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9월 17일
3. 츠루미 루미는 언제나 한숨을 쉰다.
사전에 협의가 되었기 때문인지 수요일인 오늘, 간수 더 히라츠카가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일은 없었다.
유키노시타에게도 어제 말해놨으니, 오늘은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애초에 그 교실 열쇠는 나한테 있으니 들어갈 수도 없겠지만.
여느 때 같으면 집으로 곧장 직행해서 책이라도 읽겠으나 아쉽게도 수요일은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이른바 히키가야 하치만 갱생 프로그램.
[썩은 눈 소유자]로 삼천세계에 드높은 이름을 가진 나, 히키가야 하치만을 명석하고 아름다운 미소녀가 갱생시켜 구제한다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이다.
시작할즈음에는 그런 기치를 내 건적도 있지만, 실상은 외로움을 잘 타고 친구를 사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 뿐이다.
후자 쪽이 훨씬 수상쩍어 보이는 건 분명 착각이겠지.
"늦어. 하치만."
"홈룸 끝나자마자 뛰어온 거라고. 도대체 난 얼마나 빨리 와야 하는 거냐."
"나보다 일찍 올 정도는 되어야,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있잖아."
"아니, 무리겠지."
보통으로 무리다. 고등학교 얕보지 말라고. 초등학교보다 훨씬 귀찮은 게 많단 말이다.
뭐, 그래도 언제나 기다리게 하는 건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한 번 학교라도 땡땡이를 쳐서 놀라게 해주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만큼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언제나의 대화를 주고 받고, 나는 루미 옆에 앉았다.
츠루미 루미.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애지만, 찰랑 거리는 흑발이나 단정한 얼굴에 그 똑부러진 성격을 보면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소녀다. 미소녀라고 하기엔 내 기준으로는 조금 나이가 어리니, 초등학생은 역시 최고야! 라고만 말해두자.
"……뭔가, 눈빛이 기분 나빠."
"그거 미안하네. 썩은 눈빛이라."
"벼, 별로 썩은 눈빛이라고 하진 않았어. 그, 그냥 기분 나쁘다고 했을 뿐."
"그게 평범하게 더 상처 받습니다만……."
내 말에 후후, 하고 루미가 웃는다. 어린애 주제에 뭔가 묘하게 침착한 웃음 방법이구나- 라고 언제나 생각하곤 한다.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꺄하하하하- 같이 웃으면 된다.
고등학생이나 돼서는 교실에서 그렇게 웃어제껴서 뭇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녀만 안되면 되니까.
"하치만. 오늘은 뭘 할 거야?"
"잔다."
"그런 거 말고."
"뭘 할 지 생각하는 건 네 몫이겠지. 선생님이잖냐."
"그, 그렇네."
내 말에 루미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뭔가 언제나 루미의 고민 상담 같은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시작은 항상 주제가 있다.
이를테면, 여자애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법이라든가, 여자애와 대화하는 법이라든가, 친구를 만드는 법이라든가 등등.
어쨌든 그런 걸 1년이 넘도록 지속했으니, 슬슬 주제가 떨어질 때도 됐다.
"가르칠 게 없다면 슬슬 졸업하고 싶은데요. 선생님."
"아……."
농담삼아 그렇게 말해봤더니, 엄청나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어이, 농담이다, 농담.
울어버리면 그걸로 경찰서 직행이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인기척이 드문 공원이라, 보이는 것 만으로도 위험한 수준인데.
"아, 아아,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졸업하려면 멀은 것 같네. 적어도 여자친구 정돈 만들어야, 번듯하게 졸업할 수 있겠지, 응."
"……바보. 여자친구따위 만들 수 있을리가 없잖아."
"너, 그렇게 나를 자꾸 무시하는데, 들어봐라. 최근의 나는 굉장하다고. 무려 학교 제일의 미소녀와 둘이서 부활동을 하는 초 리얼충적인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굉장하지?"
그 상황이 타의 100%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나도 조금은 즐거워하고 있었을텐데.
"또 거짓말. 하치만은 맨날 거짓말만 해."
"아니, 진짜라니까. 내 눈을 봐봐. 거짓말을 하는 것 같냐?"
"……기분 나빠서 잘 모르겠는데."
"야야, 너 그거 자꾸 들으면 무뎌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많이 들은 말이어도 상처받거든?"
