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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18일 본문
3. 츠루미 루미는 언제나 한숨을 쉰다.
사전에 협의가 되었기 때문인지 수요일인 오늘, 간수 더 히라츠카가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일은 없었다.
유키노시타에게도 어제 말해놨으니, 오늘은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애초에 그 교실 열쇠는 나한테 있으니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여느 때 같으면 집으로 곧장 직행해서 책이라도 읽겠으나 아쉽게도 수요일은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이른바 히키가야 하치만 갱생 프로그램.
[썩은 눈 소유자]로 삼천세계에 드높은 이름을 가진 나, 히키가야 하치만을 명석하고 아름다운 미소녀가 갱생시켜 구제한다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다.
시작할즈음에는 그런 기치를 내 건적도 있지만, 실상은 외로움을 잘 타고 친구를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 뿐이다.
후자 쪽이 훨씬 수상쩍어 보이는 건 분명 착각이겠지.
"늦어. 하치만."
"홈룸 끝나자마자 뛰어온 거라고. 도대체 난 얼마나 빨리 와야 하는 거냐."
"나보다 일찍 올 정도는 되어야,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있잖아."
"아니, 무리겠지."
보통으로 무리다. 고등학교 얕보지 말라고. 초등학교보다 훨씬 귀찮은 게 많단 말이다.
뭐, 그래도 언제나 기다리게 하는 건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한 번 학교라도 땡땡이를 쳐서 놀라게 해주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큼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언제나의 대화를 주고 받고, 나는 루미 옆에 앉았다.
츠루미 루미.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애지만, 찰랑 거리는 흑발이나 단정한 얼굴에 그 똑부러진 성격을 보면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소녀다. 미소녀라고 하기엔 내 기준으로는 조금 나이가 어리니, 초등학생은 역시 최고야! 라고만 말해두자.
"……뭔가, 눈빛이 기분 나빠."
"그거 미안하네. 썩은 눈빛이라."
"벼, 별로 썩은 눈빛이라고 하진 않았어. 그, 그냥 기분 나쁘다고 했을 뿐."
"그게 평범하게 더 상처 받습니다만……."
내 말에 후후, 하고 루미가 웃는다. 어린애 주제에 뭔가 묘하게 침착한 웃음 방법이구나- 라고 언제나 생각하곤 한다.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꺄하하하하- 같이 웃으면 된다.
고등학생이나 돼서는 교실에서 그렇게 웃어제껴서 뭇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녀만 안되면 되니까.
"하치만. 오늘은 뭘 할 거야?"
"잔다."
"그런 거 말고."
"뭘 할 지 생각하는 건 네 몫이겠지. 선생님이잖냐."
"그, 그렇네."
내 말에 루미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뭔가 언제나 루미의 고민 상담 같은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시작은 항상 주제가 있다.
이를테면, 여자애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법이라든가, 여자애와 대화하는 법이라든가, 친구를 만드는 법이라든가 등등.
어쨌든 그런 걸 1년이 넘도록 지속했으니, 슬슬 주제가 떨어질 때도 됐다.
"가르칠 게 없다면 슬슬 졸업하고 싶은데요. 선생님."
"아……."
농담삼아 그렇게 말해봤더니, 엄청나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어이, 농담이다, 농담.
울어버리면 그걸로 경찰서 직행이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인기척이 드문 공원이라, 보이는 것 만으로도 위험한 수준인데.
"아, 아아,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졸업하려면 멀은 것 같네. 적어도 여자친구 정돈 만들어야, 번듯하게 졸업할 수 있겠지, 응."
"……바보. 여자친구따위 만들 수 있을리가 없잖아."
"너, 그렇게 나를 자꾸 무시하는데, 들어봐라. 최근의 나는 굉장하다고. 무려 학교 제일의 미소녀와 둘이서 부활동을 하는 초 리얼충적인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굉장하지?"
그 상황이 타의 100%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나도 조금은 즐거워하고 있었을텐데.
"또 거짓말. 하치만은 맨날 거짓말만 해."
"아니, 진짜라니까. 내 눈을 봐봐. 거짓말을 하는 것 같냐?"
"……기분 나빠서 잘 모르겠는데."
"야야, 너 그거 자꾸 들으면 무뎌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많이 들은 말이어도 상처받거든?"
