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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 14일

칼리리 2017. 5. 15. 01:04



 - 2017년 5월 14일



 오늘도 늦은 시간이다.

 

 "그나저나, 누구로 하지?"
 "응?"

 "윤의 히로인 5명 말이야. 예전에 썼던 초안에는 소꿉친구랑 결혼을 하고 공주가 남은 걸로 했는데, 지금은 공주랑 결혼을 했다고 써버렸으니 어떻게 해야하지."
 "……평범하게 고르면 되지않아?"

 

 신리가 조용히 말한다.

 평범하게라. 

 나는 히로인의 속성을 생각해낸다. 대표적이고, 아주 유명한. 

 지금 쓰는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어쨌든 윤과 그 히로인의 이야기는 이능력 배틀물에 가까우니까 그에 어울리는 히로인상을 생각해본다.

 뭐가있지?



 [


 축복과 비애로 가득한 결혼식이 끝난 지 세 달정도 지났을 무렵.

 그 모든 감정들의 당사자인 윤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내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팔자도 좋은 녀석."

 "그게 내 장점이지."


 자칫하다간 여자로 오인받을 정도로 곱상한 윤의 얼굴이지만, 지금은 햇볕에 적당히 잘 태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남성도가 높아 보인다.

 조금만 거리를 띄우고 보면 어딘가에서 유행했던 갸루화장을 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미묘한 모습이기도 하다.

 

 "뭐,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보다 여행은 어땠어? 어딘가 휴양지로 갔댔나."

 

 괌이라든가, 사이판이라든가, 뭐 등등. 

 나는 생각나는 휴양지의 이름을 되는대로 내뱉었다.

 윤은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아, 응, 사실 리리의 집에 조금."

 "집?"


 신혼여행에 무슨 집? 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리리, 그러니까 얼마 전 윤의 아내가 된 그녀석의 집을 윤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나는 집어먹던 닭튀김을 떨어뜨렸다.

 리리는 이세계에서 날아와 윤과 엮인 공주님이다.

 당연하겠지만, 그녀석의 집은 이세계의 어느 왕궁이다. 


 "그 동네를 간 거냐? 또?"

 "무슨 지옥에라도 갔다온 것처럼 반응하는거 그만해줄래? 리리녀석이 정말 아름다운 장소가 있대서 다녀왔어. 집도 들리고. 폐하께 인사도 드리고……."

 "허."


 그 고생을 하고 다시 거기에 갈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운 장소라고 해도 그렇지.

 

 "괜찮았어, 의외로. 이야, 역시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 다르다니까."

 "그러십니까."

 

 그러고선 윤은 한창을 자신이 봤던 풍경에 대해 얘기를 했다. 요정들이 쉬어가는 온천, 인어가 사는 바다, 용이 잠자는 폭포.

 잔을 비우면서 정말로 밝고, 즐겁고, 행복하게 리리와 다녔던 장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윤을 보고, 나는 지금도 실의에 빠져서 집에 틀어박혀 있을 몇몇 녀석들을 떠올렸다.

 이 행복한 자식은 그녀석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지 알기나 하는 걸까.

 갑자기 눈 앞의 곱상한 얼굴을 한 대 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지만, 세계를 몇 번이나 구한 영웅인 윤에게 나 따위가 때려봐야 간지럽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한대라도 맞았을 경우 원형도 남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참아야지.


 "그래서, 오늘 부른 이유는 뭐냐. 여행과 마누라 자랑을 하러 부른 건 아닐테고."

 "아아……. 역시 그냥은 안넘어가네."

 "당연하지. 


 윤은 잔을 들이키고, 천장을 보고 한숨을 한 번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드디어 결심을 했는지 헛기침을 한 끝에야 내게 말을 꺼냈다.


 "오늘 이렇게 불러낸 건,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부탁?"

 "그래. 그 전에. ……다른 애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그걸 나한테 물어보냐."


 설마 싶었던 대사가 나오니, 자연히 어조가 강해졌다. 

 쏘아붙이듯 내뱉은 내 말에 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애들한텐 미안하지만, 난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상황은 다 같이 괴로울 뿐이야. 너도 알잖아?"

 "……."


 알긴 뭘 알아. 내가 아는 건 결혼식이 끝나고 윤녀석이 행복한 얼굴로 떠나갈 때 뒤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녀석들의 모습뿐이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그런 상냥한 거짓말 같은 상황이 왜 나쁜 건지, 그렇게 진실된 것을 찾아서 떠난 결과가 이런 것에 대해 느끼는 건 없는지, 윤과 셀 수 없이 얘기했고, 결론 같은 건 나지 않은 채 윤의 결혼은 진행돼버렸다.

 그걸 이제와서 '너도 알잖아?'라고 자못 당연하듯 동의를 구하면 화가 치솟을 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 그 애들을 부탁해."
 "뭐?"

 

 잠시 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바보같이 되물었다.

 누가 누구에게 누굴 부탁한다고?


 "그 애들을 부탁할게. 너 말고 부탁할 사람이 없어."

 "그니까!"


 나는 테이블을 치며, 기어코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윤이 그런 나를 식은 눈으로 보고 있다.


 "……대체 뭘, 나한테 부탁한다는 거야. 그녀석들이 실의에 빠져서 반 송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해결하라고? 아니면 내가 그녀석들에게 너를 대체할 무언가가 되라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네가 리리랑 헤어져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헛된 믿음을 주면 될까? 


 쏟아낸 내 말에 윤은 고개를 가만히 젓고,


 "옆에 있어줘."


 그렇게만 말했다.


 "넌 그 애들을 나 이상으로 많이 봐 온 사람이잖아. 다른 누구도 못하는 일이야. 너만, 너만이 할 수 있고, 너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일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
 

 내가 옆에 있어 준다고 뭔가가 바뀔까? 그녀석들이 예전같은 웃음을 되찾을까? 다시 생기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난 아무 것도 못 해. 윤, 네가 하면 되잖아.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하라고."

 "그건 안돼. 문제가 더 악화될 뿐이야."
  

 '난 앞으로 그 애들을 만나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면서 윤은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게 내 선택의 결과고, 내 결심이야.”

 "그것 참 제멋대로인 결심이군."

 "미안해."

 "알면 그런 부탁은 하지말라고."
 "그것도 미안."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차라리 윤이 자신이 버린 여자를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나쁜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한바탕 욕이나 해주고 뛰쳐나갔으면 됐을텐데.

 윤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이 버린 여자애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날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그냥 옆에 있어줘. 얘기를 나눠줬으면 좋겠어. 만나서, 내 욕이라도 실컷 같이 해줘."

 "4명……아니, 5명 모두에게, 그렇게 하란 소리냐."

 

 가장 오랫동안 윤을 봐왔던 소꿉친구.

 윤의 옆에서 마왕과 싸웠던 전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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