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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8월 6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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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다른 자그마한 차이가, 가끔은 많은 걸 바꾸기도 한다.
1. 히키가야 하치만은 썩어있을 지도 모른다.
국어교사 히라츠카 시즈카는 아무튼 '댄디한 미인 교사'라는 모순적인 평가가 잘 어울리는 존재로, 발군의 스타일과 미모, 그리고 어중간한 남성 교사보다 훨씬 터프한 모습 때문에 여러모로 세간에 회자가 되고 있다.
지금도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내가 써낸 작문을 삐딱한 자세로 읽고 있다.
그야말로 부하 직원의 보고서를 평가하는 유능한 상사의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쓸모없는 보고서를 평가 당하는 무능한 부하 직원의 포지션.
"그래서, 이건 뭐냐?"
"……평범한 작문 레포트입니다만……."
"그러냐. 아마도 평범이라는 정의가 네 안에선 마구 비틀렸나 보구나."
"일반 상식적인 범위 내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쩐지 기어 들어가게 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다시 작문 용지를 쳐다보던 히라츠카 선생님은 하아아아~ 하고 크나큰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학교 생활은 야생이다. 약한 존재는 무리를 지어 서로를 핥고 보듬어주며 자기 위안을 한다. 그런 점에서 외톨이는 고독하고, 그렇기에 독립 자존이 가능한 강한 존재이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강제로 집단 생활을 경험하게 되니, 학교는 모름지기 학생에게 외톨이로 지내는 것을 장려하여 독립한 개체로 성장하기 위해 도움을 주어야한다……'"
"……."
쓸 때 당시에는 나 나름대로의 역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이 읽어주니 부끄럽기가 한량없다.
작가 사인회에 그 작가의 초기작을 들고 가서 사인을 부탁하면 발작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히키가야, 다시 한 번 물어보마. 이건 뭐냐?"
아니, 그러니까 평범한 작문인데요, 라고 말하려는데, 히라츠카 선생님의 오른손이 꽉 쥐어진 것을 무심코 봐버렸다.
이건…… 위험하다.
다시 보니 눈도 위험하다. 진지한 눈이었다.
너 같은 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라고 말하는 킬러의 눈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최적의 반응을 돌려줬다고 생각했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의 반응이 신통찮다.
달군 철판 위라도 올라가서 사죄해야 하나.
하다못해 바닥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려는 찰나,
"히키가야, 나는 네가 걱정이다."
"네?"
갑자기 우리 엄마 같은 말씀을 하셔도 곤란합니다만.
"1학년 때 네 기록을 좀 읽었다만, 1학년 때도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없던 모양이더군. 지금도 마찬가지고. 맞나?"
"친구를 만들면 인간강도가 떨어진다는 주의라."
"……네 썩은 눈을 보면 그럴 것 같았다. 부활동도 안했었지?"
"네."
"여자친구는……, 미안, 잊어줘라."
다 말한 뒤에 사과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지 않나요, 선생님.
이왕 이렇게 된 거 교내에 미인 여교사로 유명한 히라츠카 시즈카 선생님이 저를 구제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라고 말하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해야지.
"마침 잘 됐군. 너한테 시킬 일이 있다."
"뭐, 청소라도 하면 될까요."
그런 거라면 자신 있다. 장래에 전업주부를 목표로 하는 이상, 청소와 요리는 매일 수련하고 있으니까.
보아하니 단체로 웨이웨이~ 하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닐테니, 이런 건 여유다.
오히려 레포트 따위를 쓰지 않고 청소로 대체해주면 고마울 정도다.
"아니, 부활동을 시작해줘야겠다. 이름은 '봉사부'."
"'봉사부'라니…… 오는 사람한테 돈을 받고 귀라도 파주면 되는 건가요."
히죽거리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바람이 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눈 앞에 주먹이 와있었다.
"진지하게 들어라."
"넵."
히라츠카 선생님이 무섭게 말했다.
아니, 진짜 무섭거든요.
"여기 소부고는 어쨌든 진학교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너 같은 문제아가 많다는 걸 깨달아서 말이지. 그런 애들을 갱생시키는 부활동을 하나 시작하려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히키가야 네가 첫 타자로 부장을 맡게 될테니 그리 알도록."
하? 이게 무슨 소리야.
작문을 조금 이상하게 썼다고 혼나러 왔을 뿐인데, 어쩌다 영문 모를 부활동의 부장까지 맡게 되는 거지.
당사자인 내가 봐도 개연성이 눈곱만큼도 없다.
요새 라이트노벨도 이렇지는 않다.
제대로 복선을 깔아준다고.
"방과 후에 직원실로 다시 오도록. 여러가지 수속은 내가 처리해둘테니 걱정하지 마라."
"하아……네, 알겠습니다."
"좋아. 가도 된다."
좋기는 무슨.
마음 속에선 당장이라도 마구 반발하고 싶었지만,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히키가야 하치만이 내 파괴충동을 억제하고 있다.
절대로 히라츠카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래도 이거 한 마디는 해야지.
나는 일단 인사를 한 뒤 일말의 기대를 담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 레포트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다시 써야지."
네, 그렇겠죠.
-
방과 후, 직원실로 가서 히라츠카 선생님과 동행해 이동한 곳은 특별실 건물의 빈 교실이었다.
교실 한 쪽에 책상과 의자가 쌓여있을 뿐인 아무 것도 없는 교실이다.
"자, 여기다."
"자, 여기다, 라고 말씀하셔도, 뭘 하면 좋을 지 아무 것도 모르는데요."
"'봉사부'의 활동을 하면 된다. 일단 앉을 의자랑 책상 정도는 차려야겠지. 어이, 히키가야. 출동이다."
네, 히키가야 하치만, 출동합니다.
괜히 반발해봐야 어차피 따르게 될 것을 알기에, 나는 군말없이 책상과 의자를 내려서 늘어놓았다.
적당히 책상을 이어 서양식 테이블마냥 길게 놓고, 양 끝에 의자를 두었다.
그리고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일단 겐도 포즈를 취해봤다.
"뭘 사령관 행세를 하는 거냐. 이리 와봐라, 활동 내용을 설명해주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바로 알아 먹는 당신도 어이없거든요, 선생님…….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소부고는 진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는 문제아가 좀 있어서 말이다. 그런 애들을 갱생시키는 부활동이다. 뭐, 까놓고 말하면 문제아를 격리시키는 장소라고 보면 된다."
너무 까놓고 말하신 것 같은데.
그리고 소부고에 문제아가 많다는 얘기는 언뜻 들어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2년 째 관찰하고 있는 결과, 소부고는 리얼충이나 면학에 힘쓰는 평범한 학생밖에 없었거든. 아, 한 명, 외톨이로 지내는 히 모 군은 빼고요.
애초에 격리시킨 다음에 뭘 시키려는 속셈이지.
배틀로얄이라도 벌여서 최강의 문제아를 뽑으면 되는 건가.
"'갱생'이다, 히키가야. '갱생'. 배틀로얄이 아니야. 궁극적으로는 다른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기 자신도 점차 바꿔가는 부활동이 되었으면 한다만, 뭐, 그런 느낌으로 노력해봐라."
"전혀 설명이 안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방과 후에 무조건 그 의미불명의 활동을 해야하는 겁니까."
"네 눈이 조금은 나아질 때까지는 그래야겠지. 너무 사람과의 대화가 없으면 속이 썩기 마련이다. 대화의 장이 마련되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본다."
나왔습니다, 대화의 장.
대화에 문제가 없는 분들은, 외톨이들이 대화할 기회가 없어서 대화를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완전한 오해다.
대화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외톨이들끼리 대화의 장을 만들어봐야, 그건 예배당 저리가라 할 침묵의 장이 될 것이 뻔하다.
