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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11일 본문
-
평소와는 다른 자그마한 차이가, 가끔은 많은 걸 바꾸기도 한다.
1. 히키가야 하치만은 썩어있을 지도 모른다.
국어교사 히라츠카 시즈카는 아무튼 '댄디한 미인 교사'라는 모순적인 평가가 잘 어울리는 존재로, 발군의 스타일과 미모, 그리고 어중간한 남성 교사보다 훨씬 터프한 모습 때문에 여러모로 세간에 회자가 되고 있다.
지금도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내가 써낸 작문을 삐딱한 자세로 읽고 있다.
그야말로 부하 직원의 보고서를 평가하는 유능한 상사의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쓸모없는 보고서를 평가 당하는 무능한 부하 직원의 포지션.
"그래서, 이건 뭐냐?"
"……평범한 작문 레포트입니다만……."
"그러냐. 아마도 평범이라는 정의가 네 안에선 마구 비틀렸나 보구나."
"일반 상식적인 범위 내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쩐지 기어 들어가게 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다시 작문 용지를 쳐다보던 히라츠카 선생님은 하아아아~ 하고 크나큰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학교 생활은 야생이다. 약한 존재는 무리를 지어 서로를 핥고 보듬어주며 자기 위안을 한다. 그런 점에서 외톨이는 고독하고, 그렇기에 독립 자존이 가능한 강한 존재이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강제로 집단 생활을 경험하게 되니, 학교는 모름지기 학생에게 외톨이로 지내는 것을 장려하여 독립한 개체로 성장하기 위해 도움을 주어야한다……'"
"……."
쓸 때 당시에는 나 나름대로의 역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이 읽어주니 부끄럽기가 한량없다.
작가 사인회에 그 작가의 초기작을 들고 가서 사인을 부탁하면 발작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히키가야, 다시 한 번 물어보마. 이건 뭐냐?"
아니, 그러니까 평범한 작문인데요, 라고 말하려는데, 히라츠카 선생님의 오른손이 꽉 쥐어진 것을 무심코 봐버렸다.
이건…… 위험하다.
다시 보니 눈도 위험하다. 진지한 눈이었다.
너 같은 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라고 말하는 킬러의 눈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최적의 반응을 돌려줬다고 생각했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의 반응이 신통찮다.
달군 철판 위라도 올라가서 사죄해야 하나.
하다못해 바닥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려는 찰나,
"히키가야, 나는 네가 걱정이다."
"네?"
갑자기 우리 엄마 같은 말씀을 하셔도 곤란합니다만.
"1학년 때 네 기록을 좀 읽었다만, 1학년 때도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없던 모양이더군. 지금도 마찬가지고. 맞나?"
"친구를 만들면 인간강도가 떨어진다는 주의라."
"……네 썩은 눈을 보면 그럴 것 같았다. 부활동도 안했었지?"
"네."
"여자친구는……, 미안, 잊어줘라."
다 말한 뒤에 사과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지 않나요, 선생님.
이왕 이렇게 된 거 교내에 미인 여교사로 유명한 히라츠카 시즈카 선생님이 저를 구제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라고 말하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해야지.
"마침 잘 됐군. 너한테 시킬 일이 있다."
"뭐, 청소라도 하면 될까요."
그런 거라면 자신 있다. 장래에 전업주부를 목표로 하는 이상, 청소와 요리는 매일 수련하고 있으니까.
보아하니 단체로 웨이웨이~ 하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닐테니, 이런 건 여유다.
오히려 레포트 따위를 쓰지 않고 청소로 대체해주면 고마울 정도다.
"아니, 부활동을 시작해줘야겠다. 이름은 '봉사부'."
"'봉사부'라니…… 오는 사람한테 돈을 받고 귀라도 파주면 되는 건가요."
히죽거리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바람이 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눈 앞에 주먹이 와있었다.
"진지하게 들어라."
"넵."