정말이다. 동급생 여자애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기분 나빠…….'라고 하면 다시는 교실에 안 나갈 자신이 있을 정도로 상처 받는다.
그거, 대놓고 들으면 엄청나게 아프다고.
"……거짓말 아냐?"
"그렇다니까. '봉사부'라는 의미불명의 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학교 제일의 미소녀랑?"
"그래. 그러고보니 그런 애랑 대화하는 데 잘도 긴장 안하고 멀쩡히 대화했구만. 보통 때 같았으면 처음 인사부터 혀를 씹는 바람에 부끄러워져서 도망쳤을 레벨의 미소녀였는데."
정말로 프로그램의 승리인가.
루미쨩 대승리!
"흐응, 그, 그렇구나. 많이 예쁜 사람이었어?"
"그렇네. 아무튼 본 것 만으로 반해버릴 정도의 미모였지, 그건. 길에서 지나가면 열 명 중 열 두 명은 돌아볼 정도다."
"……두 명은 뭐야."
"다들 돌아보니 뭔지 싶어서 같이 돌아보는 사람들."
"그, 그럼 많이 바빠지겠네?"
루미가 묘하게 침울해진 어조로 말한다.
알기 쉬운 녀석이구만, 정말로.
이 나이대의 여자애치고는 정말 알기 쉽다. 분위기 읽기 능력 검정 시험에서 탈락한 나도 츠루미 루미 검정 시험이 있다면 2급 정도는 여유로 딸 수 있을 것 같다.
"뭐, 바쁠지 어떨지는 몰라도 앞으로 집으로 바로 가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
대놓고 침울해 하고 있다.
울기 전에 달래줘야지.
"그래도 수요일은 다른 용무 때문에 뺀다고 말해 놨으니 안 할 것 같다만."
"다른 용무?"
루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묻는다.
다른 용무 = 이 시간, 이라는 발상이 어려운가.
"지금 말이야, 지금. 그러니까 그렇게 침울해할 거 없다고."
"아……. 으읏, 어린애 취급은 그만해!"
그제서야 깨달은 루미의 머리를 대 코마치 사양으로 쓰다듬어 주니 내 손을 막으며 반발한다.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 대 코마치 버젼 히키가야 하치만을 거부하다니.
배가 부른 녀석이구만.
"아무튼, 1년 동안 이렇게 떠들어 댄 보람은 있는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의외로 여자애하고 평범히 얘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초가 붙을 정도의 하이레벨 미소녀랑 말이지.
이제와서지만, 오늘 그게 올해 들어서 가족과 선생님, 그리고 루미를 제외한 여자와의 첫 대화였다는 걸 깨달았다.
슬프다.
"도움이 된 걸까?"
"조금은."
"그런가……. 하치만. 무슨 부라고 했는지 다시 알려줘."
"봉사부. 문제아를 갱생시키는 부라는 것 같고, 무려 부장은 나로 되어있다만, 나도 잘 몰라. 첫 날인 어제는 아까 말한 그 여자애…… 유키노시타와 떠들기만 했었고."
"……뭔가, 즐거워 보이는 활동같아."
"아직 제대로 시작도 뭣도 안했다만."
애초에 뭘 어떻게 누구에게 봉사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학교는 별로 재미없어."
루미가 툭 내던지듯 그렇게 말했다.
"그런 활동을 하면 조금은 학교가 즐거워질까?"
"글쎄. 나는 너보다 몇 년은 더 학교를 더 다녔지만, 그런 걸 한다고 재미없는 게 바뀌진 않을걸."
"애들이 바보같은 건, 중학교를 가면 조금 나아질까?"
"전혀. 고등학교도 똑같다. 간 적은 없지만, 대학교도 똑같을 거고,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을 걸."
"우울한 이야기네."
"정말이다."
어느샌가 또 루미의 고민상담 교실이 되어버렸다. 뭐, 이것도 언제나의 일이다.
루미는 다른 애들보다 조금 조숙한 탓인지, 교실 내에서 관계가 잘 맞물리지 못하는 것 같아 언제나 내게 그런 얘기를 해온다.
물론, 나는 프로 외톨이로서 외톨이의 소양이나 외톨이로서의 마음가짐 등을 전수해줄 수는 있어도, 유감스럽게도 친구 만들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 등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쪽을 바란다 한들 별 도움은 안되겠지.