침묵의 장은 간사를 맡은 사람이 리얼충이어서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나가려 해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지쳐서 넉다운 되고 마는, 무서운 공간이다.
그런 지옥도를 이 곳에 진정 펼치려 하는가…….
게다가, 아까부터 자꾸 갱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히라츠카 선생님이지만, 나는 이미 1년이 넘게 갱생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갱생지도를 하고 있는 선생님(초등학교 6학년, 여)에 의하면 이미 충분히 발전했다고 한다.
……진짜라니까?
"하아, 뭐, 알았습니다. 대신 수요일은 빼주세요. 용건이 좀 있어서."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럼 수요일은 제외하고 활동하는 걸로. 이 교실의 열쇠는 맡기마."
히라츠카 선생님이 열쇠를 건네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교 내에 혼자 조용히 지낼 공간을 얻었다는 점은 플러스 요소다. 물론 방과 후에는 학교 따위에 남지 않고 집에 가면 되니, 점심 시간엔 적어도 조용히 지낼 수 있겠지.
나쁘지 않은 장사다.
"활동은 내일부터 하는 걸로 하지. 내일 너 같은 문제아를 한 명 데려올테니, 잘 해보도록."
"네……. 아니, 그래서 정확히 뭘 하면 되는 지는 결국 안 알려주는 건가요?"
"그건 차차 생각해보면 될 거다. 그럼."
휙, 하고 돌아서서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히라츠카 선생님.
쓸데없이 멋있어서 그만 그대로 지켜보고 말았다.
부활동에 관한 건 여전히 의미불명이다.
뭐, 그냥 도망가면 되겠지.
히라츠카 선생님도 학생 하나에 그렇게 시간을 들일 여유는 없을 것이다.
외톨이 하나에 신경을 쓰느니, 성실하고 면학에 힘쓰는 일반 학생들을 구제하는 편이 학교로서도 도움이 될테니까 말이다.
2.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주저하며 참가한다.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과연, 히라츠카 선생님은 학생 하나에 그렇게 시간을 들였던 것이다.
다음 날.
당연히 부활동따위를 할 예정이 없던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홈룸이 끝나자마자 교실밖으로 뛰쳐나간 나를 히라츠카 선생님이 인왕처럼 서서 가로막고 있었다.
서있는 포즈며 압박감이 간수가 따로 없다.
"히키가야, 어딜가는 거냐."
"무, 물론 부활동이죠, 네. 부실로 가려고 했습죠, 헤헤."
"……도망가려고 했던 건 봐줄테니 그 말투는 그만해라."
"넵."
그대로 연행돼서 교실로 데려가질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인지 히라츠카 선생님은 먼저 교실로 가 있으라고 말한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대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하수의 생각이다. 내일이면 어차피 돌아오는 학교, 시기를 봐서 그만두긴 해야겠지만, 당장 그만두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저렇게 학생 한 명 한 명을 신경 쓸 정도면 한동안 도망가는 건 무리라고 봐야겠지.
플레이트에 아무 이름도 쓰여져 있지 않은 어제의 그 교실로 들어간다.
내가 만들어 놓은 양식 저택의 식당 풍 부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창가 쪽에 앉아서 겐도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문을 열어 젖히며 들어왔다.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머리가 아픈 듯 잠시 휘청거렸다.
……아니, 겐도 포즈가 어때서?
"……괜찮으세요, 선생님?"
갑자기 교실 밖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겠지, 라고 문득 생각 할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무의식적으로 놀라 겐도 포즈도 풀어버릴 정도였다.
도대체 누가 이런 목소리를 내는가 싶었는데, 얼굴을 본 순간 그런 생각도 다 날아갔다.
창백할 정도의 피부에 쭉쭉 뻗은 팔다리의 균형 잡힌 몸. 그리고 칠흑같이 곱게 뻗은 머리카락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의 미소녀가 그 곳에 서있었다.
보는 순간 얼려버릴 것 같은 눈동자의 서늘함마저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아아, 보는 순간 나는 이 소녀가 교내에 소문이 자자한 그 미소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2학년 J반 유키노시타 유키노.
많은 재원이 모인 국제교양과 J반 내에서도 더욱 격을 달리하는 절세 미소녀.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은 성적 우수자이면서, 그 사람같지 않은 외모로 인해서 더욱 주목을 받는 고령의 꽃.
여하간 유명인이다.
그런 유명인이 이런 외진 부실에 뭐하러 온 거야……라고 생각한 찰나, 주마등처럼 어제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이 여자애가 '문제아'인가.
신의 사랑을 받을 것 같은 이 완벽초인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 '문제아'로서 끌려온 거지.
"……."
"……."
나도 유키노시타도 서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그렇잖아.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
"그렇게 있을 거면 서로 자기소개라도 하지 그러냐?"
"아, 네. 어……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
"……2학년 J반 유키노시타 유키노."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과연 이런 분위기에는 히라츠카 선생님도 당황했는지, 잠깐 허둥대더니,
"음, 어, 어제 히키가야에겐 얘기했지만 이곳은 '봉사부'라는 곳으로, 여러모로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학생들을 데려다 갱생시키는 곳이다. 내가 지켜본 결과 2학년 내에서 가장 큰 문제아로 보이는 너희 둘을 일단 이 부활동에 넣고, 활동시키려고 한다. 알겠지?"
"선생님, 저는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유키노시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물론, 말하지 않았으니 못 들었겠지. 일단 부장은 저기 히키가야 하치만이 맡을테니, 유키노시타 너는 히키가야를 도와서 상호갱생 및 타 학생들의 의뢰를 해결하는 형태로 부활동을 진행시키면 된다."
"잠깐만요, 선생님. 둘이서 부활동을 하라는 건가요? 그, 여러모로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아뇨, 뭐, 제가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건 아니지만요. 일반 사회통념 상."
나는 유키노시타를 곁눈질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런 폐쇄적인 교실에서 저런 미소녀랑 나처럼 눈이 썩은 좀비 같은 사람이 같이 있는 것 정도로 이미 신고 대상이다. 군자는 위험에 다가가지 않는 법. 무고죄를 당할 상황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물론 히키가야 네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눈과 성격에 큰 문제가 있지만, 그 정도의 계산은 할 줄 아는 놈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유키노시타 너도 걱정할 거 없다."
유키노시타는 가만히 나를 보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분위기에 어울리게 조용한 타입인가 보다. 뭐, 저 분위기에 말이 많은 것도 또 산통을 깨는 느낌이긴 하다.
"하아……, 애초에 저 애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그 부분은 본인이랑 얘기하면 된다. 자, 뒷 일은 맡길테니 올바르고 건전한 부활동으로 갱생의 길을 걷도록 해라. 그럼."
뭔가 자기만족스러운 대사를 읊으며 히라츠카 선생님이 교실을 나갔다.
"……."
"……."
또 다시 침묵.
침묵은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모르는 미소녀와 폐쇄된 교실에서 침묵 하고 있는 것을 즐기진 않는다.
교실 한 켠에 붙은 시계의 시침 소리만 요란한게 들린다.
시츄에이션적으로는 뭇 남학생들의 이상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 얼음장 같은 눈을 보면 러브코미디 뇌를 전개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이, 일단 그쪽에 앉으면?"
"……그래."
유키노시타가 사뿐히 걸어와 의자에 앉는다.
백합과 모란이 시기할 정도의 동작이다.
큰일났다. 갑자기 긴장되는데.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써 머리 밖으로 내밀던 유키노시타의 외모가 눈에 물 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는 거니?"
"글쎄, 나도 어제 막 이 곳에 끌려온 참이라.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한 대로라면 뭔가 타 학생의 의뢰를 받으면서 자력갱생을 시도하는 부활동이라지만."