히라츠카 선생님이 무섭게 말했다.
아니, 진짜 무섭거든요.
"여기 소부고는 어쨌든 진학교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너 같은 문제아가 많다는 걸 깨달아서 말이지. 그런 애들을 갱생시키는 부활동을 하나 시작하려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히키가야 네가 첫 타자로 부장을 맡게 될테니 그리 알도록."
하? 이게 무슨 소리야.
작문을 조금 이상하게 썼다고 혼나러 왔을 뿐인데, 어쩌다 영문 모를 부활동의 부장까지 맡게 되는 거지.
당사자인 내가 봐도 개연성이 눈곱만큼도 없다.
요새 라이트노벨도 이렇지는 않다.
제대로 복선을 깔아준다고.
"방과 후에 직원실로 다시 오도록. 여러가지 수속은 내가 처리해둘테니 걱정하지 마라."
"하아……네, 알겠습니다."
"좋아. 가도 된다."
좋기는 무슨.
마음 속에선 당장이라도 마구 반발하고 싶었지만,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히키가야 하치만이 내 파괴충동을 억제하고 있다.
절대로 히라츠카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래도 이거 한 마디는 해야지.
나는 일단 인사를 한 뒤 일말의 기대를 담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 레포트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다시 써야지."
네, 그렇겠죠.
-
방과 후, 직원실로 가서 히라츠카 선생님과 동행해 이동한 곳은 특별실 건물의 빈 교실이었다.
교실 한 쪽에 책상과 의자가 쌓여있을 뿐인 아무 것도 없는 교실이다.
"자, 여기다."
"자, 여기다, 라고 말씀하셔도, 뭘 하면 좋을 지 아무 것도 모르는데요."
"'봉사부'의 활동을 하면 된다. 일단 앉을 의자랑 책상 정도는 차려야겠지. 어이, 히키가야. 출동이다."
네, 히키가야 하치만, 출동합니다.
괜히 반발해봐야 어차피 따르게 될 것을 알기에, 나는 군말없이 책상과 의자를 내려서 늘어놓았다.
적당히 책상을 이어 서양식 테이블마냥 길게 놓고, 양 끝에 의자를 두었다.
그리고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일단 겐도 포즈를 취해봤다.
"뭘 사령관 행세를 하는 거냐. 이리 와봐라, 활동 내용을 설명해주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바로 알아 먹는 당신도 어이없거든요, 선생님…….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소부고는 진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는 문제아가 좀 있어서 말이다. 그런 애들을 갱생시키는 부활동이다. 뭐, 까놓고 말하면 문제아를 격리시키는 장소라고 보면 된다."
너무 까놓고 말하신 것 같은데.
그리고 소부고에 문제아가 많다는 얘기는 언뜻 들어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2년 째 관찰하고 있는 결과, 소부고는 리얼충이나 면학에 힘쓰는 평범한 학생밖에 없었거든. 아, 한 명, 외톨이로 지내는 히 모 군은 빼고요.
애초에 격리시킨 다음에 뭘 시키려는 속셈이지.
배틀로얄이라도 벌여서 최강의 문제아를 뽑으면 되는 건가.
"'갱생'이다, 히키가야. '갱생'. 배틀로얄이 아니야. 궁극적으로는 다른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기 자신도 점차 바꿔가는 부활동이 되었으면 한다만, 뭐, 그런 느낌으로 노력해봐라."
"전혀 설명이 안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방과 후에 무조건 그 의미불명의 활동을 해야하는 겁니까."
"네 눈이 조금은 나아질 때까지는 그래야겠지. 너무 사람과의 대화가 없으면 속이 썩기 마련이다. 대화의 장이 마련되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본다."
나왔습니다, 대화의 장.
대화에 문제가 없는 분들은, 외톨이들이 대화할 기회가 없어서 대화를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완전한 오해다.
대화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외톨이들끼리 대화의 장을 만들어봐야, 그건 예배당 저리가라 할 침묵의 장이 될 것이 뻔하다.
