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 2016년 10월 23일

칼리리 2016. 10. 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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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떠한 일에 휘말리는 건 딱 질색이다.

 물론, 그런 일을 좋아할만한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조금 강하게 '없다.'라고 단언해도, 많이 틀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이어도 일상 생활에서 여러가지 불합리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는 많고, 조금 더 나아가면 남들은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을 여러 번 연속해서 겪는 사람도 드물게 있다. 대개 그런 사람은 본인이 누군가의 환생이라거나, 삼백년에 한 번씩 부활하는 마왕을 물리칠 용사로 선택됐다거나,  갑자기 집 안에 이름 모를 미소녀가 소환됐다거나 하는 등의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건에 휘말리곤 하는데, 나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욱 부조리하고, 모든 일에 하나하나 이유가 달려있지는 않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그냥, 어쩌다보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내가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한 달 간 겪은 일도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다.


 때는 4월 1일. 쌀쌀하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완연히 다가온 봄에게 자리를 내주던 한 때였다. 

 세상이 만우절 장난으로 바쁠 그 무렵, 나는 모처럼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을 즐기며 자취방 안에서 빈둥거리면서 보내고 있었다. 

 바로 전날까지 개인적인 일로 무척 바빴기 때문에, 오랜만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가진 것은 굉장히 기뻤다. 느지막히 일어나 여유롭게 밥을 차려먹고, 유유자적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내키면 낮잠을 자는, 그런 하루를 보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무언가를 해야하는 의무감이 들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소중하다.

 세간에서는 아무런 걱정 없는 마음 편한 대학생으로 여겨지지만, 모든 대학생이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객관적으로 봐서 속편한 시기라고는 생각한다. 대학에 처음 입학한 설렘은 이미 없어졌고, 아직은 취업이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시기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 평소엔 면학에 힘쓰며 내키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책과 음악을 탐닉하는 데 인생의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가 지인의 일을 조금 도와주는 그런 생활을, 나는 보내고 있었다.

 이 지인의 일이라는 건 조금 특수한 일이라서, 평소에 겪어보지 못하는 일을 다량으로 겪게 된다. 모험과 스릴을 즐긴다면, 이만한 일도 없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러한 일들은 책 속에서만 즐기는 타입이라 마냥 즐길 수만 있는 경험은 아니다. 

 지금은 거의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상황인데도, 처음엔 의지와 상관없이 휘말렸던 터라 아직 이유 없는 불편함이 들 때가 있다. 지인은 굉장히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그 지인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 상대하기가 피곤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런 지인의 일을 요전날까지 바쁘게 도와줬기 때문에, 뭐가됐든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누가 불러도 오늘은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전력으로 아무 일도 안하고 있던 시간에, 그 '현상'이 일어났다.

 무거운 몸을 붙잡고 이불에서 벗어나 일어나려던 그 순간, 주위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에, 동시에 속도 메스꺼워졌다. 이유도 없이 지진인가?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시야가 암전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호숫가에 와있었다.

 본 기억이 있는 호숫가다. 

 지난 한 달 몇 번이고 찾아온 호수다. 몰라볼 수가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와중에, 습관처럼 시계부터 확인했다.

 시계에는 이틀 전의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루프'가 루프하는 이야기라니. 조금 웃긴데."
 "웃지마. 심각한 이야기니까."

 

 4월 1일부터 시작된 그 현상은, 그 뒤로도 꾸준히, 비정기적으로 이어졌다.

 어느 때는 반복된 이틀이 끝나자마자, 연속으로 일어나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일주일 동안 잠잠한 적도 있었다.

 반복되는 현상에 지친 나는 상담을 위해 '린치'를 찾았다.