자력갱생이 됐으면 이 나이에 이런 식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내 말에 유키노시타는 조금 생각한 구석이 있는지 잠시 침묵했다.
나도 잠시 생각한다. 어쨌든 부활동은 강제. 유키노시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한동안은 얼굴을 마주칠테니, 상황을 아는 정도의 질문은 괜찮겠지.
"그보다 조금 물어보고 싶다만, 너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여기 온 거냐?"
"…그렇네, 그냥 알려주기도 아까우니 조금 게임을 해볼까."
갑자기 유키노시타가 훗, 하고 웃더니 그렇게 말했다.
"게임?"
"그래. 게임.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됐는지. 열 가지 정도 질문을 하면 내가 YES, NO로 대답할테니 네가 맞춰보는 걸로 할까."
지금껏 조용하게 있더니, 갑자기 의욕이라도 생겼는지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했다.
뭐, 좋다. 수수께끼는 좀 자신 있는 편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같이 놀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하는 놀이는 대부분 잘하는 축에 들어간다. 더 나가서 둘이서 해야만 하는 게임이나 운동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쪽도 나쁘지 않다.
어라, 뭔가 슬픈 얘기 아닌가 이거.
"좋아. 그럼 첫 번째. 뭔가 교칙을 자주 어기거나 문제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거냐?"
"답은 'NO'야.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문제아'라는 내용에서 가장 먼저 생각날 수 있는 내용을 말해봤을 뿐이다.
"그럼 두 번째. 네가 아닌 주변 때문에 발생한 문제에 휘말린 거냐?"
"!?"
유키노시타가 어째선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뭐야, 평범한 질문이잖아.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답은 'YES'로 봐야겠네. 전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보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응? 뭔데?"
"어째서 바로 주변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알아차린 거니?"
유키노시타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물어봤다. 별다를 것 없이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얘기를 꺼내본 건데, 의외로 반응이 좀 있는 걸 보니, 그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 건가.
뭐, 그럴만도 하지.
"그건 그거다. 어쨌든 군중들은 튀어나온 곳이 있으면 누르려고 시도하고, 그게 안되면 배제하려는 습성이 있으니까 말이지. 성인이 된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이라면 더욱 많겠지. 너 정도 되는 능력에 미모라면 주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겠구나, 싶어서 말해본 것 뿐이야."
"……그렇구나."
"뭐, 대충 때려 찍은 거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진 말라고. 그보다, 그런 경험이 많은거냐, 너?"
"그건 게임의 질문이니?"
유키노시타가 도발적인 눈빛을 띄운다. 눈빛에서 이번 건 카운트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가 무럭무럭 풍겨나온다.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은 거냐……. 의외로 승부욕이 강할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
"아, 그냥 물어본 거지만 카운트 해도 상관없어."
"그런 거라면 노 카운트로 해줄게. ……그래, 경험은 많았지. 네 말마따나 주변에서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어릴 적부터 고생이었어. 자신들이 인식하는 평범함에서 벗어난 이물을 배제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어렸을 때는 불쌍하다고 업신여겼지만 요즘은 내 쪽에서 잘못된 반응을 보인 건 아닐까 하고 생각 돼. 조금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텐데."
어딘가 아련한 눈빛을 하며 유키노시타가 말한다. 어딘지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고고하게 지내며 다른 모든 범인들을 짓밟으면서 승승장구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상한 곳에서 고민을 하는군. 괜시리 화가 났다. 유키노시타의 고민, 이랄까 지금 보이는 저 감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내가 느꼈던 감정이다. 나는 후회하기보단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화를 냈었지만.
"그건 네가 잘못된 게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거다. 날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에게 시기는 커녕 관심을 전혀 못 받아서 말이야. 그들에게 있어선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 그냥 교실 내의 배경처럼 처리해버리는 거지. 다들 좋을 대로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좋을 대로 판단하고 있을 뿐인데, 절대 다수가 그렇다고 거기에 영합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상한 거지. 그런 애들도 문제고, 그런 풍조를 조장하고 있는 사회도 잘못됐다. 나 같은 외톨이는 그런 것을 비웃으며 혼자 지내면 되는 거고, 너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걸 짓밟고 올라가서 사회를 바꿔버리면 되는 거야. 별로 걱정할 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
"후후, 뭐야 그거. 지금 위로해주는 거니?"
갑작스럽게 길게 말을 내뱉은 나를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유키노시타는, 이내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줬다. 어디가 얼음장이니 서늘함이니 하는 묘사를 했던 거냐, 나는. 눈이 옹이구멍이구만. 저런 미소를 보여주면 한 번에 반해버리는 남자가 절대 다수일테니 주변의 시기를 모을 만도 하다. 나도 단련된 외톨이 정신이 아니었으면, 뭐야, 이 애 나를 좋아하는 건가? 라고 생각해서 바로 고백했을 정도의 미소였다.
"아, 아니, 위로랄까 그냥 내 생각이지만…….그, 그럼 게임이라도 계속할까."
"……그렇네. 방금 건 역시 노 카운트로 해줄게. 앞으로 남은 질문은 여덟 개야."
아직 여덟 개나 남은 거냐. 완전 여유잖아.
"그럼 세 번째 질문. 아까 말했던 그런 것들 때문에 반에서 고립된 상태냐?"
"답은 'NO'야. 고립되지는 않았어. 약간, 경원시되는 느낌은 있지만."
주변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고립은 되지 않았다, 라.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는 않는구만.
"네 번째. 학교 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냐?"
"일단 문제가 정확히 뭔지 정의를 해줄래?"
"그야 뭐, 친구관계라든가, 성적……은 아니겠네. 남자친구? 라거나."
"……그렇구나. 일단 대답은 'YES'로 해둘까. 개인적으로는 'NO'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 것 같아서. 참고로 성적에 고민은 당연히 없고, 남자친구도 없어."
히라츠카 선생님이라. 그러고보니, 여긴 나 같은 애들을 격리시키는 부활동이잖아. 그럼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단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리고 유키노시타의 방금 대답이 그 결론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줬다.
"……너, 친구 없냐?"
"……읏, 친구……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의부터 해줄래?"
나왔습니다, 친구의 정의.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암요.
반 내에서는 와이와이- 떠들다가 진학을 하거나 하면 연락이 뚝 끊길 것이 뻔한 그런 녀석들을 친구라고 부르긴 좀 그렇지~ 라는 의견을 넷 상에서 꽤 본 적은 있지만, 유키노시타는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저 반응을 보면, 오히려 내 쪽에 가깝다.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커녕, 반 내에서 대화하는 사람도 적은 그런 느낌인 것이다.
"친구 없구나, 너. 보아하니 반에서 경원시 된다고 했으니 필요 최저한의 대화는 하지만, 일상적인 화제는 전혀 없는 그런 상태네."
"……그, 그렇지 않,지……는 않구나……. 애초에 필요성을 그렇게 느끼고 있진 않지만……."
주저주저하며 그렇게 말한다. 뭐야, 역시 친구 없잖아.
"열 개까지 갈 것도 없었네. 뭐, 보다시피 나도 그런 쪽은 서툴러서. 히라츠카 선생님도 친구가 대화랑 없어서 이렇게 썩은 거라느니 그렇기도 했고……. 유키노시타 너도 그런 문제로 여기 온 거구만."
"……문제가 아니야, 문제가. 나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어."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혼자인 쪽이 훨씬 좋은데, 괜히 주변에서 걱정하는 그거지. 혼자서도 즐겁고, 남하고 맞물리지 않는 겉치레뿐인 대화를 하는 것보단 혼자서 알찬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유익한데, 사회가 그걸 용납을 안하지."