침묵의 장은 간사를 맡은 사람이 리얼충이어서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나가려 해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지쳐서 넉다운 되고 마는, 무서운 공간이다.
그런 지옥도를 이 곳에 진정 펼치려 하는가…….
게다가, 아까부터 자꾸 갱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히라츠카 선생님이지만, 나는 이미 1년이 넘게 갱생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갱생지도를 하고 있는 선생님(초등학교 6학년, 여)에 의하면 이미 충분히 발전했다고 한다.
……진짜라니까?
"하아, 뭐, 알았습니다. 대신 수요일은 빼주세요. 용건이 좀 있어서."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럼 수요일은 제외하고 활동하는 걸로. 이 교실의 열쇠는 맡기마."
히라츠카 선생님이 열쇠를 건네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교 내에 혼자 조용히 지낼 공간을 얻었다는 점은 플러스 요소다. 물론 방과 후에는 학교 따위에 남지 않고 집에 가면 되지만, 점심 시간엔 적어도 조용히 지낼 수 있겠지.
나쁘지 않은 장사다.
"활동은 내일부터 하는 걸로 하지. 내일 너 같은 문제아를 한 명 데려올테니, 잘 해보도록."
"네……. 아니, 그래서 정확히 뭘 하면 되는 지는 결국 안 알려주는 건가요?"
"그건 차차 생각해보면 될 거다. 그럼."
휙, 하고 돌아서서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히라츠카 선생님.
쓸데없이 멋있어서 그만 그대로 지켜보고 말았다.
부활동에 관한 건 여전히 의미불명이지만, 뭐, 그냥 도망가면 되겠지.
히라츠카 선생님도 학생 하나에 그렇게 시간을 들일 여유는 없을 것이다.
외톨이 하나에 신경을 쓰느니, 성실하고 면학에 힘쓰는 일반 학생들을 구제하는 편이 학교로서도 도움이 될테니까 말이다.
2.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주저하며 참가한다.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과연, 히라츠카 선생님은 학생 하나에 그렇게 시간을 들이는군요. 알겠습니다.
다음 날.
당연히 부활동따위를 할 예정이 없던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홈룸이 끝나자마자 교실밖으로 뛰쳐나간 나를 히라츠카 선생님이 인왕처럼 서서 가로막고 있었다.
서있는 포즈며 압박감이 간수가 따로 없다.
"히키가야, 어딜가는 거냐."
"무, 물론 부활동이죠, 네. 부실로 가려고 했습죠, 헤헤."
"……도망가려고 했던 건 봐줄테니 그 말투는 그만해라."
"넵."
그대로 연행돼서 교실로 데려가질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인지 히라츠카 선생님은 먼저 교실로 가 있으라고 말한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대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도망가는 건 하수의 생각이다. 내일이면 어차피 돌아오는 학교, 시기를 봐서 그만두긴 해야겠지만, 당장 그만두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저렇게 학생 한 명 한 명을 신경 쓸 정도면 한동안 도망가는 건 무리라고 봐야겠지.
플레이트에 아무 이름도 쓰여져 있지 않은 어제의 그 교실로 들어간다.
내가 만들어 놓은 양식 저택의 식당 풍 부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창가 쪽에 앉아서 겐도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문을 열어 젖히며 들어왔다.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머리가 아픈 듯 잠시 휘청거렸다.
……아니, 겐도 포즈가 어때서?
"……괜찮으세요, 선생님?"
갑자기 교실 밖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겠지, 라고 문득 생각 할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무의식적으로 놀라 겐도 포즈도 풀어버릴 정도였지만, 얼굴을 본 순간 그런 생각도 다 날아갔다.
창백할 정도의 피부에 쭉쭉 뻗은 팔다리의 균형 잡힌 몸. 그리고 칠흑같이 곱게 뻗은 머리카락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의 미소녀가 그 곳에 서있었다.
