으, 읏……이, 이럴 수가……"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완벽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조형이 좋은 얼굴이지만, 미래를 보고 나서 보니 발갛게 익은 얼굴이 더욱 귀여워 보인다.

 안이 볼 수 있는 미래는 어디까지려나.

 안은 천천히 미래를 읽는 건지,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붉은 얼굴로 당황했다가, 화를 내는가 싶더니,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인다.

 나는 일부러 세세하게 보지는 않았지만, 안은 꽤 세세하게 보는지 내리 10분을 그런 상태로 있다가 모노클을 내려놓았다.

 얼굴은 여전히 붉다.


 "……그, 너, 너는 어, 어디까지 봐, 봤어?"


 독기가 빠진 말투로 그렇게 물어온다.

 끝까지, 라고 말하려다가 도로 삼키고, 나는 말 없이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안은 그 모습을 보고 무얼 생각했는지, '그, 그래'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장 죽일 것처럼 달려들며 강짜를 부리던 안이 지금은 묘하게 조신한 태도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귀엽다.

 작은 두 손을 연신 붙잡고 떨어뜨리며 초조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점이나, 내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경은 쓰여서 흘끔흘끔 보는 시선이나, 아직도 붉은 기가 가시지 않아서 잘 익은 복숭아같은 얼굴이나, 작은 체구에 걸맞는 아담한 가슴이나…… 아니, 이건 아닌가.


 "……."

 "……."


 그런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안이 귀엽고 예쁘게 보이는 건지, 아니면 반대인지.

 미래는 절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보는 점술가들은 하나같이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몇 년정도 머리터지게 고민하다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3년정도 전부터인가, 그런 문제에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안은 어떨까.

 실력은 확실하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이니만큼, 아직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본인의 미래가 강하게 얽혀있는 모습을 보았을테니, 혼란스러울지도.

 뭐어, 저 부끄럽고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저 나이대의 소녀다운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태도를 보아하니, 상당히 멀리 본 것 같은데, 어디까지 봤는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 안?"

 "……!? 으, 으응, 아, 아니, 그, 그렇게 많이 보,보지는 않았는데……"


 이름을 부르자 놀라면서, 그렇게 말한다.


 "뭐, 뭐어, 그, 그래도 너도 어느 정도는 실력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내, 내쫓는 건 잠시 보류해줄게."

 

 안은 아직도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인 채로, 힘껏 허세를 부리며 그렇게 말했다.

 암, 그러셔야죠.

 

 "그거 고마운 일이네. 앞으로 볼 일이 많을 것 같으니까, 잘 부탁해."

 "…………."

 

 그렇게 말하며 내가 내민 손을 안이 쭈뼛거리면서 살짝 잡는다. 

 작고, 부드럽다.

 

 "……."

 "……저,저기……."

 

 상상 이상으로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 잠깐 그 촉감을 즐기고 있으려니 안이 얼굴을 더욱 붉게 하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이런, 너무 놀리면 안되겠지.

 내가 손을 놓으니 안은 도망치듯 손을 빼고 문까지 달려갔다. 


 "아, 아무튼, 한동안은 지, 지켜볼 거니까 조심해!"


 그렇게 말하고는 안은 밖으로 나갔다.

 ……고 생각했는데, 다시 머리만 빼꼼 내민다.


 "호,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내, 내일도 여기 있어?"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가게에 있긴 해. 그러니까 놀러 올 거면 걱정 말고 와."

 "누, 누가! ……아, 아니, 알았어. 내, 내일 봐?"

 

 대뜸 발끈하나 싶었더니 다시 얌전해진 태도로 의문형인 인사를 날리고는 그대로 사라지는 안.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네, 정말.

 이 도시에 와서 정착한 지는 얼마 안됐지만,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연을 가진 사람도 만났고, 별 다른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지난 몇 년 간 도시를 전전하면서 생겼던 문제를 생각하면, 그다지 희망 찬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 때 문이 재차 열렸다.

 들어온 건 아까 언급됐던 우리 가게의 점원이다.

 

 "다녀왔어요."

 "오, 신리. 좋은 타이밍에 들어왔네. 잠깐 앉아봐."


 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앉는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눈이 돋보이는 그녀는 내 가게에서 일한지 이제 막 1주일이 되어가는 신참 점원이다.

 물론 정규 점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다.

 왜 이런 수상쩍은 가게까지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 면접 때 물어봤더니 '돈이 필요해서요.'라고만 대답한 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냥 사연 있는 애구나 싶어서 따로 깊게 물어보는 걸 그만뒀다.

 일만 잘하면 크게 문제는 없으니까.

 

 "아까 잠깐 클레임이 들어왔는데, 구역을 넘어서 호객행위를 했다며?"

 "구역? 어떤 구역이요?"

 "지나가듯 얘기하긴 했지만, 저기 큰 길을 넘지 말라고 한 거 기억나? 거기까지가 내 구역이거든. 그 이상을 넘어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점포를 내거나 하면 안 돼."