"……."
유키노시타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뭐,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준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히 불쌍하다는 식으로 폄훼하기도 하고 말이야. 잘 알고 있지."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무언가 거부감이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네. ……하아, 어째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너를 여기 부장으로 한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냐. 그거 다행이군."
가능하면 나한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이런 장소에 여자애하고 우리는 친구가 없어, 따위의 화제로 대화해야 하는 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자, 게임은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뭔가 상품이라도 있는 거냐."
"큭……."
어이, 방금 큭이라고 한거냐.
뒤에 죽여라, 라는 말만 붙었으면 완벽한 대사인 느낌의 그런 큭이잖아.
잊고 있다가 갑자기 게임에서 졌다는 걸 깨달았는지 유키노시타가 굉장히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네. 게임은 네 승리야. 상품은 따로 정한 건 없지만, 조금은 생각해두도록 할까. ……내가 너의 외톨이 경험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네. 이렇게 빨리 맞출 줄이야."
"당연하지. 오히려 그 정도로 친구가 없다고 하는 너의 감성을 나는 이해를 못하겠는데. 나 정도는 되어야 신은 커녕 사람에게도 버림받은 외톨이 마이스터를 칭할 수 있다고. 앞으로 알아둬라."
"그, 그러니."
조금 깬다는 표정으로 유키노시타가 말을 흐렸다.
"상품 건은 둘째치고, 앞으로의 활동을 어떻게 할 지가 문제인데. 가능하면 난 부활동따윈 버려두고 집에 가고 싶다만."
"……그 점에 있어선 찬성이지만, 아마도 그렇게 되긴 어려울 거라 생각해. 나도 몇 번이나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지만, 전혀 받아들여주지 않았으니까.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정해서 적어도 한동안은 진지하게 임하는 게 좋을 거라고 봐."
그 이름 높은 유키노시타 유키노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강제로 끌려온 건가. 무섭도다, 히라츠카 시즈카.
"……히라츠카 선생님이 원하는 '갱생'의 조건이 어떤 건지는 아직 모르니, 의뢰쪽을 중점적으로 가면 좋을 것 같네. 따로 홍보를 하라는 말은 없었고, 의뢰가 오면 대응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그 동안은 자유롭게 책이라도 읽으면서 보내는 걸로."
타당한 방향이다. 그보다 유키노시타가 의외로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게 조금 놀랍다.
그야말로 눈이 썩은 영문 모를 남자와 둘이서 하는 부활동인데, 괜찮은 건가.
기분 나쁘다거나, 눈이 썩었다거나, 뭐야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어? 라든가, 눈이 썩은 좀비같다거나, 동태눈깔이라거나, 등등 아무튼, 나를 보면 기본으로 따라오는 매도와 비방과 조롱이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녀석이어서 반해버릴 것 같다.
그 높은 능력과 유명세에 비해 전체적으로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있는 걸 보면, 역시 얼음 여왕이라는 소문은 과장과 날조가 섞인 걸까. 의외로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찬성이다. 아, 그리고 수요일은 방과 후에 용무가 있어서 못 나오니까, 그 날은 휴일로 하자."
"용무?"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어온다.
의도한 건 아닌듯,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그 동작에 무심코 시선이 못박힌다.
위험하다, 위험해.
"아, 아아. 뭐, 애보기 같은 거다. 아는 애랑 놀아주는 게 일과가 되어버려서……."
"……그렇구나. 알았어. 내일은 그럼 휴식이네."
"그래."
당황해서 쓸데없는 일까지 말해버렸지만, 유키노시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초등학생이랑 매주 이상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말해버렸으면, 그야말로 경찰에 신고당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면 되겠니?"
"시간도 딱 적당하고. 끝내면 되겠지."
"그래…… 그럼 먼저 가볼께. 안녕."
"어, 응. 안녕."
초연하게 인사를 하고 유키노시타는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동년배 여자애에게 안녕, 이라고 인사받은 적은 몇 년만이었더라?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떠올리면서, 나도 교실을 나섰다.
3. 츠루미 루미는 언제나 한숨을 쉰다.
사전에 협의가 되었기 때문인지 수요일인 오늘, 간수 더 히라츠카가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일은 없었다.
유키노시타에게도 어제 말해놨으니, 오늘은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애초에 그 교실 열쇠는 나한테 있으니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여느 때 같으면 집으로 곧장 직행해서 책이라도 읽겠으나 아쉽게도 수요일은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이른바 히키가야 하치만 갱생 프로그램.
[썩은 눈 소유자]로 삼천세계에 드높은 이름을 가진 나, 히키가야 하치만을 명석하고 아름다운 미소녀가 갱생시켜 구제한다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다.
시작할즈음에는 그런 기치를 내 건적도 있지만, 실상은 외로움을 잘 타고 친구를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 뿐이다.
후자 쪽이 훨씬 수상쩍어 보이는 건 분명 착각이겠지.
"늦어. 하치만."
"홈룸 끝나자마자 뛰어온 거라고. 도대체 난 얼마나 빨리 와야 하는 거냐."
"나보다 일찍 올 정도는 되어야,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있잖아."
"아니, 무리겠지."
보통으로 무리다. 고등학교 얕보지 말라고. 초등학교보다 훨씬 귀찮은 게 많단 말이다.
뭐, 그래도 언제나 기다리게 하는 건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한 번 학교라도 땡땡이를 쳐서 놀라게 해주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큼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언제나의 대화를 주고 받고, 나는 루미 옆에 앉았다.
츠루미 루미.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애지만, 찰랑 거리는 흑발이나 단정한 얼굴에 그 똑부러진 성격을 보면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소녀다. 미소녀라고 하기엔 내 기준으로는 조금 나이가 어리니, 초등학생은 역시 최고야! 라고만 말해두자.
"……뭔가, 눈빛이 기분 나빠."
"그거 미안하네. 썩은 눈빛이라."
"벼, 별로 썩은 눈빛이라고 하진 않았어. 그, 그냥 기분 나쁘다고 했을 뿐."
"그게 평범하게 더 상처 받습니다만……."
내 말에 후후, 하고 루미가 웃는다. 어린애 주제에 뭔가 묘하게 침착한 웃음 방법이구나- 라고 언제나 생각하곤 한다.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꺄하하하하- 같이 웃으면 된다.
고등학생이나 돼서는 교실에서 그렇게 웃어제껴서 뭇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녀만 안되면 되니까.
"하치만. 오늘은 뭘 할 거야?"
"잔다."
"그런 거 말고."
"뭘 할 지 생각하는 건 네 몫이겠지. 선생님이잖냐."
"그, 그렇네."
내 말에 루미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뭔가 언제나 루미의 고민 상담 같은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시작은 항상 주제가 있다.
이를테면, 여자애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법이라든가, 여자애와 대화하는 법이라든가, 친구를 만드는 법이라든가 등등.
어쨌든 그런 걸 1년이 넘도록 지속했으니, 슬슬 주제가 떨어질 때도 됐다.
"가르칠 게 없다면 슬슬 졸업하고 싶은데요. 선생님."
"아……."
농담삼아 그렇게 말해봤더니, 엄청나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어이, 농담이다, 농담.
울어버리면 그걸로 경찰서 직행이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인기척이 드문 공원이라, 보이는 것 만으로도 위험한 수준인데.
"아, 아아,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졸업하려면 멀은 것 같네. 적어도 여자친구 정돈 만들어야, 번듯하게 졸업할 수 있겠지, 응."
"……바보. 여자친구따위 만들 수 있을리가 없잖아."
"너, 그렇게 나를 자꾸 무시하는데, 들어봐라. 최근의 나는 굉장하다고. 무려 학교 제일의 미소녀와 둘이서 부활동을 하는 초 리얼충적인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굉장하지?"