 린치는 말 그대로의 폭력행위도 아니고, 과격한 이름의 수상한 가게도 아닌, 꽃다운 나이의 여고생이다. 원래부터 넷 상에서 알던 지인으로, 일전에 있었던 일로 실제로 보게 된 이후에도 자주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린치'는 그녀의 닉네임으로, 꽤나 과격한 이름인데, 정작 당사자는 뜻은 모른 채 어감이 좋아서 썼다고 한다. 바보같은 에피소드라서 그런지, 본인도 부끄러워하지만, 여전히 닉네임은 그걸로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루프'는 내 닉네임이다.

 서로 본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만날 때마다 닉네임을 부르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루프능력에 눈을 뜬 거야?"

 

 린치가 숨죽여 웃다가, 조그맣게 그렇게 물어본다.

 

 "그럴리가 없잖아. 덕분에 호수에서 일처리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고."

 "그거 고생했겠네. 호수의 일은 윤한테 들었어."

 "들었으면 그걸 반복했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거라고 생각해."

 "물론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그러니까 더욱 재밌는걸."

 

 가벼운 웃음을 띄며 린치가 말한다.

 그 웃음을 보니 린치에게 상담을 한 건 옳았다고 생각했다.

 

 "윤에게는? 말했어?"

 "아니. 네가 처음이야."

 "고마워. 나를 신뢰하는구나?"

 "그런 것보다, 너라면 얘기를 가볍게 들어줄 것 같았어. 윤에게 상담하면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으니."

 "그렇구나."


 린치가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대화로만 봐도, 이야기를 가볍게 들어준다는 점에선 린치를 택한 건 정답이었다. 다만, 지나치게 가볍게 들어주는 탓에 제대로 상담이 될지는 의문이다.

 린치는 즐거운 것, 재밌어 보이는 것을 성실하게 탐닉한다. 원리원칙을 따지는 쾌락주의자라고 표현하면 린치의 대부분을 올바르게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녀 본인이 '재밌다.'라고 생각하는 건, 그녀가 설정한 기준에만 벗어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개입해, 상황을 즐긴다. 그녀는 설정해둔 기준은 반드시 지킨다. 그 기계적인 철두철미함과 그녀가 원하는 것에 대한 외곯수적인 성격은 그녀를 구성하는 큰 줄기다. 


 "루프……, 라고 하면 조금 헷갈리니까 리셋이라고 하자. 리셋이 일어나면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맞아. 당연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는 상태야."

 "다른 사람들, 이라는 건 주변 사람들 얘기지?"

 "응."
 "그리고, 현상이 일어나는 건 불규칙적이다…….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 짚이는 건?"

 "전혀."

 윤의 일로 호수에서 고생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근래에 특이한 일은 없었다. 윤의 일은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조금 생각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렇게 됐으면, 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모를 것 같진 않았다.

 

 "흐음, 좀 재밌어 보이는걸.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상에 대한 원인 파악을 하는데 도움을. 가능하면 해결책도."

 "지금으로선 무리야."

 "그렇겠지. 앞으로 도와달란 얘기였어."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린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린치. 내가 만약 이 대화도 이미 한 번 반복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래?"

 "응, 그럴 수도 있겠네. 본인 말고는 기억을 못하는 상황이니까."


 린치는 고개를 조금 갸웃하더니, 이내 내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내 눈 앞에 네가 지금 있는 게 증거야. 만약 반복하기 전에 내가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나와 이렇게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테고, 제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네 입장에선 굳이 멀리 돌아가는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었겠지. 내가 도움이 안됐다면, 나한테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을테고."

 "도움을 구한다는 건 핑계고 그냥 같이 있고 싶었다고 말하면?"

 

 넌지시 그렇게 말해본다. 린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으며,


 "그렇다면…… 조금 기쁜걸. 전력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지는데."

 "꼭 그렇게 해줘. 아무 전조도 없이 이틀 전으로 날아가는 건 정말로 사양이야."

 "좋은 쪽으로 이용하면 되잖아? 복권 번호를 기억한다든지, 주식을 한다든지."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고, 그다지 과거를 바꾸고 싶지 않아."


 이건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