보는 순간 얼려버릴 것 같은 눈동자의 서늘함마저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아아, 보는 순간 나는 이 소녀가 교내에 소문이 자자한 그 미소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2학년 J반 유키노시타 유키노.
많은 재원이 모인 국제교양과 J반 내에서도 더욱 격을 달리하는 절세 미소녀.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은 성적 우수자이면서, 그 사람같지 않은 외모로 인해서 더욱 주목을 받는 고령의 꽃.
여하간 유명인이다.
그런 유명인이 이런 외진 부실에 뭐하러 온 거야……라고 생각한 찰나, 주마등처럼 어제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이 여자애가 '문제아'인가.
신의 사랑을 받을 것 같은 이 완벽초인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 '문제아'로서 끌려온 거지.
"……."
"……."
나도 유키노시타도 서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그렇잖아.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
"그렇게 있을 거면 서로 자기소개라도 하지 그러냐?"
"아, 네. 어……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
"……2학년 J반 유키노시타 유키노."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과연 이런 분위기에는 히라츠카 선생님도 당황했는지, 잠깐 허둥대더니,
"음, 어, 어제 히키가야에겐 얘기했지만 이곳은 '봉사부'라는 곳으로, 여러모로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학생들을 데려다 갱생시키는 곳이다. 내가 지켜본 결과 2학년 내에서 가장 큰 문제아로 보이는 너희 둘을 일단 이 부활동에 넣고, 활동시키려고 한다. 알겠지?"
"선생님, 저는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유키노시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물론, 말하지 않았으니 못 들었겠지. 일단 부장은 저기 히키가야 하치만이 맡을테니, 유키노시타 너는 히키가야를 도와서 상호갱생 및 타 학생들의 의뢰를 해결하는 형태로 부활동을 진행시키면 된다."
"잠깐만요, 선생님. 둘이서 부활동을 하라는 건가요? 그, 여러모로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아뇨, 뭐, 제가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건 아니지만요. 일반 사회통념 상."
나는 유키노시타를 곁눈질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런 폐쇄적인 교실에서 저런 미소녀랑 나처럼 눈이 썩은 좀비 같은 사람이 같이 있는 것 정도로 이미 신고 대상이다. 군자는 위험에 다가가지 않는 법. 무고죄를 당할 상황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물론 히키가야 네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눈과 성격에 큰 문제가 있지만, 그 정도의 계산은 할 줄 아는 놈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유키노시타 너도 걱정할 거 없다."
유키노시타는 가만히 나를 보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분위기에 맡게 조용한 타입인가.
"하아……. 애초에 저 애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그 부분은 본인이랑 얘기하면 된다. 자, 뒷 일은 맡길테니 올바르고 건전한 부활동으로 갱생의 길을 걷도록 해라. 그럼."
뭔가 자기만족스러운 대사를 읊으며 히라츠카 선생님이 교실을 나갔다.
"….….."
"….….."
또 다시 침묵.
침묵은 즐기는 편이지만, 모르는 미소녀와 폐쇄된 교실에서 침묵 하고 있는 것을 즐기진 않는다.
교실 한 켠에 붙은 시계의 시침 소리만 요란한게 들린다.
시츄에이션적으로는 뭇 남학생들의 이상 같은 상황이지만, 저 얼음장 같은 눈을 보면 러브코미디 뇌를 전개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이, 일단 그쪽에 앉으면?"
"….….그래."
유키노시타가 사뿐히 걸어와 의자에 앉는다.
백합과 모란이 시기할 정도의 동작이다.
큰일났다. 갑자기 긴장되는데.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써 머리 밖으로 내밀던 유키노시타의 외모가 눈에 물 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는 거니?"
"글쎄, 나도 어제 막 이 곳에 끌려온 참이라.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한 대로라면 뭔가 타 학생의 의뢰를 받으면서 자력갱생을 시도하는 부활동이라지만."