그 상황이 타의 100%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나도 조금은 즐거워하고 있었을텐데.
"또 거짓말. 하치만은 맨날 거짓말만 해."
"아니, 진짜라니까. 내 눈을 봐봐. 거짓말을 하는 것 같냐?"
"……기분 나빠서 잘 모르겠는데."
"야야, 너 그거 자꾸 들으면 무뎌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많이 들은 말이어도 상처받거든?"
정말이다. 동급생 여자애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기분 나빠…….'라고 하면 다시는 교실에 안 나갈 자신이 있을 정도로 상처 받는다.
그거, 대놓고 들으면 엄청나게 아프다고.
"……거짓말 아냐?"
"그렇다니까. '봉사부'라는 의미불명의 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학교 제일의 미소녀랑?"
"그래. 그러고보니 그런 애랑 대화하는 데 잘도 긴장 안하고 멀쩡히 대화했구만. 보통 때 같았으면 처음 인사부터 혀를 씹는 바람에 부끄러워져서 도망쳤을 레벨의 미소녀였는데."
정말로 프로그램의 승리인가.
루미쨩 대승리!
"흐응, 그, 그렇구나. 많이 예쁜 사람이었어?"
"그렇네. 아무튼 본 것 만으로 반해버릴 정도의 미모였지, 그건. 길에서 지나가면 열 명 중 열 두 명은 돌아볼 정도다."
"……두 명은 뭐야."
"다들 돌아보니 뭔지 싶어서 같이 돌아보는 사람들."
"그, 그럼 많이 바빠지겠네?"
루미가 묘하게 침울해진 어조로 말한다.
알기 쉬운 녀석이구만, 정말로.
이 나이대의 여자애치고는 정말 알기 쉽다. 분위기 읽기 능력 검정 시험에서 탈락한 나도 츠루미 루미 검정 시험이 있다면 2급 정도는 여유로 딸 수 있을 것 같다.
"뭐, 바쁠지 어떨지는 몰라도 앞으로 집으로 바로 가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
대놓고 침울해 하고 있다.
울기 전에 달래줘야지.
"그래도 수요일은 다른 용무 때문에 뺀다고 말해 놨으니 안 할 것 같다만."
"다른 용무?"
루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묻는다.
다른 용무 = 이 시간, 이라는 발상이 어려운가.
"지금 말이야, 지금. 그러니까 그렇게 침울해할 거 없다고."
"아……. 으읏, 어린애 취급은 그만해!"
그제서야 깨달은 루미의 머리를 대 코마치 사양으로 쓰다듬어 주니 내 손을 막으며 반발한다.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 대 코마치 버젼 히키가야 하치만을 거부하다니.
배가 부른 녀석이구만.
"아무튼, 1년 동안 이렇게 떠들어 댄 보람은 있는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의외로 여자애하고 평범히 얘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초가 붙을 정도의 하이레벨 미소녀랑 말이지.
이제와서지만, 오늘 그게 올해 들어서 가족과 선생님, 그리고 루미를 제외한 여자와의 첫 대화였다는 걸 깨달았다.
슬프다.
"도움이 된 걸까?"
"조금은."
"그런가……. 하치만. 무슨 부라고 했는지 다시 알려줘."
"봉사부. 문제아를 갱생시키는 부라는 것 같고, 무려 부장은 나로 되어있다만, 나도 잘 몰라. 첫 날인 어제는 아까 말한 그 여자애…… 유키노시타와 떠들기만 했었고."
"……뭔가, 즐거워 보이는 활동같아."
"아직 제대로 시작도 뭣도 안했다만."
애초에 뭘 어떻게 누구에게 봉사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학교는 별로 재미없어."
루미가 툭 내던지듯 그렇게 말했다.
"그런 활동을 하면 조금은 학교가 즐거워질까?"
"글쎄. 나는 너보다 몇 년은 더 학교를 더 다녔지만, 그런 걸 한다고 재미없는 게 바뀌진 않을걸."
"애들이 바보같은 건, 중학교를 가면 조금 나아질까?"
"전혀. 고등학교도 똑같다. 간 적은 없지만, 대학교도 똑같을 거고,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을 걸."
"우울한 이야기네."
"정말이다."
어느샌가 또 루미의 고민상담 교실이 되어버렸다. 뭐, 이것도 언제나의 일이다.
루미는 다른 애들보다 조금 조숙한 탓인지, 교실 내에서 관계가 잘 맞물리지 못하는 것 같아 언제나 내게 그런 얘기를 해온다.
물론, 나는 프로 외톨이로서 외톨이의 소양이나 외톨이로서의 마음가짐 등을 전수해줄 수는 있어도, 유감스럽게도 친구 만들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 등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쪽을 바란다 한들 별 도움은 안되겠지.
루미쪽이 내게 프로그램이라고 그런 것들을 알려줄 땐 본인의 경험이나 지식이랄까 거의 희망사항에 가까워서, 본인의 지식을 본인의 상황에는 적용을 못 시킨다. 물론 아까 말했다시피 나도 그런 곳에선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나도 인간관계에 대해선 희망사항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희망사항을 말한 적은 없지만.
과연 내가 인간관계의 희망사항을 적나라하게 전수한다면 루미가 어떤 눈으로 나를 볼 지 무섭다.
경멸하는 눈빛으로 '죽으면 좋을텐데.'라고 보면 이 아저씨는 정말로 자살해버릴지도 몰라.
"뭐, 언제나 말했듯이 선택지는 두 개다. 타협하고 같이 지내든가, 거절하고 외톨이로 살든가. 나는 강제적으로 후자를 선택해서 살고 있다만, 이것도 나쁘진 않다고."
"어떤 점이?"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소비되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인간 강도가 올라간다. 인간 관찰의 기회가 늘어난다. 등등. 아주 많지."
"……하아."
루미가 한숨을 쉰다.
너무 노골적으로 바보같다는 표정을 그렇게 지어버리면 돌려줄 말이 곤란하다.
외톨이의 좋은 점은 앞으로도 105개는 더 있는데.
"……그보다, 하치만. 우리 만난 지 벌써 1년이 넘었잖아."
"그렇네."
새삼스럽지만 그렇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만난 건 당연히 아니었다.
1년하고 조금 전. 고교 데뷔를 할 생각으로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에서 나왔던 그 날.
기운차게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던 내 애마에 모퉁이를 돌던 루미가 부딪히면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하진 않았고, 넘어질 때 도로에 긁혀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지만, 당시에 나는 쓸데없이 크게 당황했었다.
오히려 루미 쪽이 차분하게 근처의 편의점에서 밴드를 사오라고 시킬 정도였다.
그런 다음은 뭐, 근처 공원에서 처치를 하고, 무슨 기운으로 그랬는지, 루미와 아침에 일찍 나온 이유 등등에 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입학식에 늦고 생각하던 고교 데뷔를 실패, 그대로 외톨이 일직선이 되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전개다.
그 뒤로 재차 만난 루미와 여차저차한 흐름을 통해 이런 모양새로 매주 만나는 게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 때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뭐,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1년이 넘었어."
"그래."
"……1년이 넘었다구."
"아니, 마치 사귄 지 1년이 되는 기념일을 그냥 지나친 남자친구를 책망하는 듯 한 눈빛과 말투는 그만둬."
"……너무해."
뭐가 너무해, 냐.
분명 무언가를 해줄 의리도, 의무도, 그럴 의지도 없었는데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니 무언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이 생겨나고 있다.
이게 바로 세간의 남자친구라는 종족이 언제나 느끼고 있는 감정인가.
존경한다고, 정말로.
