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5월 20일
- 2017년 5월 20일
[
축복과 비애로 가득한 결혼식이 끝난 지 세 달정도 지났을 무렵.
그 모든 감정들의 당사자인 윤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내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팔자도 좋은 녀석."
"그게 내 장점이지."
자칫하다간 여자로 오인받을 정도로 곱상한 윤의 얼굴이지만, 지금은 햇볕에 적당히 잘 태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남성도가 높아 보인다.
조금만 거리를 띄우고 보면 어딘가에서 유행했던 갸루화장을 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미묘한 모습이기도 하다.
"뭐,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보다 여행은 어땠어? 어딘가 휴양지로 갔댔나."
괌이라든가, 사이판이라든가, 뭐 등등.
나는 생각나는 휴양지의 이름을 되는대로 내뱉었다.
윤은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아, 응, 사실 리리의 집에 조금."
"집?"
신혼여행에 무슨 집? 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리리, 그러니까 얼마 전 윤의 아내가 된 그녀석의 집을 윤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나는 집어먹던 닭튀김을 떨어뜨렸다.
리리는 이세계에서 날아와 윤과 엮인 공주님이다.
당연하겠지만, 그녀석의 집은 이세계의 어느 왕궁이다.
"그 동네를 간 거냐? 또?"
"무슨 지옥에라도 갔다온 것처럼 반응하는거 그만해줄래? 리리녀석이 정말 아름다운 장소가 있대서 다녀왔어. 집도 들리고. 폐하께 인사도 드리고……."
"허."
그 고생을 하고 다시 거기에 갈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운 장소라고 해도 그렇지.
"괜찮았어, 의외로. 이야, 역시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 다르다니까."
"그러십니까."
그러고선 윤은 한창을 자신이 봤던 풍경에 대해 얘기를 했다. 요정들이 쉬어가는 온천, 인어가 사는 바다, 용이 잠자는 폭포.
잔을 비우면서 정말로 밝고, 즐겁고, 행복하게 리리와 다녔던 장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윤을 보고, 나는 지금도 실의에 빠져서 집에 틀어박혀 있을 몇몇 녀석들을 떠올렸다.
이 행복한 자식은 그녀석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지 알기나 하는 걸까.
갑자기 눈 앞의 곱상한 얼굴을 한 대 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지만, 세계를 몇 번이나 구한 영웅인 윤에게 나 따위가 때려봐야 간지럽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한대라도 맞았을 경우 원형도 남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참아야지.
"그래서, 오늘 부른 이유는 뭐냐. 여행과 마누라 자랑을 하러 부른 건 아닐테고."
"아아……. 역시 그냥은 안넘어가네."
"당연하지.
윤은 잔을 들이키고, 천장을 보고 한숨을 한 번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드디어 결심을 했는지 헛기침을 한 끝에야 내게 말을 꺼냈다.
"오늘 이렇게 불러낸 건,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부탁?"
"그래. 그 전에. ……다른 애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그걸 나한테 물어보냐."
설마 싶었던 대사가 나오니, 자연히 어조가 강해졌다.
쏘아붙이듯 내뱉은 내 말에 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애들한텐 미안하지만, 난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상황은 다 같이 괴로울 뿐이야. 너도 알잖아?"
"……."
알긴 뭘 알아. 내가 아는 건 결혼식이 끝나고 윤녀석이 행복한 얼굴로 떠나갈 때 뒤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녀석들의 모습뿐이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그런 상냥한 거짓말 같은 상황이 왜 나쁜 건지, 그렇게 진실된 것을 찾아서 떠난 결과가 이런 것에 대해 느끼는 건 없는지, 윤과 셀 수 없이 얘기했고, 결론 같은 건 나지 않은 채 윤의 결혼은 진행돼버렸다.
그걸 이제와서 '너도 알잖아?'라고 자못 당연하듯 동의를 구하면 화가 치솟을 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 그 애들을 부탁해."
"뭐?"
잠시 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바보같이 되물었다.