루미쪽이 내게 프로그램이라고 그런 것들을 알려줄 땐 본인의 경험이나 지식이랄까 거의 희망사항에 가까워서, 본인의 지식을 본인의 상황에는 적용을 못 시킨다. 물론 아까 말했다시피 나도 그런 곳에선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나도 인간관계에 대해선 희망사항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희망사항을 말한 적은 없지만.
과연 내가 인간관계의 희망사항을 적나라하게 전수한다면 루미가 어떤 눈으로 나를 볼 지 무섭다.
경멸하는 눈빛으로 '죽으면 좋을텐데.'라고 보면 이 아저씨는 정말로 자살해버릴지도 몰라.
"뭐, 언제나 말했듯이 선택지는 두 개다. 타협하고 같이 지내든가, 거절하고 외톨이로 살든가. 나는 강제적으로 후자를 선택해서 살고 있다만, 이것도 나쁘진 않다고."
"어떤 점이?"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소비되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인간 강도가 올라간다. 인간 관찰의 기회가 늘어난다. 등등. 아주 많지."
"……하아."
루미가 한숨을 쉰다.
너무 노골적으로 바보같다는 표정을 그렇게 지어버리면 돌려줄 말이 곤란하다.
외톨이의 좋은 점은 앞으로도 105개는 더 있는데.
"……그보다, 하치만. 우리 만난 지 벌써 1년이 넘었잖아."
"그렇네."
새삼스럽지만 그렇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만난 건 당연히 아니었다.
1년하고 조금 전. 고교 데뷔를 할 생각으로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에서 나왔던 그 날.
기운차게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던 내 애마에 모퉁이를 돌던 루미가 부딪히면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하진 않았고, 넘어질 때 도로에 긁혀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지만, 당시에 나는 쓸데없이 크게 당황했었다.
오히려 루미 쪽이 차분하게 근처의 편의점에서 밴드를 사오라고 시킬 정도였다.
그런 다음은 뭐, 근처 공원에서 처치를 하고, 무슨 기운으로 그랬는지, 루미와 아침에 일찍 나온 이유 등등에 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입학식에 늦고 생각하던 고교 데뷔를 실패, 그대로 외톨이 일직선이 되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전개다.
그 뒤로 재차 만난 루미와 여차저차한 흐름을 통해 이런 모양새로 매주 만나는 게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 때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뭐,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1년이 넘었어."
"그래."
"……1년이 넘었다구."
"아니, 마치 사귄 지 1년이 되는 기념일을 그냥 지나친 남자친구를 책망하는 듯 한 눈빛과 말투는 그만둬."
"……너무해."
뭐가 너무해, 냐.
분명 무언가를 해줄 의리도, 의무도, 그럴 의지도 없었는데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니 무언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이 생겨나고 있다.
이게 바로 세간의 남자친구라는 종족이 언제나 느끼고 있는 감정인가.
존경한다고, 정말로.
"하치만이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에 뭔가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아예 신경도 안 쓸 줄은 몰랐어."
"그, 그러냐."
"분명 기념일을 잘 챙겨야 한다고 프로그램에서 말했는데."
"……."
"너무해."
항상 리얼충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리얼충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오르고 있다.
매일 같이 이런, 불합리한 반응과 싸우며 이성친구를 사귀는 리얼충들은 정말 대단한 거라고.
차라리 히라츠카 선생님처럼 주먹을 보여주는 게 나을 정도다.
"……."
"……."
루미는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자, 히키가야 하치만. 그 동안의 프로그램 내용을 생각하는 거다.
최적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다, 다음 주에 어디라도 가면 될까요……?"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정답인 줄 알았는데.
"다음 주가 아니라, 주말, 이라고 얘기해야지. 다음 주는 너무 멀어."
"그런거냐……."
수요일은 어차피 소모해야 할 시간. 어떻게든 개인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는데, 전부 꿰뚫어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가 아니라 명확하게 얘기해줘야지. 장소까지 여자보고 결정하라는 건 너무 꼴사나워."
"……그렇군요."
가차없는 루미 선생님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과연 그런 거였군.
"그, 그럼 토요일 12시에 치바 역에서 집합. 이 정도면 괜찮냐?"
"응. 기대할게, 하치만."
아까의 뚱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루미가 말한다.
애보기라고 했던 말은 취소다. 몸은 애여도 역시 머릿속은 여자구나.
무서워라, 무서워.