자력갱생이 됐으면 이 나이에 이런 식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내 말에 유키노시타는 조금 생각한 구석이 있는지 잠시 침묵했다.
나도 잠시 생각한다. 어쨌든 부활동은 강제. 유키노시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한동안은 얼굴을 마주칠테니, 상황을 아는 정도의 질문은 괜찮겠지.
"그보다 조금 물어보고 싶다만, 너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여기 온 거냐?"
"…그렇네, 조금 게임을 해볼까."
갑자기 유키노시타가 훗, 하고 웃더니 그렇게 말했다.
"게임?"
"그래. 게임.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됐는지. 열 가지 정도 질문을 하면 내가 YES, NO로 대답할테니 네가 맞춰보는 걸로 할까."
지금껏 조용하게 있더니, 갑자기 의욕이라도 생겼는지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했다.
뭐, 좋다. 수수께끼는 좀 자신 있는 편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같이 놀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하는 놀이는 대부분 잘하는 축에 들어간다. 더 나가서 둘이서 해야만 하는 게임이나 운동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쪽도 나쁘지 않다.
어라, 뭔가 슬픈 얘기 아닌가 이거.
"좋아. 그럼 첫 번째. 뭔가 교칙을 자주 어기거나 문제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거냐?"
"답은 'NO'야.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문제아'라는 내용에서 가장 먼저 생각날 수 있는 내용을 말해봤을 뿐이다.
"그럼 두 번째. 네가 아닌 주변 때문에 발생한 문제에 휘말린 거냐?"
"!?"
유키노시타가 어째선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뭐야, 평범한 질문이잖아.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답은 'YES'로 봐야겠네. 전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보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응? 뭔데?"
"어째서 바로 주변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알아차린 거니?"
유키노시타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물어봤다. 별다를 것 없이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얘기를 꺼내본 건데, 의외로 반응이 좀 있는 걸 보니, 그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 건가.
뭐, 그럴만도 하지.
"그건 그거다. 어쨌든 군중들은 튀어나온 곳이 있으면 누르려고 시도하고, 그게 안되면 배제하려는 습성이 있으니까 말이지. 성인이 된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이라면 더욱 많겠지. 너 정도 되는 능력에 미모라면 주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겠구나, 싶어서 말해본 것 뿐이야."
"……그렇구나."
"뭐, 대충 때려 찍은 거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진 말라고. 그보다, 그런 경험이 많은거냐, 너?"
"그건 게임의 질문이니?"
유키노시타가 도발적인 눈빛을 띄운다. 눈빛에서 이번 건 카운트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가 무럭무럭 풍겨나온다.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은 거냐……. 의외로 승부욕이 강할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
"아, 그냥 물어본 거지만 카운트 해도 상관없어."
"그런 거라면 노 카운트로 해줄게. ……그래, 경험은 많았지. 네 말마따나 주변에서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어릴 적부터 고생이었어. 자신들이 인식하는 평범함에서 벗어난 이물을 배제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어렸을 때는 불쌍하다고 업신여겼지만 요즘은 내 쪽에서 잘못된 반응을 보인 건 아닐까 하고 생각 돼. 조금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텐데."
어딘가 아련한 눈빛을 하며 유키노시타가 말한다. 어딘지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고고하게 지내며 다른 모든 범인들을 짓밟으면서 승승장구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상한 곳에서 고민을 하는군. 괜시리 화가 났다. 유키노시타의 고민, 이랄까 지금 보이는 저 감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내가 느꼈던 감정이다. 나는 후회하기보단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화를 냈었지만.
