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 2017년 11월 12일

칼리리 2017. 11. 12. 22:25



 1. 



 "당신은 일주일 뒤에 죽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맥락도 없이 그런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방 중앙에 천사가 있었다.

 성스러운, 정말로 성스럽고 화사한 빛과 함께, 머리에는 불가사의한 빛을 내뿜는 원형의 고리, 견갑골에서 자라난 새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날개. 어쩐지 머리카락은 먹빛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흰색의 소박한 원피스나 흰 피부와 대조되어 멋져보이는, 그런 천사였다.


 "뭐?"

 

 천사의 등장에 깜짝 놀란 내가 되묻자, 천사는 그런 나를 보더니 해사한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당신은, 일주일 뒤에, 죽습니다."
 "어째서?"

 "천계의 결정입니다. 당신의 수명은 앞으로 정확히 6일 15시간 11분 뒤에 끝이 납니다."
 

 성스러운 빛과 함께 나타난 날개 달린 천사가 내리는 죽음의 선고. 차고 넘칠 정도의 신뢰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믿기 힘든 이야기임에도, 나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절망했다. 6일 15시간이라니. 

 

 "……당신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불합리하겠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죽는다니. 저를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천사는 안타깝다는 기색을 띄며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 위안의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렸던걸까. 

 사실 나한테는 죽는다는 사실보다는, 6일 뒤에 죽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지난 세월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 군대, 그리고 복학한 뒤 현재.  

 ……그리고 나는, 머리 어딘가의 신경이 뚝, 하는 소리가 나며 끊어지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

 

 "6일! 6일이라고!? 6일?"

 "네? 앗, 네."


 내가 갑자기 소리를 치자, 천사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따뜻해 보이는 날개가 절반정도 움츠러들었다.

 

 "수명이 6일 남았다고? 다음 주에 있는 조별 과제 발표는 어떻게 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준비한 발표인데! 게다가 열흘 뒤에 있는 자격증 시험은? 1년 동안 준비한 시험이란 말이야!"

 "네, 네?"


 천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하필이면 6일 뒤라니. 시험도 보기 전에 죽어버리려고 나는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던가. 게다가 점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준비했던 조별 과제는 또 어떻고. 조원들이 눈물나게 비협조적이어서 나는 과제 대다수를 혼자 처리해야 했다. 발표까지 내가 하면서 이 과제는 제가 다 했습니다, 라고 소소하게 복수 할 예정이었는데 죽어버리면 그녀석들만 좋은 일이 아닌가. 아직 죽지도 않았지만,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원한이 하늘까지 사무쳐 당장이라도 구천을 떠돌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당신의 수명이 6일 남았다는 건 즉, 당신이 6일 뒤에 죽는다는 겁니다. 시험이니 과제니 신경 쓸 이유가 있나요?"

 "당연하지. 죽을 땐 죽더라도 지난 날의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심리잖아."

 "그런가요?"

 "그래. 그래서 사인은 뭔데."

 

 내가 노려보자 천사는 눈을 슬쩍 옆으로 피했다. 


 "죄송합니다. 사인에 대한 건 금지사항이에요."

 "아, 그래. ……이제와서 물어보지만 넌 진짜 천사고, 수명이 6일 남았다는 것도 사실이지?"

 "물론입니다."


 천사는 어딘가 뽐내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탓인지 아까 움츠러든 날개도 다시 늘어나서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런 천사를 시큰둥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그 말이 진짜니까 당연히 시험이니 과제니 하는 걸 신경 쓸 수 밖에 없지. 어차피 죽을거면 보람차게 일을 해치우고 난 뒤에 죽어도 상관없잖아?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것들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너무 억울하다고."

 "그런 문제인가요?"

 "그런 문제야! 한 일주일만 수명이 늘어도, 마음 편히 죽을 수 있을텐데."

 "미안합니다만, 그런 건 불가능해요."

 

 표정은 전혀 미안해보이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내뱉은 말인데, 어쩔 수 없나. 


 "아, 아니면 그건가. 내가 남은 일주일동안 뭔가 조건을 만족시키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든가? 깨달음을 얻으면 되는건가?"

 "아니에요."

 "그럼 이건 어때. 일주일동안 나를 감시할 의무에 처한 너와 내가 사랑에 빠져서 불쌍히 여긴 신이 내 수명이 늘어나게 하는 거야. 괜찮은 전개 아냐?"

 "당연하지만, 그럴 예정은 전혀 없어요."


 온 몸에서 느껴지는 단호한 태도였다.


 "신도 너무하시지."

 "원래 그렇답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런 방도도 방책도 없이 일주일 뒤에 완벽하게 죽어버린다는 소린가. 1년 동안 준비해온 시험은 치지도 못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겨우 완성시킨 조별 과제는 발표도 못한 채 조원들이 날름 먹어치울테고, 조원이 죽었다는 핑계로 동정표를 사서 그녀석들은 A+를 받겠지……. 아아, 억울하다, 억울해. 억울해서 죽을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약 10분 정도를 소비해서, 무정한 신과 세상, 조별 과제 따위를 내 준 교수로의 욕을 포함해, 온갖 짜증과 억울함과 허망함을 쏟아냈고, 천사는 그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그래. 이제 일주일동안 뭘 하면서 지낼지 생각해 봐야겠어."