루미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고, 기분도 좋아보인다.
……토요일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4. 유이가하마 유이는 곤란해 한다.
다음 날인 목요일.
학교 수업에 언제나 충실한 나는 별다른 문제 없이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를 맞이했다.
여기서 학교 수업이란 건, 완전히 버려버린 이과 수업을 제외한 문과 수업만을 말한다.
에에? 방정식 같은 건 사회에 나가서 안 쓰잖아?
……라는 골 빈 말을 하긴 싫지만, 진짜로 안 쓰잖아? 그리고 나는 사립 문과 지망이라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짐을 챙겼다. 챙긴다. 계속 챙긴다.
나는 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는 리얼충(웃음)들을 바라본다.
홈룸이 끝났으면 집에 좀 가라. 통로를 막는 바람에 완전 민폐잖아.
하지만 비키라고 말하면서까지 급하게 부활동을 갈 의지는 없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 도로 앉았다.
절대로 말을 걸기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주변의 소음을 의미로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 넘겨 버리는 히키가야 하치만 외톨이 외법 제 5번째 오의를 발동하고 있었더니, 어느 순간 교실이 조용하게 됐다는 걸 눈치챘다.
이럴 수가. 드디어 오의가 극에 이르러서 주변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나.
나는 내 재능에 놀라면서,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봤다.
당연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각자의 책상에서 짐을 챙기던 일반 학생도, 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리얼충집단들도 뭔가 복도 밖을 보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
내 자리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반 애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뭐가 있는지 보려는 찰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키가야 군. 부활동 시간이야."
"……유키노시타?"
나타난 건 여전히 얼음장 같은 미모를 자랑하는 유키노시타 유키노.
게다가 무려 나를 찾아온 것 같다.
이목이 집중돼서 엄청나게 아프다.
"부, 부활동은 부실에 가 있으면 될텐데……."
"열쇠가 없잖아. 네가 가지고 있지 않니?"
그랬다.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걸 굳이 반까지 찾아올 줄이야.
앞에서 기다리면 될텐데.
이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유키노시타는 하아, 한숨을 쉬더니,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리느니, 반으로 찾아오는 게 훨씬 합리적이야."
그렇게 말했다.
"네가 멋대로 집에 가 버리면 나는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잖아. 연락처도 없고."
"그, 그렇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백 번 옳은 말씀입니다만, 과연, 분위기를 조금 읽어줬으면 좋겠다.
조금쯤은 웅성댈만도 한데, 지금까지 반 내는 완전한 침묵이다. 덕분에 유키노시타와 내 대화는 복도까지 들렸을 것이다.
일단, 벗어나지 않으면.
"빨리 가자고, 그럼."
"그래."
나는 재빨리 가방을 집어들고,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이쪽을 보는 리얼충 집단을 뚫고 복도로 나갔다.
유키노시타는 당당한 태도로 내 뒤를 따라와 복도로 무사히…….
"유키노시타."
나오지 못했다.
"……하야마 군."
유키노시타에게 아는 체를 한 건 하야마 하야토.
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학급 내의 카스트 최고봉에 위치한, 그림으로 그린 듯 한 리얼충이다.
축구부의 에이스이자 차기 부장 후보이면서, 잘 생긴 외모도 외모지만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이름 높고, 게다가 집도 잘 산다고 하는 완벽초인이다. 학급이 아니라 학교 내의 카스트에서 최고봉일 것이다.
유키노시타나 하야마나 둘 다 격이 다른 스펙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서로를 알고는 있었을 것 같은데, 뉘앙스를 보니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야마는 유키노시타를 보고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유키노시타는 단지 이름을 한 번 부르고는 하야마를 무시하고 복도로 나온다. 태도에서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좋다,라는 분위기다. 거절도 무시도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다.
"너……!"
그런 유키노시타를 보고 하야마 패밀리의 여왕 같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미우라 유미코가 화를 내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애들이 말리는 동작에 목소리가 잦아든다.
"가자."
"그, 그래."
유키노시타는 여전히 아무래도 좋다는 초연한 태도로 앞서 걸어간다.
대단하구만, 유키노시타. 나 같으면 공기에 눌려서 압사당했을 레벨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나왔다.
과연 학교 제일의 미소녀. 외모 뿐만 아니라 자아내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뒤를 슬쩍 돌아본다.
모여있던 학생들은 충격에서 회복되고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듯하다.