"그건 네가 잘못된 게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거다. 날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에게 시기는 커녕 관심을 전혀 못 받아서 말이야. 그들에게 있어선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 그냥 교실 내의 배경처럼 처리해버리는 거지. 다들 좋을 대로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좋을 대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니, 절대 다수가 그렇다고 거기에 영합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상한 거지. 그런 애들도 문제지만, 풍조를 조장하고 있는 사회가 잘못된 거다. 나 같은 외톨이는 그런 것을 비웃으며 혼자 지내면 되는 거고, 너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걸 짓밟고 올라가서 사회를 바꿔버리면 되는 거야. 별로 걱정할 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
"후후, 뭐야 그거. 지금 위로해주는 거니?"
갑작스럽게 길게 말을 내뱉은 나를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유키노시타는, 이내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줬다. 어디가 얼음장이니 서늘함이니 하는 묘사를 했던 거냐, 나는. 눈이 옹이구멍이구만, 정말로. 저런 미소를 보여주면 한 번에 반해버리는 남자가 절대 다수일테니 주변의 시기를 모을 만도 하다. 나도 단련된 외톨이 정신이 아니었으면, 뭐야, 이 애 나를 좋아하는 건가? 라고 생각해서 바로 고백했을 정도의 미소였다.
"아, 아니, 위로랄까 그냥 내 생각이지만…….그, 그럼 게임이라도 계속할까."
"……그렇네. 방금 건 역시 노 카운트로 해줄게. 앞으로 남은 질문은 여덟 개야."
아직 여덟 개나 남은 거냐. 완전 여유잖아.
"그럼 세 번째 질문. 아까 말했던 그런 것들 때문에 반에서 고립된 상태냐?"
"답은 'NO'야. 고립되지는 않았어. 약간, 경원시되는 느낌은 있지만."
주변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고립은 되지 않았다, 라.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는 않는구만.
"네 번째. 학교 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냐?"
"일단 문제가 정확히 뭔지 정의를 해줄래?"
"그야 뭐, 친구관계라든가, 성적……은 아니겠네. 남자친구? 라거나."
"……그렇구나. 일단 대답은 'YES'로 해둘까. 개인적으로는 'NO'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 것 같아서. 참고로 성적에 고민은 당연히 없고, 남자친구도 없어."
히라츠카 선생님이라. 그러고보니, 여긴 나 같은 애들을 격리시키는 부활동이잖아. 그럼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단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리고 유키노시타의 방금 대답이 그 결론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줬다.
"……너, 친구 없냐?"
"……읏, 친구……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의부터 해줄래?"
나왔습니다, 친구의 정의.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암요.
반 내에서는 와이와이- 떠들다가 진학을 하거나 하면 연락이 뚝 끊길 것이 뻔한 그런 녀석들을 친구라고 부르긴 좀 그렇지~ 라는 의견을 넷 상에서 꽤 본 적은 있지만, 유키노시타는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저 반응을 보면, 오히려 내 쪽에 가깝다.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커녕, 반 내에서 대화하는 사람도 적은 그런 느낌인 것이다.
"친구 없구나, 너. 보아하니 반에서 경원시 된다고 했으니 필요 최저한의 대화는 하지만, 일상적인 화제는 전혀 없는 그런 상태네."
"……그, 그렇지 않,지……는 않구나……. 애초에 필요성을 그렇게 느끼고 있진 않지만……."
주저주저하며 그렇게 말한다. 뭐야, 역시 친구 없잖아.
"열 개까지 갈 것도 없었네. 뭐, 보다시피 나도 그런 쪽은 서툴러서. 히라츠카 선생님도 친구가 대화랑 없어서 이렇게 썩은 거라느니 그렇기도 했고……. 유키노시타 너도 그런 문제로 여기 온 거구만."
"……문제가 아니야, 문제가. 나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어."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혼자인 쪽이 훨씬 좋은데, 괜히 주변에서 걱정하는 그거지. 혼자서도 즐겁고, 남하고 맞물리지 않는 겉치레뿐인 대화를 하는 것보단 혼자서 알찬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유익한데, 사회가 그걸 용납을 안하지."
"……."