"하치만이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에 뭔가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아예 신경도 안 쓸 줄은 몰랐어."
"그, 그러냐."
"분명 기념일을 잘 챙겨야 한다고 프로그램에서 말했는데."
"……."
"너무해."
항상 리얼충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리얼충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오르고 있다.
매일 같이 이런, 불합리한 반응과 싸우며 이성친구를 사귀는 리얼충들은 정말 대단한 거라고.
차라리 히라츠카 선생님처럼 주먹을 보여주는 게 나을 정도다.
"……."
"……."
루미는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자, 히키가야 하치만. 그 동안의 프로그램 내용을 생각하는 거다.
최적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다, 다음 주에 어디라도 가면 될까요……?"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정답인 줄 알았는데.
"다음 주가 아니라, 주말, 이라고 얘기해야지. 다음 주는 너무 멀어."
"그런거냐……."
수요일은 어차피 소모해야 할 시간. 어떻게든 개인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는데, 전부 꿰뚫어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가 아니라 명확하게 얘기해줘야지. 장소까지 여자보고 결정하라는 건 너무 꼴사나워."
"……그렇군요."
가차없는 루미 선생님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과연 그런 거였군.
"그, 그럼 토요일 12시에 치바 역에서 집합. 이 정도면 괜찮냐?"
"응. 기대할게, 하치만."
아까의 뚱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루미가 말한다.
애보기라고 했던 말은 취소다. 몸은 애여도 역시 머릿속은 여자구나.
무서워라, 무서워.
루미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고, 기분도 좋아보인다.
……토요일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4. 유이가하마 유이는 곤란해 한다.
다음 날인 목요일.
학교 수업에 언제나 충실한 나는 별다른 문제 없이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를 맞이했다.
여기서 학교 수업이란 건, 완전히 버려버린 이과 수업을 제외한 문과 수업만을 말한다.
에에? 방정식 같은 건 사회에 나가서 안 쓰잖아?
……라는 골 빈 말을 하긴 싫지만, 진짜로 안 쓰잖아? 그리고 나는 사립 문과 지망이라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짐을 챙겼다. 챙긴다. 계속 챙긴다.
나는 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는 리얼충(웃음)들을 바라본다.
홈룸이 끝났으면 집에 좀 가라. 통로를 막는 바람에 완전 민폐잖아.
하지만 비키라고 말하면서까지 급하게 부활동을 갈 의지는 없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 도로 앉았다.
절대로 말을 걸기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주변의 소음을 의미로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 넘겨 버리는 히키가야 하치만 외톨이 외법 제 5번째 오의를 발동하고 있었더니, 어느 순간 교실이 조용하게 됐다는 걸 눈치챘다.
이럴 수가. 드디어 오의가 극에 이르러서 주변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시키는 경지에 이르렀나.
나는 내 재능에 놀라면서,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봤다.
당연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각자의 책상에서 짐을 챙기던 일반 학생도, 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리얼충집단들도 뭔가 복도 밖을 보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
내 자리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반 애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뭐가 있는지 보려는 찰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키가야 군. 부활동 시간이야."
"……유키노시타?"
나타난 건 여전히 얼음장 같은 미모를 자랑하는 유키노시타 유키노.
게다가 무려 나를 찾아온 것 같다.
이목이 집중돼서 엄청나게 아프다.
"부, 부활동은 부실에 가 있으면 될텐데……."
"열쇠가 없잖아. 네가 가지고 있지 않니?"
그랬다.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걸 굳이 반까지 찾아올 줄이야.
앞에서 기다리면 될텐데.
이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유키노시타는 하아, 한숨을 쉬더니,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리느니, 반으로 찾아오는 게 훨씬 합리적이야."
그렇게 말했다.
"네가 멋대로 집에 가 버리면 나는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잖아. 연락처도 없고."
"그, 그렇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백 번 옳은 말씀입니다만, 과연, 분위기를 조금 읽어줬으면 좋겠다.
조금쯤은 웅성댈만도 한데, 지금까지 반 내는 완전한 침묵이다. 덕분에 유키노시타와 내 대화는 복도까지 들렸을 것이다.
일단, 벗어나지 않으면.
"빨리 가자고, 그럼."
"그래."
나는 재빨리 가방을 집어들고,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이쪽을 보는 리얼충 집단을 뚫고 복도로 나갔다.
유키노시타는 당당한 태도로 내 뒤를 따라와 복도로 무사히…….
"유키노시타."
나오지 못했다.
"……하야마 군."
유키노시타에게 아는 체를 한 건 하야마 하야토.
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학급 내의 카스트 최고봉에 위치한, 그림으로 그린 듯 한 리얼충이다.
축구부의 에이스이자 차기 부장 후보이면서, 잘 생긴 외모도 외모지만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이름 높고, 게다가 집도 잘 산다고 하는 완벽초인이다. 학급이 아니라 학교 내의 카스트에서 최고봉일 것이다.
유키노시타나 하야마나 둘 다 격이 다른 스펙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서로를 알고는 있었을 것 같은데, 뉘앙스를 보니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야마는 유키노시타를 보고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유키노시타는 단지 이름을 한 번 부르고는 하야마를 무시하고 복도로 나온다. 태도에서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좋다,라는 분위기다. 거절도 무시도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다.
"너……!"
그런 유키노시타를 보고 하야마 패밀리의 여왕 같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미우라 유미코가 화를 내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애들이 말리는 동작에 목소리가 잦아든다.
"가자."
"그, 그래."
유키노시타는 여전히 아무래도 좋다는 초연한 태도로 앞서 걸어간다.
대단하구만, 유키노시타. 나 같으면 공기에 눌려서 압사당했을 레벨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나왔다.
과연 학교 제일의 미소녀. 외모 뿐만 아니라 자아내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뒤를 슬쩍 돌아본다.
모여있던 학생들은 충격에서 회복되고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듯하다.
……한 명을 제외하고.
하야마와 미우라가 있던 집단에서 한 명이 빠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온다.
살짝 탈색된 머리에 짧은 스커트. 단추가 풀려있는 블라우스. 적나라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두 개의 가슴 사이에 빛나는 목걸이.
누가 봐도 전력으로 청춘을 구가하고 있는 여자다.
완전히 현대 여고생의 이미지를 그대로 체현한 것 같은 그녀는 달려오더니,
"저, 저기, 유키노시타양……이지?"
바로 앞에 있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와서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유키노시타에게 용무가 있는 모양이니 나는 달려온 여자애 가슴 언저리에 있는 리본만 뚫어져라 보기로 했다. 으음, 유키노시타와의 이 격차는 괘씸하군.
"……유이가하마 유이양, 이네."
유키노시타는 돌아보고 그녀-유이가하마의 얼굴을 확인하고 명백하게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까 하야마나 미우라에 대한 태도와는 다른, 어딘지 당황하고 있는 태도였다.
"으, 응, 저기……."
"……."
그 뒤로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유이가하마는 머리를 만지작 거리거나, 스커트를 정돈하거나 뭔가 분주하다.
유키노시타는 그런 유이가하마를 어딘지 침착하지 못한 태도로 곁눈질하다가 다른쪽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다.
뭐야, 이녀석들. 발표 차례가 돌아오기 직전의 나냐. 지나가던 애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뒤돌아보니 하야마 패거리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간신히 시야의 영압에서 벗어났나 싶었더니, 다시 사로잡혀 버렸다.
"……."
"……."
이쪽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유이가하마라는 애는 그렇다치고, 아까까지 똑부러지게 말하던 유키노시타도 이상한 모습이다.
……머리 한 구석에서 루미가 나타나서 '하치만, 이럴 때 나서야지,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치는 영상이 재생된다.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어이, 너희들. 뭔가 용건이 있다면, 거기 그렇게 서있지 말고 부실에 가서 하면 어떻겠냐."