……한 명을 제외하고.
하야마와 미우라가 있던 집단에서 한 명이 빠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온다.
살짝 탈색된 머리에 짧은 스커트. 단추가 풀려있는 블라우스. 적나라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두 개의 가슴 사이에 빛나는 목걸이.
누가 봐도 전력으로 청춘을 구가하고 있는 여자다.
완전히 현대 여고생의 이미지를 그대로 체현한 것 같은 그녀는 달려오더니,
"저, 저기, 유키노시타양……이지?"
바로 앞에 있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와서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유키노시타에게 용무가 있는 모양이니 나는 달려온 여자애 가슴 언저리에 있는 리본만 뚫어져라 보기로 했다. 으음, 유키노시타와의 이 격차는 괘씸하군.
"……유이가하마 유이양, 이네."
유키노시타는 돌아보고 그녀-유이가하마의 얼굴을 확인하고 명백하게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까 하야마나 미우라에 대한 태도와는 다른, 어딘지 당황하고 있는 태도였다.
"으, 응, 저기……."
"……."
그 뒤로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유이가하마는 머리를 만지작 거리거나, 스커트를 정돈하거나 뭔가 분주하다.
유키노시타는 그런 유이가하마를 어딘지 침착하지 못한 태도로 곁눈질하다가 다른쪽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다.
뭐야, 이녀석들. 발표 차례가 돌아오기 직전의 나냐. 지나가던 애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뒤돌아보니 하야마 패거리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간신히 시야의 영압에서 벗어났나 싶었더니, 다시 사로잡혀 버렸다.
"……."
"……."
이쪽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유이가하마라는 애는 그렇다치고, 아까까지 똑부러지게 말하던 유키노시타도 이상한 모습이다.
……머리 한 구석에서 루미가 나타나서 '하치만, 이럴 때 나서야지,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치는 영상이 재생된다.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어이, 너희들. 뭔가 용건이 있다면, 거기 그렇게 서있지 말고 부실에 가서 하면 어떻겠냐."
"……! 그, 그렇네. 유이가하마 양, 괜찮을까?"
내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했고, 유이가하마는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모이는 시선을 뿌리치는 것처럼, 나는 걸음 속도를 빨리 해 부실로 향했다.
그 사이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무언이어서, 괜시리 압박감이 느껴졌다.
무언인 여자애는 무섭다.
부실은 그저께와 변함없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유키노시타는 그저께와 같이 문 쪽 방향에 앉았고, 그 근처에 유이가하마의 자리도 마련해준다.
나도 자리에 앉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두 명이 얘기하는 자리에 있어봐야 방해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 천천히 얘기해 둬. 마실 것 좀 사올게."
"그래."
"아, 자, 잠깐."
유키노시타가 가볍게 수긍했기에 그대로 나가려는데, 유이가하마의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뭐냐? 마시고 싶은 게 있으면 사다주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같은 반인 히키가야 군…… 맞지?"
"어어, 맞는데."
생각해보니 하야마 패밀리라면 우리 반이겠구나.
나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니, 가능하면 그쪽 방향은 안쳐다보려고 노력하니까 말이야. 누가 있는 지도 잘 모른다고.
목소리가 매번 시끄러운 토 어쩌고 하는 녀석은 알지만. 토베? 토막?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저기, 여긴 무슨 부실이야? 유키노시타 양이랑 히키가야 군이랑 같이 하는 거야?"
목적어를 빼지 마라, 목적어를.
같이 한다고만 하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잖아.
"봉사부야. 그저께부터 시작했어."
"참고로 부장은 나다."
"그, 그렇구나. 봉사부라고 하는구나……. 뭘 하는데?"
당연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에 나는 돌려줄 말이 곤란해 반사적으로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봤다.
유키노시타도 어쩐지 이쪽을 보면서 표정을 짓고 있다.
"어, 그 뭐냐. 뭔가 의뢰를 받으면 그걸 해결하면서, 자력갱생? 을 시도하는 부, 라는데. 자세한 건 아직 모르겠다. 우리도 거의 끌려온 거라."
"……실질적으로 오늘이 첫 날이야. 그저께는 그냥 얘기만 했을 뿐."
"헤에, 뭔가, 재밌어 보이네."
유이가하마가 눈을 빛내면서 말한다.