유키노시타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뭐,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준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히 불쌍하다는 식으로 폄훼하기도 하고 말이야. 잘 알고 있지."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무언가 거부감이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네. ……하아, 어째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너를 여기 부장으로 한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냐. 그거 다행이군."
가능하면 나한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이런 장소에 여자애하고 우리는 친구가 없어, 따위의 화제로 대화해야 하는 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자, 게임은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뭔가 상품이라도 있는 거냐."
"큭……."
어이, 방금 큭이라고 한거냐.
뒤에 죽여라, 라는 말만 붙었으면 완벽한 대사인 느낌의 그런 큭이잖아.
잊고 있다가 갑자기 게임에서 졌다는 걸 깨달았는지 유키노시타가 굉장히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네. 게임은 네 승리야. 상품은 따로 정한 건 없지만, 조금은 생각해두도록 할까. ……내가 너의 외톨이 경험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네. 이렇게 빨리 맞출 줄이야."
"당연하지. 오히려 그 정도로 친구가 없다고 하는 너의 감성을 나는 이해를 못하겠는데. 나 정도는 되어야 신은 커녕 사람에게도 버림받은 외톨이 마이스터를 칭할 수 있다고. 앞으로 알아둬라."
"그, 그러니."
조금 깬다는 표정으로 유키노시타가 말을 흐렸다.
"상품 건은 둘째치고, 앞으로의 활동을 어떻게 할 지가 문제인데. 가능하면 난 부활동따윈 버려두고 집에 가고 싶다만."
"……그 점에 있어선 찬성이지만, 아마도 그렇게 되긴 어려울 거라 생각해. 나도 몇 번이나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지만, 전혀 받아들여주지 않았으니까.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정해서 적어도 한동안은 진지하게 임하는 게 좋을 거라고 봐."
그 이름 높은 유키노시타 유키노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강제로 끌려온 건가. 무섭도다, 히라츠카 시즈카.
"……히라츠카 선생님이 원하는 '갱생'의 조건이 어떤 건지는 아직 모르니, 의뢰쪽을 중점적으로 가면 좋을 것 같네. 따로 홍보를 하라는 말은 없었고, 의뢰가 오면 대응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그 동안은 자유롭게 책이라도 읽으면서 보내는 걸로."
타당한 방향이다. 그보다 유키노시타가 의외로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게 조금 놀랍다.
그야말로 눈이 썩은 영문 모를 남자와 둘이서 하는 부활동인데, 괜찮은 건가.
기분 나쁘다거나, 눈이 썩었다거나, 뭐야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어? 라든가, 눈이 썩은 좀비같다거나, 동태눈깔이라거나, 등등 아무튼, 나를 보면 기본으로 따라오는 매도와 비방과 조롱이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녀석이어서 반해버릴 것 같다.
그 높은 능력과 유명세에 비해 전체적으로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있는 걸 보면, 역시 얼음 여왕이라는 소문은 과장과 날조가 섞인 걸까. 의외로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찬성이다. 아, 그리고 수요일은 방과 후에 용무가 있어서 못 나오니까, 그 날은 휴일로 하자."
"용무?"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어온다.
의도한 건 아닌듯,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그 동작에 무심코 고백해버릴뻔 했다.
위험하다, 위험해.
"아, 아아. 뭐, 애보기 같은 거다. 아는 애랑 놀아주는 게 일과가 되어버려서……."
"……그렇구나. 알았어. 내일은 그럼 휴식이네."
"그래."
당황해서 쓸데없는 일까지 말해버렸지만, 유키노시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초등학생이랑 매주 이상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말해버렸으면, 그야말로 경찰에 신고당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면 되겠니?"
"시간도 딱 적당하고. 끝내면 되겠지."
"그래…… 그럼 먼저 가볼께. 안녕."
"어, 응. 안녕."
초연하게 인사를 하고 유키노시타는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동년배 여자애에게 안녕, 이라고 인사받은 적은 몇 년만이었더라?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떠올리면서, 나도 교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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