누가 누구에게 누굴 부탁한다고?
"그 애들을 부탁할게. 너 말고 부탁할 사람이 없어."
"그니까!"
나는 테이블을 치며, 기어코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윤이 그런 나를 식은 눈으로 보고 있다.
"……대체 뭘, 나한테 부탁한다는 거야. 그녀석들이 실의에 빠져서 반 송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해결하라고? 아니면 내가 그녀석들에게 너를 대체할 무언가가 되라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네가 리리랑 헤어져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헛된 믿음을 주면 될까?
쏟아낸 내 말에 윤은 고개를 가만히 젓고,
"옆에 있어줘."
그렇게만 말했다.
"넌 그 애들을 나 이상으로 많이 봐 온 사람이잖아. 다른 누구도 못하는 일이야. 너만, 너만이 할 수 있고, 너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일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
내가 옆에 있어 준다고 뭔가가 바뀔까? 그녀석들이 예전같은 웃음을 되찾을까? 다시 생기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난 아무 것도 못 해. 윤, 네가 하면 되잖아.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하라고."
"그건 안돼. 문제가 더 악화될 뿐이야."
'난 앞으로 그 애들을 만나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면서 윤은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게 내 선택의 결과고, 내 결심이야.”
"그것 참 제멋대로인 결심이군."
"미안해."
"알면 그런 부탁은 하지말라고."
"그것도 미안."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차라리 윤이 자신이 버린 여자를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나쁜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한바탕 욕이나 해주고 뛰쳐나갔으면 됐을텐데.
윤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이 버린 여자애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날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그냥 옆에 있어줘. 얘기를 나눠줬으면 좋겠어. 만나서, 내 욕이라도 실컷 같이 해줘."
"4명……아니, 5명 모두에게, 그렇게 하란 소리냐."
"그래."
너무도 당연한듯, 윤이 그렇게 말한다.
"부탁한다."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는 윤을 앞에 두고, 거절의 말을 내뱉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맡겨달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윤은 그런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여긴 내가 살게. 리리가 늦게 들어가면 화내니까 일찍 들어가야지. 일, 잘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고 유유히 가게 밖을 향한다.
마지막까지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망할 자식."
사라져가는 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음 날.
윤의 부탁아닌 부탁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쳤던 나는 수업도 무시한 채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녀석들의 시든 얼굴과 윤의 진지한 표정, 리리의 행복한 얼굴 등이 번갈아가면서 머리속을 지나가더니 이윽고 다 같이 뒤엉켜져서 이내 정체모를 형태로 변화하고 그것은 곧 마왕의 형상이 됐다.
마왕.
웃기지도 않은 설정으로 세계를 멸하려고 하다 윤에게 퇴치당한 불쌍한 녀석.
나는 그 싸움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평화롭게 돌아가서, 윤과 그녀석들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뭐해? 학교 안 가?"
닫힌 문에서 불쑥 얼굴이 튀어나오더니, 그런 소리를 한다.
"우와악! 뭐, 뭐야!"
"꺄악!"
멍한 정신에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비명을 지르자, 얼굴만 나온 유령도 깜짝 놀랐다는 듯 비명을 지른다.
"뭐야, 유리잖아. 아침부터 놀라게 하지 좀 마."
"내가 할 소리야! 이제 좀 적응할 때도 됐잖아!"
유리가 내 앞에 둥실둥실 떠오르면서 화를 낸다.
"보통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문에 튀어나와 있으면 놀라는 게 당연하잖아."
"벌써 반년인데 익숙해지라고."
"굳이 유령인걸 그렇게 자랑하듯 행동하지 않아도 되잖아……"
"흥."
유리는 보이는 대로 유령이다.
원래부터 유령은 아니었고, 마왕과의 싸움탓에 죽은 뒤에 어쩐지 유령으로 남아서 현세를 즐기고 있는 녀석이다.
"그렇지. 너도 대상이잖아."
"응?"