 "……정말. 신기하네요."

 "뭐가?"

 "이상할정도로 차분해요.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혹시 죽음을 예견하셨나요?"

 

 천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물어왔다. 귀엽기짝이 없는 동작에 인간같지 않은 아름다운 조형이 어우러지니 그것만으로도 그림이 됐다. 물론, 질문은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는 질문이다.


 "그딴 걸 미리 알았으면, 내가 제대로 놀지도 않고 공부를 했을리가 없고, 조별 과제 따위는 일찌감치 때려쳤겠지. 생각을 좀 하고 질문을 하자."

 "……."


 한차례 쏘아줬더니, 천사는 울컥한 얼굴을 하고는 입 안으로 뭐라고 궁시렁거렸다.

 그런 천사를 보면서, 나는 이제서야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애초에, 왜 천사 같은 게 죽음의 선고를 하는 거야? 사신이나 악마는 뭐하고?"

 "……사신이나 악마는 다 인간이 생각해낸 공상의 산물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요."

 

 퉁명스러운 어조로 천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세상에는 신과 천사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허구에요. 타락천사니 하는 것도 물론 없습니다. 예전부터 천사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가 와전되면서 생긴거라고 추측되네요. 죽음을 예고한다는 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너희는 죽을 사람에게 일일이 와서 당신은 언제언제 죽습니다, 하고 예고하는건가."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죽을 지 모르고 죽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예외인거에요."

 

 의외의 소리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아니, 뭐, 방 안에 푹신하고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난 것부터 이미 이상하지만, 죽기 전의 마지막 호사라고 생각하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었는데. 이런 게 예외라니. 내가 뭐라도 되는건가.

 

 "아, 그거지. 내가 사실 너를 만난 일주일 동안 무언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길 행위를 하는거지. 그림을 그린다든가. 소설을 쓴다든가. 맞지?"

 "아뇨, 전혀 아닙니다."

 

 단호한 태도였다.


 "그럼 뭐야."

 "자동화된 공장에도 관리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겁니다. 천계에서 지정한 수명이 얼마만큼 잘 지켜지고 있는지 때로는 샘플 조사를 할 필요가 있어요. 당신은 그 몇 없는 샘플 조사의 대상으로 선정된겁니다."

 

 터무니없는 비유다. 이녀석의 말은 즉, 사람이 죽고 사는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하러 왔다는 소리다.

 거대한 시스템에 속박되어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인간이라니. 코스믹적이고 호러적인 무언가를 느낄 정도의 규모였다.

 아니, 그보다.


 "그런 일을 할 정도면, 수명이 100%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니라는 소리잖아."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노골적으로 눈을 피하며 당황하는 천사를 보면서, 나는 이건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만할뿐 방법은 모르기에, 어떻게 이용할지는 차후의 숙제다.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천사를 보면서, 지금 할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까는 천사를 상대로 이것저것 꼴불견인 모습을 보였지만, 머리가 맑아진 지금은 조금 더 건설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제로, 나는 별로 죽고 싶지 않았다.

 조별과제니 자격증 시험이니 하는 걸 떠나서, 아직 하지 못 한 일도 많다. 읽고 있던 소설의 완결도 보지 못했고,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인 게임도 해봐야 하고, 1년 전에 구입한 피규어도 받아야 하고, 다음 분기 신작 애니메이션도 봐야 한다. 아니, 뭐, 죄다 취미생활이냐.

 아무튼, 죽고 싶진 않다. 살 수 있으면 살고 싶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발버둥쳐야 한다. 그렇지만 만약, 그런 방법이 없거나, 혹은 극히 희박한 확률이라면? 일주일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서 미련없이, 적어도 미련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너, 이전에도 이런 일은 몇 번인가 했겠지."

 "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많은 수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갑자기 목소리를 깔면서 엄숙한 분위기를 내며 말하는 천사. 무슨 말을 하냐에 따라 분위기가 너무 휙휙 바뀐다.

 나는 그런 천사를 보면서 물어봤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뭘 하면서 죽었지?"

 "대부분 가족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머지는 믿을 수 없다면서 발광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조용히 기도를 하거나, 여러가지였죠."

 "그걸 옆에서 그냥 지켜봤단 말이지. 악마가 따로없구만."

 "실례의 말씀을. 삶과 죽음에 동정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 법."

 "아, 그래."

 "당신은 어떻게 보내실건가요? 참고로 범죄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반사적으로 되묻자, '그걸 꼭 말해야 아나요?' 하는 표정을 짓는다.

 

 "설마 범죄를 저지르면 천국에 가지 못해서, 라는 얼빠진 이유는 아니겠지."

 "그런 짓을 하면 예정된 수명이 더욱 앞당겨져서 일찍 죽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인간은 천국에 가질 못합니다. 죽어도 다시 태어날 뿐이죠."

 "호."

 입이 가벼운 천사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