정말이다. 동급생 여자애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기분 나빠…….'라고 하면 다시는 교실에 안 나갈 자신이 있을 정도로 상처 받는다.
그거, 대놓고 들으면 엄청나게 아프다고.
"……거짓말 아냐?"
"그렇다니까. '봉사부'라는 의미불명의 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학교 제일의 미소녀랑?"
"그래. 그러고보니 그런 애랑 대화하는 데 잘도 긴장 안하고 멀쩡히 대화했구만. 보통 때 같았으면 처음 인사부터 혀를 씹는 바람에 부끄러워져서 도망쳤을 레벨의 미소녀였는데."
정말로 프로그램의 승리인가.
루미쨩 대승리!
"흐응, 그, 그렇구나. 많이 예쁜 사람이었어?"
"그렇네. 아무튼 본 것 만으로 반해버릴 정도의 미모였지, 그건. 길에서 지나가면 열 명 중 열 두 명은 돌아볼 정도다."
"……두 명은 뭐야."
"다들 돌아보니 뭔지 싶어서 같이 돌아보는 사람들."
"그, 그럼 많이 바빠지겠네?"
루미가 묘하게 침울해진 어조로 말한다.
알기 쉬운 녀석이구만, 정말로.
이 나이대의 여자애치고는 정말 알기 쉽다. 분위기 읽기 능력 검정에서 탈락한 나도 츠루미 루미 검정 시험이 있다면 2급 정도는 여유로 딸 수 있을 것 같다.
"뭐, 바쁠지 어떨지는 몰라도 앞으로 집으로 바로 가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
대놓고 침울해 하고 있다.
울기 전에 달래줘야지.
"그래도 수요일은 다른 용무 때문에 뺀다고 말해 놨으니 안 할 것 같다만."
"다른 용무?"
루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되묻는다.
다른 용무 = 이 시간, 이라는 발상이 어려운가.
"지금 말이야, 지금. 그러니까 그렇게 침울해할 거 없다고."
"아……. 으읏, 어린애 취급은 그만해!"
그제서야 깨달은 루미의 머리를 대 코마치 사양으로 쓰다듬어 주니 내 손을 막으며 반발한다.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 대 코마치 버젼 히키가야 하치만을 거부하다니.
배가 부른 녀석이구만.
"아무튼, 1년 동안 이렇게 떠들어 댄 보람은 있는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의외로 여자애하고 평범히 얘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초가 붙을 정도의 하이레벨 미소녀랑.
이제와서지만, 오늘 그게 올해 들어서 가족과 선생님, 그리고 루미를 제외한 여자애와의 첫 대화였다는 걸 깨달았다.
"도움이 된 걸까?"
"조금은."
"그런가……. 하치만. 무슨 부라고 했는지 다시 알려줘."
"봉사부. 문제아를 갱생시키는 부라는 것 같고, 무려 부장은 나로 되어있다만, 나도 잘 몰라. 첫 날인 어제는 아까 말한 그 여자애…… 유키노시타와 떠들기만 했었고."
"……뭔가, 즐거워 보이는 활동같아."
"아직 제대로 시작도 뭣도 안했다만."
애초에 뭘 어떻게 누구에게 봉사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학교는 별로 재미없어."
루미가 툭 내던지듯 그렇게 말했다.
"그런 활동을 하면 조금은 학교가 즐거워질까?"
"글쎄. 나는 너보다 몇 년은 더 학교를 더 다녔지만, 그런 걸 한다고 재미없는 게 바뀌진 않을걸."
"애들이 바보같은 건, 중학교를 가면 조금 나아질까?"
"전혀. 고등학교도 똑같다. 간 적은 없지만, 대학교도 똑같을 거고,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을 걸."
"우울한 이야기네."
"정말이다."
어느샌가 또 루미의 고민상담 교실이 되어버렸지만, 이것도 언제나의 일이다.
루미는 다른 애들보다 조금 조숙한 탓인지, 교실 내에서 관계가 잘 맞물리지 못하는 것 같아 언제나 내게 그런 얘기를 해온다.
물론, 프로 외톨이로서 외톨이의 소양이나 외톨이로서의 마음가짐 등을 전수해줄 수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친구 만들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 등은 내게 너무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다.