 

 내 말에 신리는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큰 길을 넘어서 사람을 부른 적은 없어요. 아는 사람이 있길래 잠깐 건너가서 얘기를 하긴 했지만요."

 

 그건가.

 하긴, 지난 일주일을 봤을 때, 신리는 말을 못 알아 듣는 타입은 아니었다.

 크게 중요성을 두고 이야기하진 않았어도, 구역분할에 관한 건 알아서 지켰을 것 같았다.

 애초에 굳이 큰 길을 넘으면서 호객행위를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 그러면 됐고. 아- 사실 앞으로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구역은 조심해줘."

 

 아까의 안을 잠깐 떠올린다.

 미래를 읽은 뒤로는 구역분할이니 뭐니 하는 내용은 그냥 머릿속에서 날아갔겠지.

 

 "네, 알겠어요. 그보다 점장, 좀 물어볼게 있는데."

 "물어볼 거?"

 "저번에 미래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했죠?"

 "아아, 그랬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이건 업계 공통적인 인식이다.


 "그게 점장이든 누구든 점술가가 '봤기' 때문에 미래가 확정돼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그 사람은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거?"

 "유명한 질문이네. 현재 시점으로는 '정확히는 모른다.'가 정답. 보지 않으면 미래가 어떤 지는 알 수 없으니까. 보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미래가 어떤 지 알 수 있다면, 검증이 되겠지만 현재로서 발견된 방법은 없고."

  

 다만 이건 확실하다.

 본 미래가 바뀌는 일은 없다.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업계에 널리 퍼진 상식으로도, 그리고 연구로도.

 확인된 미래가 바뀌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가요."


 알바는 그렇게만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친구 중에, 아, 그러니까 아까 큰 길에서 만났다는 친구 얘긴데."

 

 의미심장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걔 한 번 봐주시겠어요?"


 


 -




 신리가 말한 친구라는 녀석의 이름은 하윤이라고 한다. 설명을 들어보니, 무슨 소설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학생으로, 본인은 평범하지만 그 상냥한 성격 때문에 여러 여성들이 꼬이거나 하는 모양이었다.

 재계의 영애나 현직 아이돌인 학생들이 달라붙는 거야 본인의 매력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저께에 전학 왔다는 외국 유학생 두 명도 오자마자 윤에게 엉키는 건 명백히 이상하다고 신리는 설명했다.

 게다가 그 유학생이라는 애들이 말하기를,


 "윤이 곧 있으면 죽는다고 했대요. 그렇게 될 운명이라나.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자기들이 왔다, 라고."

 "뭐야 그게."

 

 진짜 소설같잖아.

 

 "그래서 점장이 봐주셨으면 하는데요. 윤의 미래를. 진짜 그렇게 되는지요."

 "그거야 상관은 없는데, 본인에게 허락은 구한거야?"

 "네."
 "그럼 괜찮아. 언제라도 데려오면 봐줄게. 아, 내일은 빼고."


 내일은 안이랑 놀아야 한다.

 

 "그럼 모레 데려올게요."

 "그렇게 해."

 설명을 들으니 어떤 녀석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얘기에 나온 유학생이라는 녀석들도.

 뭐, 미래를 보는 점술가 나부랭이들이 있는 마당에 다른 이상한 녀석들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용케도 잘 숨어지내는구나, 싶을 정도다.

 아, 그러고보니.


 "신리, 가게 좀 봐줄래? 잠깐 나갔다 올 일이 있어서."

 "네? 가게를 제가 어떻게 봐요."

 

 당혹스런 표정으로 신리가 말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손님이 오면 나중에 다시 오라고 말씀드려줘. 돈은 안받는다고 말하고."

 "……하아, 네."


 손님이 올 것 같진 않다.

 ……신리 시급을 생각하면, 현재 상황으로는 적자다, 적자. 

 지나가는 손님들을 잡아서 버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할 건 아니긴 하지만, 조금은 걱정을 해야할까.


 "어쨌든, 잠깐 나갔다 올게. 5시가 넘어도 안돌아오면, 그대로 문 닫고 돌아가도 좋아."
 "네. 잘 다녀오세요."

 신리가 카운터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해준다. 

 나쁜 기분은 아니다. 누군가가 배웅해준다는 건. 

 

 

 

 -



 큰 길로 나섰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또 다시 골목길을 여러 번 지나간다.

 중간에 안의 가게를 한 번 들려볼까 싶었는데, 방금까지 봤는데, 또 보기도 계면쩍은 무언가가 있다. 나야 좋지만, 안 쪽이 부하가 걸려서 문제가 생길 것 같단 말이지.

 내 가게 못지 않게 후미진 곳까지 골목길을 지나면, 간판도 달려 있지 않은 카페가 하나 있다.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카페인지 뭔지도 모를 이상한 건물이지만 나는 주저없이 문을 열었다.

 경첩에 녹이 슬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다.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 찾아오고."
 

 비어있는 카운터 안쪽에서 여성의 목소리만이 들린다.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내 오래된 지인이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소란스럽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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