둥실둥실 거꾸로 떠다닌 채 유리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너도 윤의 히로인이잖아. 다섯……아니, 여섯 명 중 한 명."
"뭐야, 그 소리인가~"
관심없는 듯 늘어진 말투를 하는 유리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제 윤과 만난 것. 윤이 걱정하고 있는 것. 윤이 부탁한 것.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원래부터 낙천적이고 지나치게 긍정적이면서 아무런 걱정없이 사는 그녀인지라, 죽은 뒤에도 유령이 되어서 삶을 적당히 즐기고 있지만, 여차할 때는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녀 이외에 따로 의견을 물어볼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당사자다.
당사자치고는 윤이 결혼할 때, 정확히는 죽고 난 뒤 유령이 되더니 윤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접고 내 집에 붙어살게 된 터라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 한참 나은 상태다. 걱정도 없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나?"
"응. 윤의 부탁이니 어쩌니 하는 건 잊어버리고. 너가 어떻게 하고 싶은건데?"
내가, 어떻게 하고 싶냐고.
유리는 그렇게 물었다.
"그야, 그녀석들 너무 우울해하고 있으니, 조금 정도는 기운을 차렸으면 좋다고 생각하긴하는데……."
결혼식부터 3개월. 그 사이에 몇 번 정도는 얼굴을 보러 갔지만, 다들 반쯤 죽어가는 얼굴에 기운 없는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예전의 밝았던 모습과 활기찼던 행동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보기가 괴로웠다.
"하는데?"
"……그걸 내가 해야하는 지는 조금 고민이라는 거지. 본래는 윤 녀석이……."
"윤은."
유리가 내 말을 끊고 조금 강하게 말했다.
"도망친거야."
"도망?"
"변함없이 지속될 일상에 겁을 먹은거야. 그래서 선택을 해버린거지."
둥실둥실 떠다니던 몸을 멈추고, 침대 위에 차분히 앉는다.
"진짜 영웅이라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지.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사랑해줘야지."
"……그건 좀 무리가 아닐까."
"보통사람이 못해내는 걸 해내니까 영웅이라는 거야. 영웅호색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 예시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자식은 나쁜놈이야. 여자의 적! 죽어라 윤!"
유리는 분기탱천하며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사방팔방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 그만! 정신없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내가 소리를 질러도 아랑곳않고 한창을 날아다니다가 속이 풀렸는지 5분쯤 지나서 침대에 앉는다.
여전히 정말 상대하기 피곤한 녀석이다, 정말로.
"그래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윤은 도망갔으니 네가 해야지. 네가 해야하는 일이야."
"윤도 못했던 일을 내가 하라고?"
"그 애들이 딱히 널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문제는 없잖아."
그건 사실이지만.
"그저 좀 알고 지낸 친구정도인 내가 할 수 있냐는거지."
"그거야 그거. 친구잖아. 친구로서 노력해봐."
"……무리겠지."
"하아, 너는 그게 문제야."
유리가 안되겠다는 듯 손을 흔든다.
"조금 자신감을 가져봐. 너라면 가능하니까 윤도 맡긴거 아니겠어?"
그런가.
그럴까?
솔직히 전혀 자신은 없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만나러 가."
유리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정신을 차린 나는 씻고, 밥을 먹고, 유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뭘 해야할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가장 먼저 만나러 갈 사람은 정해져있다.
"여전히 으리으리한 집이네."
"그렇네."
도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 내 집에선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커다랗게 지어진 집이 있다.
그림에서나 나올 것 같은, 정원이 딸려있고 개가 뛰노는 3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바로 옆에도 비슷한 형태의 단독주택이 있지만, 지금은 비어있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네-'하는 기운없는 목소리가 곧이어 들린다. 뭐라고 말을 꺼내려던 사이에 유리가 먼저,
"얏호, 연. 잘 지냈어? 우리야 우리!"
라고 말해버렸다. 우리는 뭐냐 우리는.
인터폰 저쪽에선 잠시 침묵하는 기색이 있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 오빠. 어서오세요."
"