"……! 그, 그렇네. 유이가하마 양, 괜찮을까?"
내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했고, 유이가하마는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모이는 시선을 뿌리치는 것처럼, 나는 걸음 속도를 빨리 해 부실로 향했다.
그 사이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무언이어서, 괜시리 압박감이 느껴졌다.
무언인 여자애는 무섭다.
부실은 그저께와 변함없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유키노시타는 그저께와 같이 문 쪽 방향에 앉았고, 그 근처에 유이가하마의 자리도 마련해준다.
나도 자리에 앉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두 명이 얘기하는 자리에 있어봐야 방해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 천천히 얘기해 둬. 마실 것 좀 사올게."
"그래."
"아, 자, 잠깐."
유키노시타가 가볍게 수긍했기에 그대로 나가려는데, 유이가하마의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뭐냐? 마시고 싶은 게 있으면 사다주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같은 반인 히키가야 군…… 맞지?"
"어어, 맞는데."
생각해보니 하야마 패밀리라면 우리 반이겠구나.
나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니, 가능하면 그쪽 방향은 안쳐다보려고 노력하니까 말이야. 누가 있는 지도 잘 모른다고.
목소리가 매번 시끄러운 토 어쩌고 하는 녀석은 알지만. 토베? 토막?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저기, 여긴 무슨 부실이야? 유키노시타 양이랑 히키가야 군이랑 같이 하는 거야?"
목적어를 빼지 마라, 목적어를.
같이 한다고만 하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잖아.
"봉사부야. 그저께부터 시작했어."
"참고로 부장은 나다."
"그, 그렇구나. 봉사부라고 하는구나……. 뭘 하는데?"
당연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에 나는 돌려줄 말이 곤란해 반사적으로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봤다.
유키노시타도 어쩐지 이쪽을 보면서 표정을 짓고 있다.
"어, 그 뭐냐. 뭔가 의뢰를 받으면 그걸 해결하면서, 자력갱생? 을 시도하는 부, 라는데. 자세한 건 아직 모르겠다. 우리도 거의 끌려온 거라."
"……실질적으로 오늘이 첫 날이야. 그저께는 그냥 얘기만 했을 뿐."
"헤에, 뭔가, 재밌어 보이네."
유이가하마가 눈을 빛내면서 말한다.
루미도 그렇고 유이가하마도 그렇고, 뭐가 재밌어 보인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보다 유키노시타에게 용건이 있던 거 아니었냐? 나는 방해 될테니까 빠져줄게."
"어, 아, 아니 잠깐만……. 그, 나는 히키가야 군이 있어도 상관 없는데……."
"엥?"
뭐야, 이거. 얘 나 좋아하나?
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지.
단순히 유키노시타와 둘이 되는 게 거북한 것 같다.
뭐, 그렇겠지. 실제로 소문만큼 차갑지는 않은 것 같다만, 소문으로 들은 유키노시타의 이미지는 굉장하니까.
소문의 유키노시타를 혼자서 상대하다간 얼음 화살 같은 걸 맞고 리타이어 할지도 모른다.
"……유이가하마 양이 괜찮다면, 나는 상관없어."
"그러냐."
그럼 굳이 나갈 필요는 없겠지, 만.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이 하기는 조금 뻘쭘할 것 같고, 아쉽게도 이 부실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중에 뭐라도 가져다 놔야지.
"그럼 조금만 기다려. 음료수라도 사올테니까."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일층에 있는 자판기에서 내 몫의 맥스 커피와 두 사람 용의 카페오레 두 개를 사간다.
용케도 주머니에 돈이 있었서 다행이지, 알아서 분위기를 읽고 멋지게 나왔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간다면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하간 돌아가자.
부실로 돌아가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아까 전의 그 미묘한 침묵 상태 그대로였다.
내외하는 건가, 이 녀석들.
"자, 먹어. 적당히 사왔어."
"아, 고마워."
"잘 마실게."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가 감사 인사를 하고 각자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려는 걸 손사레를 치고, 내 자리에 앉는다.
고작해야 백엔 정도인데, 돈을 안 받는다는 시늉에 둘은 뭔가 미묘하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그렇게 쪼잔해보였나?
"그래서, 무슨 얘긴데?"
맥스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물어본다.
내가 이렇게 말을 꺼내지 않으면, 둘 다 전혀 시작할 것 같지 않으니까.
그보다 그저께는 유키노시타 한 명이었는데, 오늘은 유이가하마까지 세 명.
미소녀 두 명과 함께하는 부활동이라니, 굉장하구만, 나. 이게 바로 인생에 3번밖에 없다는 인기있는 시기, 그거냐.
예전의 나 같았으면 이 시점에서 덜덜 떨고 있겠지만, 지금은 우아하게 맥스커피도 마시면서 달달함을 음미할 여유도 있다.
이게 다 루미루미 선생님의 덕.
"응, 그게, 아하하, 갑자기 말하라구 하니까 조금 그렇네……."
뭔데 저러는 거야?
사랑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유루유리라면 난 대찬성이다만.
"……내가 말할까, 유이가하마 양? 그 일 때문인 것, 맞지?"
"어, 으, 그, 그렇긴한데……. 사실 나도 왜 유키노시타 양을 불러 세웠는지 잘 모르겠어서……."
"……하아."
뭐야, 뭔데 그래?
중요한 키워드는 안나오고 주변만 맴도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답답하다.
그런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유키노시타가 담담히 이야기를 꺼냈다.
"……1년 전. 입학식 날에, 유이가하마 양이 산책시키고 있던 애완견을 우리 집 운전수가 치어버린 사고가 있었어. 당시의 차 안에…… 내가 있었고. 그 개는 안타깝게도……."
"사브레, 라고 하는데, 사고 때문에 죽어버렸어……. 그, 그렇지만 변호사가 와서 다 보상 같은 건 해줬구…… 이제와서 탓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야, 정말로. 1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
그런 일이 있었나.
그래서 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 상대로 저런 미묘한 태도를 하는 건가.
상황만 들어보면 우연한 사고겠지만, 가해자 측의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강하게 나가긴 힘들겠지.
"그, 그런데, 그 때 온 변호사가 '유키노시타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언뜻 들어서. 계속 신경쓰였거든. 그래도 찾아갈 용기는 없구, 뭐라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구……. 근데 오늘 유키노시타 양이 반에 찾아와서 어쩌다 보니 말을 걸게 된 거야. 하, 하하, 좀 이상하지. 나도 뭘 말해야 할 지 아직 모르겠는데. 그냥 이야기가 조금 하고 싶었달까."
유이가하마의 말은 지리멸렬했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는 전해져왔다.
"미안. 유이가하마 양. 생각해보면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
가만히 유이가하마의 말을 듣고 있던 유키노시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퍼져있는 소문만 들어서는 고고하고 자존심이 세서 남한테 절대로 사과같은 건 하지 않을 이미지였기 떄문에 나는 속으로 조금 놀라고 있었다.
유이가하마도 놀라고 있었다.
"아, 아아! 아, 아니야, 사과를 받을 생각으로 말을 건 게 아니야. 정말이야, 유키노시타 양."
"아냐, 사고 직후에 내가 직접 찾아가서 사과했어야 했어. 그런데도 나는 집에만 뒷처리를 모두 맡기고……. 얼마나 한심한지."
입술을 깨물면서 유키노시타는 정말로 지독하게 후회하듯 말을 토해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간관찰력을 마스터한 내가 보기에, 유키노시타는 본인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집'에 모든 처리를 맡겼다는 사실을 더 후회하는 것 같았다.