루미도 그렇고 유이가하마도 그렇고, 뭐가 재밌어 보인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보다 유키노시타에게 용건이 있던 거 아니었냐? 나는 방해 될테니까 빠져줄게."
"어, 아, 아니 잠깐만……. 그, 나는 히키가야 군이 있어도 상관 없는데……."
"엥?"
뭐야, 이거. 얘 나 좋아하나?
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지.
단순히 유키노시타와 둘이 되는 게 거북한 것 같다.
뭐, 그렇겠지. 실제로 소문만큼 차갑지는 않은 것 같다만, 소문으로 들은 유키노시타의 이미지는 굉장하니까.
소문의 유키노시타를 혼자서 상대하다간 얼음 화살 같은 걸 맞고 리타이어 할지도 모른다.
"……유이가하마 양이 괜찮다면, 나는 상관없어."
"그러냐."
그럼 굳이 나갈 필요는 없겠지, 만.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이 하기는 조금 뻘쭘할 것 같고, 아쉽게도 이 부실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중에 뭐라도 가져다 놔야지.
"그럼 조금만 기다려. 음료수라도 사올테니까."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일층에 있는 자판기에서 내 몫의 맥스 커피와 두 사람 용의 카페오레 두 개를 사간다.
용케도 주머니에 돈이 있었서 다행이지, 알아서 분위기를 읽고 멋지게 나왔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간다면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하간 돌아가자.
부실로 돌아가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아까 전의 그 미묘한 침묵 상태 그대로였다.
내외하는 건가, 이 녀석들.
"자, 먹어. 적당히 사왔어."
"아, 고마워."
"잘 마실게."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가 감사 인사를 하고 각자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려는 걸 손사레를 치고, 내 자리에 앉는다.
고작해야 백엔 정도인데, 돈을 안 받는다는 시늉에 둘은 뭔가 미묘하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그렇게 쪼잔해보였나?
"그래서, 무슨 얘긴데?"
맥스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물어본다.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내지 않으면, 둘 다 전혀 시작할 것 같지 않으니까.
그보다 그저께는 유키노시타 한 명이었는데, 오늘은 유이가하마까지 세 명.
미소녀 두 명과 함께하는 부활동이라니, 굉장하구만, 나. 이게 바로 인생에 3번밖에 없다는 인기있는 시기, 그거냐.
예전의 나 같았으면 이 시점에서 덜덜 떨고 있겠지만, 지금은 우아하게 맥스커피도 마시면서 달달함을 음미할 여유도 있다.
이게 다 루미루미 선생님의 덕.
"응, 그게, 아하하, 갑자기 말하라구 하니까 조금 그렇네……."
뭔데 저러는 거야?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유루유리라면 난 대찬성이다만.
"……내가 말할까, 유이가하마 양? 그 일 때문인 것, 맞지?"
"어, 으, 그, 그렇긴한데……. 사실 나도 왜 유키노시타 양을 불러 세웠는지 잘 모르겠어서……."
"……하아."
뭐야, 뭔데 그래?
중요한 키워드는 안나오고 주변만 맴도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답답하다.
그런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유키노시타가 담담히 이야기를 꺼냈다.
"……1년 전. 입학식 날에, 유이가하마 양이 산책시키고 있던 애완견을 우리 집 운전수가 치어버린 사고가 있었어. 당시의 차 안에…… 내가 있었고. 그 개는 안타깝게도……."
"사브레, 라고 하는데, 사고 때문에 죽어버렸어……. 그, 그렇지만 변호사가 와서 다 보상 같은 건 해줬구…… 이제와서 탓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야, 정말로. 1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
그런 일이 있었나.
그래서 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 상대로 저런 미묘한 태도를 하는 건가.
상황만 들어보면 우연한 사고겠지만, 가해자 측의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강하게 나가긴 힘들겠지.
"그, 그런데, 그 때 온 변호사가 '유키노시타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언뜻 들어서. 계속 신경쓰였거든. 그래도 찾아갈 용기는 없구, 뭐라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구……. 근데 오늘 유키노시타 양이 반에 찾아와서 어쩌다 보니 말을 걸게 된 거야. 하, 하하, 좀 이상하지. 나도 뭘 말해야 할 지 아직 모르겠는데. 그냥 이야기가 조금 하고 싶었달까."
유이가하마의 말은 지리멸렬했지만, 나나 유키노시타는 계속 그 말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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