루미가 내게 프로그램이랍시고 그런 것들을 알려줄 땐 본인의 경험이나 지식이랄까 거의 희망사항을 알려주는 정도지만, 과연 내가 인간관계의 희망사항을 적나라하게 전수한다면 루미가 어떤 눈으로 나를 볼 지 무섭다.
경멸하는 눈빛으로 '죽으면 좋을텐데.'라고 보면 이 아저씨는 정말로 자살해버릴지도 몰라.
"뭐, 언제나 말했듯이 선택지는 두 개다. 타협하고 같이 지내든가, 거절하고 외톨이로 살든가. 나는 강제적으로 후자를 선택해서 살고 있다만, 이것도 나쁘진 않다고."
"어떤 점이?"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소비되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인간 강도가 올라간다. 인간 관찰의 기회가 늘어난다. 등등. 아주 많지."
"……하아."
루미가 한숨을 쉰다.
너무 노골적으로 바보같다는 표정을 그렇게 지어버리면 돌려줄 말이 곤란하다.
외톨이의 좋은 점은 앞으로도 105개는 더 있는데.
"……그보다, 하치만. 우리 만난 지 벌써 1년이 넘었잖아."
"그렇네."
새삼스럽지만 그렇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만난 건 당연히 아니었다.
1년하고 조금 전. 고교 데뷔를 할 생각으로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에서 나왔던 그 날.
기운차게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던 내 애마에 모퉁이를 돌던 루미가 부딪히면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됐다.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하진 않았고, 넘어질 때 도로에 긁혀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지만, 당시에 나는 쓸데없이 크게 당황했었다.
오히려 루미 쪽이 차분하게 근처의 편의점에서 밴드를 사오라고 시킬 정도였다.
그런 다음은 뭐, 근처 공원에서 처치를 하고, 무슨 기운으로 그랬는지, 루미와 아침에 일찍 나온 이유 등등에 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입학식에 늦고 생각하던 고교 데뷔를 실패, 그대로 외톨이 일직선이 되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전개다.
그 뒤로 재차 만난 루미와 여차저차한 흐름을 통해 이런 모양새로 매주 만나는 게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 때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뭐,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1년이 넘었어."
"그래."
"……1년이 넘었다구."
"아니, 마치 사귄 지 1년이 되는 기념일을 그냥 지나친 남자친구를 책망하는 듯 한 눈빛과 말투는 그만둬."
"……너무해."
뭐가 너무해, 냐.
분명 무언가를 해줄 의리도, 의무도, 그럴 의지도 없었는데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니 무언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이 생겨나고 있다.
이게 바로 세간의 남자친구라는 종족이 언제나 느끼고 있는 감정인가.
존경한다고, 정말로.
"하치만이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에 뭔가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아예 신경도 안 쓸 줄은 몰랐어."
"그, 그러냐."
"분명 기념일을 잘 챙겨야 한다고 프로그램에서 말했는데."
"……."
"너무해."
항상 리얼충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리얼충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오르고 있다.
매일 같이 이런, 불합리한 반응과 싸우며 이성친구를 사귀는 리얼충들은 정말 대단한 거라고.
차라리 히라츠카 선생님처럼 주먹을 보여주는 게 나을 정도다.
"……."
"……."
루미는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자, 히키가야 하치만. 그 동안의 프로그램 내용을 생각하는 거다.
최적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다, 다음 주에 어디라도 가면 될까요……?"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정답인 줄 알았는데.
"다음 주가 아니라, 주말, 이라고 얘기해야지. 다음 주는 너무 멀어."
"그런거냐……."
수요일은 어차피 소모해야 할 시간. 어떻게든 개인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는데, 전부 꿰뚫어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가 아니라 명확하게 얘기해줘야지. 장소까지 여자보고 결정하라는 건 너무 꼴사나워."
"……그렇군요."
가차없는 루미 선생님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과연 그런 거였군.
"그, 그럼 토요일 12시에 치바 역에서 집합. 이 정도면 괜찮냐?"
"응. 기대할게, 하치만."
아까의 뚱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루미가 말한다.
애보기라고 했던 말은 취소다. 몸은 애여도 역시 머릿속은 여자구나.
무서워라, 무서워.
루미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고, 기분도 좋아보인다.
……토요일이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