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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1월 8일

칼리리 2017. 11. 7. 00:18





 -




 1.


 


 ───공기가 맛있다.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거였다. 다음으로 내리 쬐는 햇빛에 감사했다.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지면에 감사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감사했다. 바람이 몰고 온 소금기 띈 바다 내음에 감사했다. 

 알지도 못했을 어딘가의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지면에 입맞추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단단한 아스팔트 길을 사이로, 복제라도 해놓은 것 같은 2층의 주택가가 상당히 먼 곳까지 늘어서있다. 곧게 뻗어있는 길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늘어선 집은, 역시나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뒤를 보니 바다가 있다. 주택가의 초입부로부터 부두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였다. 그림같이 늘어선 테트라포드 끝에는 멋들어진 흰 색 등대가 서 있다.

 몸은 자연히 그쪽으로 향했다.

 단단한 지면과, 그 지면을 내딛는 발과, 앞 뒤로 흔들리는 팔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몸의 움직임, 어느 것 하나도 생소한 것들이지만, 몸은 당연하게도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어, 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바다가 펼쳐진 부두로 다다를 수 있었다.

 파도가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와 바닷바람의 상쾌함을 즐기며 해안가를 걷는다.

 익숙하지만 모르는 해안가를 걸으면서 잠시 생각한다. 가장 먼저 해야할 건 무엇인지.

 자아의 확립? 아니, 이미 나는 '나'로 확립되어 있다.

 형체를 고정하는 것? 아니, 이미 육체가 있다.

 그 외에도, 기타 존재유지를 위한 다양한 것들을 떠올렸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정립이 되어있다. 이 얼마나 상냥한 세계인가.

 고차원의 세계로 왔으니, 지성활동도 조금 고차원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자신을 유지하느니, 살아가느니 하는 극히 저차원적인 것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몸이 가는 곳으로 걷던 나는, 해안가 끝에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절벽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세 채의 검붉은 색 건물. 

 학교다.

 굉장히 익숙한 모양새의 그 건물을 향해 걷는다. 학교까지의 길은 익숙한 것이었다. 매일같이 걷는 길인 듯,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해안가의 반대편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보이고, 그 밑으로는 전부 주택가인 듯, 높은 건물이 보이질 않는다. 내 앞에 있는 학교가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몸이 가는 대로 학교로 왔지만, 높은 곳에 올라서 이 '세계'를 확인하기엔 적절한 선정이다.

 입구에 도착했다. 열려있을 거라 생각한 교문은 굳건히 닫혀있다. 조금 고민하다가, 넘어가기로 했다. 보는 사람도 없고, 건강한 육체는 이 정도 높이의 철문 정도는 무난히 오를 수 있다.


 "아."


 교문 위에 올라서 잠시 높은 위치에서의 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밑에서 얼빠진 소리가 난다.

 소녀다. 교복을 입고 있는, 체구가 작은 소녀다. 이 학교 학생일까. 오밀조밀하게 정돈된 얼굴에 빛나는 금발이 어색하다.

 생각해보면, 지성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과 대화하는 건 얼마만인지. 형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껏이었던 불완전한 세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구조가 갖춰진 곳에서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언제 어느 때였던가, 누가봐도 더 '높은 곳'에서 있어야 할 것 같았던, 그녀와 지나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적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세계는 희망적이다.

 도착해서, 걷고, 둘러본 결과, 여기는 지극히 안정적이다. 적어도 잠시 후에 무너질 것 같은, 그런 곳은 아니었다. 내 육체도 안정적이고, 지식도 풍부한 편이다. 고차원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


 "지금 등교라니 배짱도 좋은걸."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 얘기한다. 가늘게 뜬 눈은 완전히 아는 사람을 볼 때의 시선이다. 

 아는 사람인가?

 나는 기억을 뒤져본다. 언어가 되지 않는 다채로운 기억 중에 눈에 띄는 색깔이 있다. 검정, 흰색, 금색. 

 금색?

 

 "노랑이?"
 "뭐야, 그, 방금 알아차렸다는 느낌의 말은. 그리고 노랑이는 그만둬."


 조금 발끈한 기색으로 얘기하는 소녀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역시 안정적이고 좋은 육체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리가 갑자기 부서지거나 하지 않는 점이 좋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응, 아니, 나가려는데 보여서 말을 걸었을 뿐인데. ……학교에 오질 않아서 윤이 걱정하고 있었다고."

 

 그 말에 문득 자신의 몸을 보니 어두운 색의 바지와 흰색 셔츠로 이루어진 교복을 입고 있었다. 등교중이었을까. 

 윤이라는 이름에는 짐작이 있었다. 색조적으로 검은색이었던 멋들어진 녀석이 윤이다. 상냥하기로 정평이 나있다는 소문이 기억에 있었다. 나와 윤은 특별히 친한 모양이었으니, 등교를 하지 않았으면 걱정할만도 하다. 게다가 나는 비교적 성실한 학생이었던 것 같으니 더욱.

 

 "별다른 일이 있던 건 아니었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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