유이가하마의 말에서도 '유키노시타 가문'이 어쩌고 그랬으니, 본래 좋은 집안 태생이겠지. 나는 좋은 집안 태생에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와 부모 사이에 있을 법한 각종 클리셰적인 문제를 떠올리며 유키노시타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상상해봤다.
"……."
"……."
그 뒤로는 침묵이 있었다.
유이가하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나와 유키노시타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여버렸고, 유키노시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표정으로 그저 교실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상황의 문제점을 재빠르게 깨달았다는 점에서, 이 교실 내에서 가장 커뮤력이 높은 사람은 이 순간, 바로 나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감사를 많이 보내게 되는군요, 루미루미 선생님.
"너희들 그렇게 있어봐야 이야기 진전도 안 될 것 같은데, 다른 날에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떻겠냐?"
"응?"
"어?"
내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둘 다 놀란 소리를 내뱉으며 이쪽으로 얼굴을 홱 돌린다. 조금 무서웠다.
"아, 아니, 둘 다 혼란스러운 것 같은데 일단 진정하고 다시 얘기하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미소녀 두 사람이 강하게 노려보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말을 꺼내기엔 아직 수련이 부족했다.
결국 내가 말을 흐리자, 유키노시타는 한숨을 한차례 내쉬고 나서 피식 웃더니,
"그러는 게 좋겠어, 유이가하마 양. 앞으로 봉사부…… 활동은 한동은안 할 것 같으니 언제라도 부실에 찾아와 줘. 봉사부는 너를 환영할게."
"으, 으응. 오늘은 괜히 미안. 나도 조금 정리가 안 됐는데 무작정 들이닥쳐서 민폐만 끼친 것 같아……. 다음에 다시 올게."
유이가하마가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 망설임과 미안함이 반반씩 섞인 유이가하마의 말은 다년간 '다음부터 잘 하겠습니다', '다음에 연락해', '내일부턴 열심히 해야지' 등의 빈말로 단련된 내가 판단하기에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었다.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로 제대로 이야기해보지도 않은 타인 두 사람이 활동하는 부실에 다시 찾아온다? 게다가 한 명은 불편한 사건으로 엮여있는데다 여러모로 상대하기 힘든 유명인이다. 유이가하마가 아무리 눈치없이 친화력이 높은 여자애라도 그렇게 하긴 힘들겠지.
유키노시타를 흘낏 본다.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당황한터라, 유이가하마의 이러한 속내는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 저기 유키노시타? 이왕 다시 오게 할 거면 의뢰로 하는 게 어떻겠냐?"
""의뢰?""
"그 왜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 한 그거 있잖냐. 타 학생들의 의뢰를 받아서 해결하는 형태로……. 뭐 갱생은 둘째치고 고민상담 같은 거의 일환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만."
"그랬었지. 근데 왜……?"
유이가하마는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이고, 유키노시타는 '왜 유이가하마인데?'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 어차피 무슨 얘기든 진행시킬거고, 옛날 사건 때문에 지금 고민을 품고 있는 건 맞잖냐. 그리고 의뢰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 우리가 합당한 형태로 유이가하마한테 도움을 줄 수가 있지. 유이가하마도 여기 오기 편할거고."
일단 명분과 근거가 생긴다. 유이가하마로서는 아무 이유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것보단 그쪽이 편하겠지. 추가로 아무 활동도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봐야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잔소리만 들을 뿐인데, 그렇다고 의뢰니 갱생이니 하는 활동을 홍보할 생각은 없으니, 봉사부로서도 좋은 기회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눈에 담아 유키노시타를 쳐다봤다. 통해라, 통해라! 하고 속으로 소리쳤는데, 통찰력이 좋은 유키노시타에게 정말로 통했는지, 아차하는 표정을 한차례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유이가하마 양. 봉사부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그런 활동을 해야만 해. 좋은 기회니까 네 이야기를 듣는 걸 의뢰라고 생각할게. 괜찮을까?"
"어? 응, 뭔가 잘 모르겠지만……. 여, 여기 와도 폐라는 건 아닌거지?"
"물론. 네가 가진 고민을 봉사부의 의뢰로서 정식으로 받아들일게. 그리고 해결을 위해서 도움을 줄게. 봉사부로서도,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로서도 말이야."
"……응, 알았어. 유키노시타 양, 그리고 ……히키가야 군. 오늘은 미안해. 오늘 집에 가서 혼자 생각해보고, 내일 다시 와서, 제대로 이야기 할게."
나와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유이가하마는 밝게 웃더니, 다시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갔다.
"……하아. 힘들었어."
유이가하마가 나가자마자 유키노시타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정도냐?"
"한번에 이렇게 오래 대화한 적은 올해 들어서 처……."
처음, 이라고 말하는가 싶더니 유키노시타가 얼굴을 조금 붉히고 휙 나를 노려본다.
그렇구나. 유키노시타 너도 이 봉사부의 일원이었지. 조형적으로 너무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하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다 외톨이끼리의 이해심을 발휘하여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줬다.
"……무슨 의미니."
"아, 아니, 그냥. 아무튼 그 유이가하마 문제다만. 쟨 뭐 어쩌고 싶은거냐?"
"글쎄……. 아마 나를 규탄하려는 게 아닐까."
그건 아니겠지. 유이가하마의 태도는 척 봐도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유키노시타는 본인에게 누가 있어서 그런지, 유이가하마에게 강하게 나가질 못하고 있다.
뭐,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칭찬받아 마땅하다. 나 같으면 얼굴을 마주친 순간에 도망쳤을거다. 아니, 그 이전에 그런 상황이었다면 집에 찾아가서 엎드려 절이라도 했겠지만.
"그건 아닐거다. 정말로 너를 규탄하려고 했던거면 아까 애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얘기하는게 효과가 제일 높으니까 그렇게 했겠지. 가뜩이나 친구도 없고 주위의 시기를 사는데 그런 소문이 퍼지면 일발로 매장시킬 수 있지 않겠냐?"
"너, 생각하는 게 악랄하네.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 아니니?"
유키노시타가 눈을 흘기며 그렇게 말한다. 악랄하기는. 보통이다 보통. 사람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비법이라면 수십가지는 더 댈 수 있다. 이를테면, 반 애들이 전부 숨어서 보는 와중에 가짜 고백을 해서 들뜬 모습을 보이게 한다든가, 러브레터를 신발장에 넣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뿌린다든가, 고백대사를 녹음해서 뿌린다든가…… 아,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내가 소매로 잠시 눈물을 훔치는 동안, 유키노시타는 갑자기 유이가하마에 대한 변론을 하기 시작했다.
"유이가하마 양은 그런 애는 아닌 것 같아. 사건 직후에도 신경이 쓰여서 조금 찾아보기도 했고, 실제로 얘기한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활달하고 배려가 좋고, 치, 친구도 많은 그런 애였어. 설령 나를 규탄하려고 해도 그런 자리에서 할 애는 아니야."
친구가 많다는 얘기를 할 때 왜 더듬었는지 의미불명이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애는 아닌 것 같다.
가슴이 큰 애는 대체적으로 배려가 깊거든. 이거, 토막상식이다.
자연스레 유키노시타의 가슴쪽으로 시선이 갔지만, 나는 그녀의 명예를 위해 여기에 언급하는 것을 피하겠다. 아, 아까 말했던가.
"그러니까 규탄이고 뭐고, 그냥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온 거 아닌가 싶은데."
"나랑?"
"나랑은 아니겠지."
설마하니 유이가하마가 평소 교실에서도 외톨이인 나를 눈여겨 보고 호감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유키노시타와 같이 있길래 사건을 핑계로 여기 올 핑계를 만들었다거나 하는 건 아닐거다. 응, 100% 확실히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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