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 2017년 8월 5일

칼리리 2017. 8. 5. 23:50



 0. 



 "너."


 문득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모르는 여자애가 있다. 석양이 지는 어두운 복도에 검붉게 빛나는 머리와 소매에서 뻗어나온 흰 팔다리만이 유령처럼 떠올라있다. 

 단정한 얼굴은, 역시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다시 뒤돌아서 가던 방향을 봐도, 아무도 없다.

 

 "나?"

 "그래. 너."

 

 그녀는 너무도 당연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처럼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초연한 태도와 당당한 어조에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싶을 정도였다.

 일면식도 없는 무슨 용건인지, 그녀의 태도로는 어느 것도 짐작하기 어려워,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왜?"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1분이면 되는데."

 

 그 물음에 반사적으로 시계를 봤지만, 딱히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 거기 서 있어줘."
 "여기?"

 "응."

 

 그녀는 그렇게만 말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한 5미터 정도 떨어졌을까.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내게로 가까워진다. 이번엔 손을 뻗으면 서로의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평탄하던 표정이 바뀌어 놀란듯이 눈초리가 흔들린다.

 그렇게 잠시 멈춰있던 그녀는 다시 거리를 띄워 나를 처음 불렀던 위치까지 돌아갔다. 거리는…… 약, 2미터 정도 될까. 

 그때까지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던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가 있던 건지 물어봐도 될까?" 

 "좋아. 내 용건을 마치면 알려줄게."


 용건이 뭔데,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뭔가 중요한 말을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나는 말을 꺼내는 것을 멈췄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모양 좋은 입술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네 감정, 나한테 팔아주지 않을래?"

 

 



 1.


 신리라고 하는 여자애는, 아마도 그 특이한 체질의 탓이겠지만, 감정의 변화가 격렬하다. 그 체질에 대해 본인은 '감정의 전염'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건 '전염'따위가 아니라 '동화'다.

 반듯한 얼굴에 서늘한 표정을 띄우고는 격렬하게 감정을 터뜨린다. 그게 분노든, 즐거움이든, 행복이든, 증오든…… 슬픔이든.

 

 "가능하면 없애버리고 싶어."

 

 석양이 지는 여느 때의 시간. 우리는 빈 강의실에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다.

 그 날 이래로 가능하면 그녀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그건 강의가 있을 때든 없을 때든 서로가 가능하면 계속, 이다.


 "진귀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이런 입장이 되면 그런 소리가 나오진 않을걸."

 "그럴지도."

 내가 만약 신리같은 체질이라면, 아마 사람 자체를 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불필요한 관계를 맺지 않는 상태인데, 저런 체질이라면 얼마나 더 사람을 멀리하게 될까. 일주일에 한 번, 그곳에 찾아가는 걸 제외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안정되어 있네. 근처에 있으면 내가 그런 체질인 걸 잊을 것 같아."

 "그건 다행이네."

 "안정도 안정이지만, 감정의 변화가 나랑 비슷한 것 같아."

 

 이런 체질이다 보면 감정의 변화에 민감해지거든, 이라고 그녀는 덧붙이며 웃는다.

 

 "비슷한가?"

 "비슷해. 너, 처음에 내가 왜 말을 걸었는지 알아?"

 "글쎄."

 "하루종일 남의 감정에 시달린 뒤에, 지친 상태로 복도를 걸어가는데 네가 저쪽에서 오고 있는 게 보였거든."

 "그래서?"
 "그래서, 피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쳐가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야."

 "변화가 없어?"
 "응. 변화가 없었어. 정말 요만큼도. 그 때의 내 생각을 네가 느껴봐야 하는데. 난 갑자기 내 체질이 나은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지나쳐 갈 때 네 감정과 내 감정이 정말 요만치도 차이가 나질 않았던 거야."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